12월10일은 세계인권의날이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선언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과 보편적 가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75돌을 맞은 올해,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는 참담하기만 하다.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에서 희망·소통과 먼 조직이 됐다. 인권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인권위가 파행적 운영으로 인해 인권 옹호·증진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실망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인권위에 진정하기를 포기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천박한 인권 의식을 드러내며 잇따라 물의를 빚고 있는 김용원·이충상 두 인권위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우리 사회의 인권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할 인권위를 향해 “개점휴업은 2차 가해”라는 진정인들의 개탄도 터지고 있다.
인권위는 극심한 내홍을 겪는 중이다. 김 위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침해구제 제1위원회는 지난 8월 소위를 연 후 4개월 가까이 열리지 않았다. 그 피해는 결국 진정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김 위원은 인권단체로부터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 위원은 지난 5월 군 신병훈련소 인권 상황 개선을 권고하는 인권위 결정문 초안에 성소수자 혐오 소지가 있는 문구를 넣어 논란이 일었다. 두 위원은 소위에서 1명만 반대해도 진정을 기각할 수 있다며 인권위 파행을 반복하고 있다. 인권침해 등 민감 사안도 단 1명이 막아설 수 있게 된 꼴이다. 국민의 인권 증진엔 눈감은 채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여당 입장만 옹호하겠다는 것인가.
2001년 설립된 인권위는 ‘살색 크레파스’ 명칭 변경부터 사형제 폐지 의견 표명까지 인권 개선을 위한 다양한 권고를 냈다. 국정 정책으로 수용돼 인권침해를 바로잡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위 위상은 현 정부 들어 추락하고 있다. 인권위원이 혐오 발언을 하며 권위에 먹칠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인권위원은 대통령(4인)·대법원장(3인)·국회(4인)가 지명·선출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권 의식에 의구심이 이는 인사도 정파적으로 지명·선출되고, 그런 식의 독단·파행이 벌어지게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을 이참에 검토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인권에서는 피해자 관점과 비주류적 시각이 중요하다. ‘소외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에 겸손하게 귀 기울이라’는 천둥 같은 메시지, 세계인권선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