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힘으로 인물 탐구...‘김해인물연구회’ 김지관 회장

한대광 선임기자

전국 최초로 지역 인물 연구·출판 모임

52명 인물 발굴해 책 3권 출간하기도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 삶도 기록

경남 김해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김지관 김해인물연구회장이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해인물연구회 제공

경남 김해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김지관 김해인물연구회장이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해인물연구회 제공

13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기록한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쿠데타를 현재로 소환했다. 영화에서는 전 대통령 전두환씨 쪽 신군부에 맞서다 숨진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배우 정해인이 열연한 고 김오랑 중령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가 제대로 알려지기는 영화 이전에 많은 이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김 중령의 아내 고 백영옥씨(1991년 작고)는 1988년 백수린이란 가명으로 <그래도 봄은 오는데>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경남 김해시 출신인 김 중령의 삶을 기록한 내용이었지만 쿠데타의 핵심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있던 때여서 이 책은 배포되지 못했다. 2011년부터 ‘김오랑중령 기념사업회’에 참여했던 김지관씨는 다음 해 지인을 통해 이 책을 구했다. 그와 동료들은 책의 가치가 높다는 판단과 함께 분실 등에 대비해 고스란히 전문을 옮겨 적는 수고를 했다. 이 책은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 1월 재출간됐다.

영화 <서울의 봄>을 계기로 재출간된 <그래도 봄은 오는데>의 표지.

영화 <서울의 봄>을 계기로 재출간된 <그래도 봄은 오는데>의 표지.

김지관씨는 김해시 한림면 출신인 고 김병곤 추모사업에도 참여했다. 김병곤씨는 1971년 서울대 입학 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여섯 번이나 투옥됐다가 얻는 지병으로 1990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이런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에 “아예 지역 인물들을 찾아내고, 탐구하고, 세상에 알려보자”며 ‘김해인물연구회’를 만들고 회장을 맡았다.

김해인물연구회는 그동안 52명의 인물을 발굴해 <해동이가 전하는 김해인물 이야기> 3권을 출간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 중에서 김해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을 소개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북면(현 한림면) 면장이었던 최대성 면장도 한 명이다. 그는 보도연맹원으로 분류돼 강제로 구금됐던 100여명의 주민을 창고 뒷문을 열어 몰래 풀어준 인물이다. 덕분에 당시 이북면에서는 희생자가 거의 없었다.

이 외에도 외적에게 납치된 백성을 구한 권탁, 독립운동가 노백영, 김해지역 최초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여학생 구명순 등도 책에 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도 책에 소개됐다. 일제시대 친일활동을 했던 배정자, 12·12 당시 전두환씨 편에 섰던 이학봉 등 악행을 저질렀던 인사도 2명이 기록으로 남겼다.

김해인물연구회가 발간한 <해동이가 전하는 김해인물 이야기> 책자들.

김해인물연구회가 발간한 <해동이가 전하는 김해인물 이야기> 책자들.

김해인물연구회 회원은 모두 35명이다. 회원들은 저마다 직장이 있다. 김 회장도 김해시 주촌면에서 정육점과 식당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은 매달 한 번씩 모여 새로 발굴할 인물에 관해 토론을 한다. 회원들은 인물을 선정한 뒤에는 자료도 찾고, 유가족들을 만나 기록이나 글을 부탁한다. 이후 유행두 아동문학가, 강길수 웹툰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책을 만들어 내는데 품앗이를 한다.

김 회장은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24일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고 하셨던 말씀이 큰 힘이 됐다”면서 “살면서 제일 보람되고 기쁜 일이 김해인물연구회 모임 활동”이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인물을 탐구하고 꾸준히 책까지 발간하는 모임은 전국에서 김해인물연구회가 유일하다.

김해인물연구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의 한 영화관에서 <서울의 봄>을 단체로 관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김해인물연구회 제공

김해인물연구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의 한 영화관에서 <서울의 봄>을 단체로 관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김해인물연구회 제공

김 회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모여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토론하는 모임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인물 연구라는 분야가 혼자 하기는 다소 힘든 일이지만 무리를 지어 함께하면 역사도 알게 되고 사는 지역의 분위기를 활성화 시키는 성과와 보상이 뒤따른다”면서 “전국적으로 유사한 모임, 더욱 진전된 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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