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권력·서열은 최고권력자와의 거리에서 드러난다. 동서고금의 철칙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선 더 도드라진다. 북한·중국의 열병식 주석단이나 당대회 좌석, 관영매체 호명 순서, 군부대 방문 동행자가 바뀌면 뉴스가 만들어진다. 그 정치적 함의를 읽는 것이다.
북한 권력지도에선 호칭 변화도 주목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대 세습 후계자로 뜬 것도 2009년 ‘청년대장 김정은’이란 말이 전해지면서다. 청년대장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만 썼던 칭호다. 김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3차 당대회에서 공개되기 전 일이다. 2011년 아버지 사후 국방위 제1위원장·노동당 제1비서로 시작된 그의 직책은 현재 국무위원장·노동당 총비서·무력최고사령관이다. 관영매체는 통상 ‘경애하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2021년 집권 10주기엔 ‘위대한 수령’도 등장했다. ‘장군님’으로 불린 아버지도 생전에 못 쓰고, 김일성 주석만 쓰던 말이다. 권력 장악 후 우상화를 시도하는 징후였다.
북한 건군절 75주년인 8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존경하는 자제분과 함께 군 장성 숙소에 도착하셨다”고 보도했다. 기념사진 정중앙엔 둘째 딸 김주애가 앉아 있었다. 고모 김여정도 부착한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을 가슴에 달지 않은 이도 김정은·리설주 부부 외엔 그가 유일했다. 더 눈에 띈 건 호칭이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11월 화성-17형 발사 현장과 그 공로자 기념사진 촬영 행사 후 세 번째다.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시작된 호칭은 그 후 ‘제일로 사랑하는~’과 ‘존귀하신~’으로 바뀌고, 이번에 ‘존경하는~’으로 높아졌다. 사진 속 위치도 호칭도 이날의 주인공은 열흘 뒤 만 10세가 되는 김주애였다.
당장 ‘4대 세습’ 전조로 보는 눈이 있다. 김 국무위원장의 인민군 격려 연설에 나온 “계승” “유전”이란 말까지 연계한 해석이다. 군·미사일 행사에만 동행하는 어린 딸을 두곤 ‘미래도 안전하다’고 말하고픈 권력자의 메시지로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김 국무위원장은 올해 39세다. 세습을 위한 포석으로 단정하긴 이르다. 한다 해도 20여년 후계자 수업을 한 김정일식이 된다. 이제 김주애의 호칭까지 주목할 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