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민중의 노래

이기수 논설위원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1832년 ‘6월 봉기’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들이 바리케이드에 올라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1832년 ‘6월 봉기’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들이 바리케이드에 올라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자들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적·백·청의 프랑스 국기를 들고 바리케이드 위에 선 민중의 합창으로 끝난다. 영화는 빵 한 조각을 훔쳐 19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쫓고 쫓기는 운명을 그리며 19세기 파리 뒷골목의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을 수없이 담아낸다. 프랑스대혁명 후에도 궁핍하고 홀대받던 이들은 ‘다신 노예로 살지 않겠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리라’고 분노의 노래를 마친다. 영화 피날레의 백미로 손꼽히는 장면이다.

<레미제라블>은 2012년 12월19일 국내 극장에도 걸렸다. 런던에서 첫 시사회를 한 지 2주 만이고,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이다. 가슴 뭉클한 마지막 합창이 입소문 타며 593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대선에서 진 ‘문재인 투표자’들은 더 눈시울을 붉혔고, 이 노래는 ‘박근혜 탄핵’ ‘윤석열 규탄’ 시위나 노동자·농민 집회에서 자주 울려퍼졌다.

그 노래가 8일 오랜만에 소환됐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장에 들어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곡으로 쓴 것이다. 이 노래는 윤 대통령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스스로도 대선 때 “레미제라블 영화나 뮤지컬을 여러 번 봤고, (이 노래도) 좋아하고 자주 듣는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비서관들과 오찬할 때도 이 곡을 튼 적이 있다고 했다. 대선 때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18번 노래’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곡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불렀듯이 윤 대통령의 노래 취향은 폭이 넓은 셈이다.

논란은 그 뒤에 일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이 곡 고른 사람은 윤리위 가야 할 듯”이라며 분노가 서린 가사를 소개했다. 비주류인 그로선, 전당대회장에도 ‘윤심 개입’ 분노가 있고 선곡을 잘못했다고 봤음 직하다. 대통령실에선 “진짜 약자의 외침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전과 무관하게 윤 대통령 입장곡이 입길에 오른 이유는 따로 있다. 각박해진 민생에, 검찰국가의 질주에, 답없는 정치에 민중의 노래가 어울리는가. 민의에 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다짐과 반성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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