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엄마, 사람, 그리고 검사입니다…검사도 엄마도 둘 다 잘 할래요"

이보라 기자
서아람 수원지검 검사, 김은수(필명) 검사, 박민희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왼쪽부터)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성당 뜰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공동으로 펴낸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아람 수원지검 검사, 김은수(필명) 검사, 박민희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왼쪽부터)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성당 뜰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공동으로 펴낸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어쩌다 검사가 됐다. 고교 시절 ‘왕따’를 당한 뒤 ‘노는 애들’과 멀어지려고 공부하다가, 거짓말을 잘 못하는데 검사는 거짓말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로스쿨에서 검찰실무실습 수업을 듣다가 검사 업무에 푹 빠져서.

서아람 수원지검 검사(35), 김은수 검사(36·필명), 박민희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35)가 이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다. 이들은 어느새 수백건의 사건 처리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 하고 ‘부장님’의 결재 반려에 괴로워하는 9년차 직장인이 됐다. 아이를 맡긴 뒤 정신없이 출근하고, 1만원이라도 싼 카시트를 구하기 위해 중고시장을 헤매는 엄마가 되기도 했다.

제2회 변호사시험 동기인 세 검사는 25일 엄마이자 사람, 검사로서의 경험과 소회를 담아 <여자 사람 검사>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우리도 평범한 엄마이고 사람이다. 다만 직업이 검사일 뿐’이라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처럼요.” 지난달 말 세 검사를 한자리에서 만나 인터뷰할 때 박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서 검사가 아이 교육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이를 본 동기인 박 검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은 육아휴직 중이었으며, 아이가 둘이고, 일터인 검찰이 그리웠다. 서 검사가 <암흑검사> 등 웹소설을 썼다고 하자 박 검사는 별 생각 없이 “내가 겪은 일로만 책을 내면 열 권은 되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영감을 받고 이 책을 내기로 했다.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에 있던 김 검사도 합류했다. 박 검사는 지난해 8~12월 육아휴직 중 아이가 잠든 새벽에 홀로 깨서, 김 검사는 한손엔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노트북을 치며 틈틈이 글을 썼다. 육아가 힘들었던 박 검사가 말했다. “‘아, 내가 검사였지’라는 생각에 치유되는 시간이었어요.”

드라마 <비밀의 숲>처럼 검사를 다룬 콘텐츠는 넘친다. 박 검사는 말했다. “저희는 멋진 검사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에요. 평검사로서 겪은 사소한 에피소드와 그 과정에서 엄마이자 사람으로서 느낀 것을 진솔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미디어가 다루는 검사의 이미지는 고정적이다. 거악과 부패에 맞서거나 아니면 적폐 그 자체거나.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다른 세계 사람들로 비친다.

서 검사와 김 검사가 말했다. “대다수 검사들은 하루하루 거악이 아닌, 치킨집에서 알바생이 몇만원을 절도해 가는 것과 같은 민생 사건을 처리하느라 바빠요. 회식에서도 맥주와 소주로 소소하게 스트레스를 풀고요. 피해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밝혀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서아람 수원지검 검사, 박민희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 김은수(필명) 검사(왼쪽부터)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성당 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아람 수원지검 검사, 박민희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 김은수(필명) 검사(왼쪽부터)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성당 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책에는 검사의 고단하고도 치열한 일상이 담겨 있다. 김 검사는 출근하다 검찰청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일을 해야 했다. 사건을 마감해야 하는 월말이었기 때문이다. 아파서 입원해도 재판은 미룰 수 없다. 재판에 들어가기 위해 병원에서 책임면제각서를 쓰고 나올 뻔하기도 했다. 서 검사는 미혼 시절 첫눈에 반한 이상형과의 소개팅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다고 했다. 지명수배 피의자가 갑자기 체포돼서다.

엄마의 삶은 검사보다 몇배는 더 힘겹다. “차라리 야근이나 당직이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서 검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다 몸살이 나 인터뷰 날에도 진통제를 맞고 왔다. 평검사는 2~3년마다, 간부급 검사는 6개월~1년마다 근무지가 바뀌어 전국을 떠돈다. 당장 어느 지역으로 발령이 날지 모르니 육아도우미를 구하는 일부터 애를 먹는다. “결국 가족을 갈아넣는 수밖에 없어요. 김 검사 시어머니에겐 이석증이, 저희 어머니에게 허리디스크가 왔어요. 미안함이 크죠.”

이들은 냉철해 보이는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말한다. 법을 다루는 검사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 검사는 여자친구와 함께 낳은 아기를 키우다 분유값이라도 벌겠다며 중고매매 사기를 쳤던 10대 피의자를 수사한 일이 있었다. 그의 여자친구에게도 범죄 정황이 있었지만 증거가 부족했고 그마저 구속되면 아기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서 검사는 종합적인 사정을 고려해 여자친구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재판에 넘기는 것을 유예하는 처분이다.

김 검사는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탄 소년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는 소년에게 “오토바이를 그만 탈 자신이 있으면 옆에 있는 어머니에게 ‘죄송하다,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안아드려라. 반성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소년이 못 이기는 척 “엄마, 사랑해”라고 속삭였고 어머니는 통곡했다. “얘가 학교를 들어간 뒤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게 처음이에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가르치겠습니다.” 부모와 아이의 희미한 유대를 되살려주는 것, 그로 인해 재범을 방지하는 것 역시 검사의 몫이다.

김 검사에게 변사 사건 검시 중 고아 청년의 유서를 읽었던 일은 기억에 남은 경험 중 하나다. “‘인생 참 재미없다. 나는 간다’는 쪽지가 옷 안에 있었어요. 가슴이 너무 먹먹했어요. 그의 유서를 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검사가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서 검사는 보육원 교사가 식판으로 만 2세 아이 머리를 친 보육원 학대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교사를 질책했다. 한명이 10명의 아이를 돌보는 보육 교사 근무 환경을 접하게 되면서 환경 개선이 우선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박 검사는 이렇게 썼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검사실을 방문한다. 사실관계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조문 밖의 사연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도 검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피의자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들으며 삶과 인생을 배워간다.”

검사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많은 시대, 이들은 책을 통해 사회에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서 검사가 쓴 몇 문장이 뇌리에 남는다.

“범죄에 희생당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때로는 조금 늦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달려가는 걸 멈추지 않는다. 난 아직도 1인분의 엄마도, 1인분의 검사도 되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그렇게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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