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미학 아우른 사상가
한국 인문학의 거장인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26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7세.
1930년 충남 아산에서 유학자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전쟁 중 피란 시절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사상계’에 ‘회화를 잃은 세대’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인으로 등단했다.
같은 대학에서 27살에 ‘폴 발레리에 있어서 지성과 현실과의 변증법으로서의 시’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전임강사로 발탁됐지만,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파리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지도하는 ‘연습 세미나’를 통해 그의 철학을 배우기도 했다.
평생 세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연구한 그는 불문학 탐구에 이어 1966년 미국으로 넘어가 남캘리포니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평생 철학에 매진하며 언어학, 예술, 동양사상, 과학, 환경, 문명, 종교 등으로 끊임없이 관심사를 넓혀 나갔다. 그가 한국에 소개했던 서구 지성사와 문학은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 이후 동양사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노자’와 ‘장자’, ‘논어’의 세계를 탐구했다.
고인은 1980~90년대 독일 마인츠대학교, 미국 시몬스대학교, 일본 국제기독교대학교,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철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100여권의 저작에 남아있다. <예술철학>, <과학의 도전철학의 응전>,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등이 출간됐으며 <둥지의 철학>은 2015년 영국 사프론 출판사에서 간행됐다.
고인은 2006년 인촌상(인문사회문학부문)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 문화훈장(교육공로)을 수상했다. 또한 2012년 대한화학회가 제정한 제1회 ‘탄소문화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엔 고인이 20대 시절인 1950년대 후반 발표한 시부터 최근까지 60여년 동안 남긴 글을 추려 집대성한 <박이문 인문학 전집>(전 10권·미다스북스)이 출간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숙 여사와 아들 장욱씨가 있다. 빈소는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이며, 장지는 국립 이천호국원. (02)2227-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