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국회 해산 제도

양권모 논설위원

65년 헌정사에서 국회가 해산된 것은 네 차례다. 첫 번째는 1960년 4·19혁명으로 국회가 자진 의결로써 해산했다. 나머지 세 번은 모두 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한 군부 독재자가 강제로 국회를 해산한 경우다. 각각 1961년 5·16쿠데타, 1972년 유신 친위쿠데타, 1979년 12·12쿠데타 때다.

1972년 10월17일 대통령 박정희는 ‘특별선언’으로 유신을 선포하면서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영구독재의 길을 연 유신헌법은 대통령 1인에게 제왕적 권력을 부여했다. 유신헌법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 중 하나가 ‘국회 해산권’이다. 유신헌법 제59조는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구체적인 적용요건, 권한 행사에 따른 대통령의 책임 등은 전혀 명기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언제든 국회를 해산할 절대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국회의 정부불신임권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무제한적인 국회 해산권은 유신헌법의 독재성을 극명히 보여주는 장치다. 국회 해산권은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소위 제5공화국 헌법에서도 유지됐다.

6월 민주항쟁으로 이뤄낸 1987년 직선제 개헌에서 국회 해산권은 전면 삭제됐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불균형, 독재의 상징인 국회 해산권은 유신헌법 이후 15년 만에 유물이 되어 사라졌다.

그 국회 해산권을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돌연 살려냈다. 김 전 총리는 엊그제 새누리당 의원 모임 초청강연에서 “헌법에 왜 국회 해산 제도가 없는지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며 “국회 해산 제도가 있었으면 딱 국회를 해산시킬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관까지 지낸 김 전 총리가 국회 해산 제도가 왜 없는지 모를 리는 없겠다. 유신과 5공 독재 체제를 극복하려 없앤 국회 해산 제도를 강렬하게 호출하는 까닭은 따로 있을 것이다.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통법부’를 기대하는 독재 유전자의 발동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치 불신’의 여론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며 주목도를 단번에 높여 정치의 중심(서울시장 후보?)으로 들어오려는 술수쯤일 터이다. 어느 쪽이든 국무총리까지 지낸 이가 ‘국회 해산’의 발상을 거리낌 없이 내지르고, 그 얘기를 들으며 열렬히 박수를 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보면서 문득 소름이 끼친다. 그들이 추억하는 유신독재의 망령이 너풀거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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