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13일 대표직을 사퇴한 다음날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하고, 15일 비상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원장 인선 문제를 논의했다. 여당은 정권 출범 1년 반 만에 당대표가 두 번 중도하차하고, 비대위 체제만 세 번째다.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민의힘 대표의 운명은 윤 대통령 뜻대로였다. 친윤들이 주도해 대선 승리 주역인 이준석 전 대표를 쫓아낸 뒤 주호영·정진석 비대위가 차례로 꾸려졌다. 김기현 전 대표는 윤심을 등에 업고 지난 3월 당대표가 됐지만, 9개월 만에 물러나며 윤 대통령과 총선 출마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김 전 대표에게 대표직 유지·지역구 불출마를 요청했는데, 김 전 대표는 거꾸로 대표직 사퇴·지역구 출마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윤핵관’ 장제원 의원만 불출마를 선언하자, 국빈방문 중이던 네덜란드에서 격노했다는 말도 들린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는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취급한 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경고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아직도 여당을 리모컨으로 작동하면 알아서 기는 하부기관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은 비대위원장 인선 기준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첫손에 꼽았다. 국민들의 눈엔 수직적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설정할 인물이 적임자다. 그런데 당내에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주로 거론된다. 하나같이 윤 대통령과 가까운 ‘윤심 대리인’들이다. 이날 의총에서 친윤 의원들은 입을 맞춘 듯 한 장관을 집중 추천했다고 한다. ‘윤심 비대위’로 누구를 위한 쇄신을 하겠다는 건가. 여권이 왜 위기인지 깨닫지 못하고 윤 대통령 눈치만 보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보선 참패 후 ‘반성하고 변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윤 대통령은 여당에만 희생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1%포인트 떨어진 31%로, 국민의힘 지지율 36%보다 낮다. 가장 바뀌어야 할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여당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당정이 분열된 정부는 실패하지만, 당정일체로 성공한 정부도 없다. 당정이 적극 소통하되, 건강한 긴장관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 그만 당을 장악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민생을 위한 국정에 힘을 쏟길 바란다. 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여권 쇄신은 공염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