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예수는 시비꾼이었다

법인 | 조계종 교육부장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기운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서울 조계사 인근 인사동에는 수행승들의 모습이 평소보다 많이 눈에 띈다. 카랑하게 풀 먹인 그들의 베옷에서는 금방이라도 서늘한 대숲바람이 불어 나올 듯하다.

[낮은 목소리로]부처와 예수는 시비꾼이었다

여름 석달 한철을 산문 안에서 참선하던 선승들이 해제하고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행에 나선 것이다. 예전에 같이 정진하던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그간의 안부와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야기 끝에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묻는 말이 있으니, “아직도 수경 스님 소식 없나요?”였다.

내가 지리산 실상사에서 제법 오랫동안 수경 스님과 도법 스님을 모시고 산 인연을 알기에 혹시 뭔가를 알고 있나 하여 묻는 것이다. 가벼운 미소로 답할 수밖에,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수경 스님. 지리산과 북한산, 새만금과 사대강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의 고행을 감내하며 오로지 산과 강을 살려서 모든 생명이 평화로 어우러져 사는 길을 열고자 했던 그가 참회와 성찰을 담은 글 한 줄을 남기고 홀연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석달에 이른다. 그의 떠남에 불교계와 세간은 크게 놀랐고 그 빈 자리는 기도와 염원으로도 채워지지 못한다.

그런데 모두들 수경 스님을 염려하면서도 세간에서 내리는 평가는 저마다 다르다. 얼마나 지치고 힘드셨으면 그랬을까라며 우리 사회의 보수화와 무관심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권력화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뒤늦게나마 각성한 결과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수경 스님이 이제야 종교인의 본분을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차별당하는 약자에 따뜻한 손길

조계사에 농성 천막이 펼쳐지고 항의 집회가 열리면 보수의 옷을 입음직한 사람들이 격렬하게 항의한다. 그들의 공통적인 논리는 ‘신성한 경내’에서 왜 저런 일을 방치하고 있느냐, ‘수행의 본분’을 저버리고 정치에 개입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는 부처님의 길을 따르라고 엄숙하게 충고한다. 이런 말을 듣고나면 새삼 부처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길이 무엇인가도 생각해 본다. 신부님과 목사님도 마찬가지로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선량한 목자의 본분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받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예수의 길, 부처의 길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 정신과 행적이 바로 부처의 길, 예수의 길이 아닌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당시 인도 사회의 최상계급인 바라문이 자신의 혈통과 가계를 자랑했다. 부처님이 그에게 묻는다. “그대의 가계는 윗대로 수없이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때도 고귀한 집안이었는가? 그대들이 고귀하다 해서 살인과 도둑질을 해도 형벌을 받지 않는가?” 바라문은 둘 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귀하거나 천박하지 않다. 나는 고귀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고귀하다고 한다. 나는 천박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천박하다고 한다.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 다만 행위를 묻는다.”

부처님은 당시의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전면적이고 공개적으로 부정하셨다. 권력으로 인간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사회제도가 옳지 않다고 분명히 시비를 가리신 것이다. 전쟁을 반대했고,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사상과 종교의 허구를 지적하고 배격했다.

예수님은 그의 ‘밥상 교제’에 당시 부정 탄다고 천대당하던 창녀나 세리를 참여시켰다. 차별당하는 약자들에게는 사랑의 손을 내밀고, 권력화되어 있는 신학자나 성직자들에게는 ‘내 아버지의 집(성전)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질타했다. 이렇듯 부처님과 예수님은 옳고 그름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분명하신 분이었다. 한마디로 시비꾼이었다.

옳고 그름 분명하게 가리고 선택

흔히들 말한다. 세속을 떠나 청정하게 수도하는 것이 종교인의 본분이라고. 그러나 떠나야 할 세속은 사람이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된 가치관, 오염된 삶에서 떠나야 한다.

시비를 가리는 것은 트집잡기나 싸움걸기가 아니다. 그른 것 위에 지은 집은 튼실할 수 없다. 정의와 자비의 집을 짓고자 했던 예수님과 부처님은 옳은 것을 토대로 삼기 위해 기꺼이 시비꾼이 된 것이다. 정의를 위해, 자비를 위해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리고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부처의 길이고, 예수의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법인 | 조계종 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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