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옮기기’ 결국 원점…연금개혁 쟁점 뭐기에

송윤경 기자

연금특위 “구조개혁안부터”

모수개혁은 정부 몫으로 돌려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지난 2월 8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민간자문위원회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연금개혁 논의의 방향을 틀었다. ‘얼마만큼 더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이냐’에 집중됐던 토론을 멈춰세우고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 개혁안부터 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금개혁이 얼마나 까다로운 이슈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6개월간의 국회 행보를 보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뒤 연금개혁을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가운데 여야는 지난해 7월 연금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하지만 첫 회의는 10월에야 열었다. ‘지각 출발’을 하고도 민간자문위원회엔 2023년 2월 전까지 초안을 마련해 달라며 촉박한 시간표를 내밀었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자문위가 가장 첨예한 이슈인 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에 집중하자, 이번엔 여야 간사가 나서 토론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모수개혁(현 제도 설계는 유지하면서 수입인 ‘보험료’와 지출인 ‘연금액’ 조정)은 정부몫”(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보험료 9→15%로 인상’ 방안이 거론되면서 여론이 꿈틀대자 “발을 뺀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개혁논의의 로드맵을 부실하게 짠 채로 우왕좌왕한 셈이다.

앞으로 연금개혁 논의는 정부의 ‘모수개혁’과 국회의 ‘구조개혁’이라는 투 트랙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오는 10월 ‘국민연금 종합 운용계획’을 내놓아야 하는 정부는 모수개혁에 집중하고, 연금특위는 스스로 목표를 재설정한 대로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한”(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방안과 “기초연금·퇴직연금 등 다른 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방안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료 인상 뉴스를 접하고 나름의 ‘연금토론’을 벌였던 일반 시민이라면, 구조개혁이라는 추상적 의제가 등장한 이 상황 앞에서 혼란을 느낄 법하다. 그러나 ‘보험료 올릴까 말까’, ‘연금액 더 받을까 말까’를 둘러싼 대화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대 간 연대, 계층 간 연대를 통한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국민연금 취지를 살리고, ‘미래세대 부담 완화’라는 과제도 해결하는 방향으로 공적연금 전반을 손보자는 것이 구조개혁이고, 거기에 적합한 보험료·소득대체율 수치를 찾아내자는 게 모수개혁일 뿐이다.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있고,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 독일의 한 연금학자는 연금과 코끼리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연금 다루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되는 연금개혁. 그렇다면 ‘연금개혁 뉴스’는 코끼리 옮기기의 생중계쯤 되지 않을까. 연금정치의 세계에 입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출입구가 될 만한 쟁점들을 정리했다.

보장강화 vs 재정안정론

이른바 ‘보장강화론’과 ‘재정안정론’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는 자문위가 어떤 출발선에 서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고령화로 인한 ‘미래세대 부담’을 해결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양쪽 모두 이견이 없다. 문제는 시기와 방법론이다.

현 국민연금 제도에서 18~59세의 국민은 매달 보험료를 내고, 63세 이상은 매달 노령연금을 받아가고 있다. 통계가 완전히 공개돼 있는 2021년을 기준으로 보면, 그해 보험료 수입은 대략 53조원이었다. 그중 수급자가 받아간 금액은 약 29조원. 나머지 금액은 기금에 합산됐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래 이 같은 방식으로 국민연금기금을 쌓아왔다. 국내외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얻은 수익까지 포함하면 기금의 전체 규모는 900조원가량 된다.

급격한 고령화를 앞둔 우리에게 기금은 ‘비빌 언덕’ 같은 존재다. 국민연금의 수입(보험료)이 지출(연금 급여)보다 적어지기 시작하면 기금을 ‘투입’해 지출을 감당하면 된다. 그런데 기금이 소진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만약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아 그해의 보험료만으로 그해의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보험료 수준은 대폭 올라간다.

지난 1월 2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기금이 2040년 정점(1755조원)을 찍고 2055년에는 소진된다는 시험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5년 전에 계산했을 때보다 소진 시점이 2년 더 빨라졌다. 기금 소진 뒤엔 보험료를 얼마로 해야 연금액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재정추계전문위 계산에 따르면 월소득의 약 30%(2060년 기준 29.8%, 직장인은 절반 부담)는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미래세대 부담 완화 ‘어떻게’

‘재정 안정론’ 쪽은 지금부터라도 현 세대 보험료를 올려, 미래세대가 감당해야할 충격을 완화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 가입자들에 대한 부당한 부담 지우기 아니냐는 질문에 안정론쪽 전문가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낸 보험료’ 대비 ‘받아갈 연금액’을 뜻하는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비는 국민연금공단 발표 수치로 1.8(평균소득 가입자 40년 가입 기준)이다. 실제로는 2가 넘는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낸 돈의 두배 가까이 받는다는 얘기다. 안정론 쪽은 “수익비 1을 넘는 부분은 미래세대에 의지한 몫이므로, 보험료는 올리되 연금액을 더 늘리지 말자”(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고 말한다.

‘받아갈 연금액’의 또 다른 지표로는 ‘소득대체율’이 있다. 지금의 평균 소득자 기준 소득대체율(42.5%·2028년 40% 도달)은 보험료를 내던 청·장년 시기 월 100만원을 벌었다면 나중에 월 연금으로는 42.5만원씩 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40년 납부 기준). ‘소득대체율 40% 유지’로 알려진 안정론의 입장은 보험료율은 올리되 현 가입자에게 주어지는 이런 수익 수준을 높이지는 말자는 뜻을 담고 있다.

반면 ‘보장강화론’은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현행 40% 수준의 소득대체율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도입 때 70%였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거쳐 현재 수준으로 내려왔다. 만약 보험료를 올릴 거라면, 소득대체율 역시 40% 수준에서 조금이라도 더 올려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이라는 애초의 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보장강화론 쪽은 이에 대해 “미래세대 부담을 현세대의 보험료만으로 완화해주겠다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업자인 기업 몫을 늘리거나, 일정기간 조세(국가예산)를 투입해 해결할 수 있다”(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고 말한다. “지금 세대도 기업에 세금을 더 지우지 못했으면서, ‘미래세대에선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으며 세금이든 보험료든 모두 미래세대의 부담이다”(오 정책위원장)라는 반박에 대해선 “독일에선 상당분을 국고가 부담하고 있고 프랑스에선 사업자 몫(기업)에 상한을 두지 않고 보험료율을 매긴다. 우리가 발상의 전환을 못 하고 있을 뿐이다”(남 교수)라는 재반박이 나온다.

소득대체율이 뭐길래

안정론은 “보장강화론이 주장하는 소득대체율 강화가 ‘노후소득 보장’으로 제대로 이어지지도 않는다”(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고 본다. 연금 가입기간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등 중심부에 있는 노동자는 연금 납부(가입)기간이 긴 반면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는 짧을 수밖에 없다. 현 제도상의 소득대체율(현행 42.5%·2028년까지 40% 도달)은 ‘보험료 40년 납부’를 전제로 한 것이라 실제 이만큼을 적용받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2020년 처음 연금을 받기 시작한 이들(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납부) 기간은 18.7년으로, 이들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2.4%이다. 납부기간이 ‘평균 이하’라면 대체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019년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국민연금 내부 통계자료를 보면, 1970년생의 소득 상위 10%의 예상 가입(납부) 기간은 33.9년인 반면 소득 하위 10%의 가입기간은 19.4년이다. 아울러 소득이 거의 없는 실업자, 전업주부, 학생 등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까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안정론 측이 소득대체율을 올려봤자 납부기간을 많이 채운 상위층에만 도움이 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이들은 대체율 상승 대신 보험료 납부를 안 했어도 납부기간으로 쳐주는 크레딧 제도를 확대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반면 강화론은 “크레딧은 보완 장치일 뿐이고 노후 소득을 올려주는 기본 뼈대는 소득대체율”(정용건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선 “크레딧으로 납부기간 1년을 채울 때마다 소득대체율 1%가 올라간다”(석 교수)는 재반박이 나온다.

양쪽 주장을 바탕으로 숫자를 보면 이렇다. 최종 논의를 통해 자문위 내에서 안정론은 ‘보험료율 현행 9→15%로 인상(직장인은 절반 부담)’, ‘소득대체율 40% 유지’, 보장강화론은 ‘보험료율 현행 9→14% 이상 인상(직장인은 절반 부담)’, ‘소득대체율 현행 40→50%로 상향’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양측이 어쨌든 보험료를 올리는 쪽으로 합의를 이뤘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진 이유다.

공통분모가 더 크다

자문위가 격론을 벌이며 숫자를 좁혀가고 있는 사이, 연금특위 의원들은 지난 2월 8일 “모수개혁(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 대신 구조개혁부터 하자”고 나섰다. 논의가 더 복잡해진 것 같지만, 국민연금과 두어 개의 연금을 다층적으로 조합하면 이해의 ‘문’이 열린다.

먼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어떻게 짜맞출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현재 노인 하위 70%에게 지급하고 있는 기초연금은 ‘사각지대’ 없이 해당 노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돈이 흘러 들어간다. 최악의 노인빈곤율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에서 ‘기초연금 강화’는 국가가 노후소득의 최저선을 맞춰줄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7년 월 8만4000원으로 시작한 이 연금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20만원, 30만원으로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40만원으로의 인상을 공약했다.

2015년 5월 서울 강남구 언주로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이석우 기자

2015년 5월 서울 강남구 언주로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이석우 기자

전문가 일부가 제안하는 퇴직연금의 ‘공적 연금화’ 역시 논의 주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가게 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굴리면 기금재원(퇴직연금기금+국민연금기금)은 더 커지고, 노후소득도 효율적으로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 등은 공적·사적 연금을 조합한 다층구조를 권유한다. 각 연금의 역할과 성격이 다르므로 여러 겹으로 쌓아야 국민 노후소득이 탄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층체계를 두고도 시각차는 존재한다. 이를테면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을 중앙에 두고 기초연금은 노후소득 최저선 보장(아래), 퇴직연금은 중상위층의 소득 강화 역할(위)을 맡게 하자”며 구체적인 다층설계 모델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다층론은 유럽에서의 ‘사적연금 강화 논리’로, 중하위 소득자에 대한 공적연금 강화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정용건 위원장)고 본다.

여당은 구조개혁 논의에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통합론 쪽이 내세우는 이유는 ‘형평성’이다.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국민연금에 비해 더 많이 받아가고 있고, 정부는 ‘사용자’로서 공무원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면서 적자분까지 맡고 있다. 국민연금이 기금소진 우려로 보험료 급상승의 충격을 맞는 동안, 정부는 나라 곳간으로 공무원연금 챙겨주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기존 공무원은 두고 신규 유입될 공무원만 국민연금과 동일한 적용을 받게 하자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국민연금으로의 하향평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코끼리 옮기기’의 생중계

“뭐가 이리 복잡하냐”고 느낀다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복지학자들조차 “국민연금이 쓸모없다는 의견에 비하면 개혁의 방법론은 사실 별 차이도 아니지 않나. 이렇게 서로 각을 세울 일인가 싶다”(석 교수)며 답답해하는 상황이다.

2007년 이후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연금개혁에 이번에는 성공할까. 정권이 바뀌어도 방향은 뒤집히지 않는 ‘강력한 연금 합의’가 가능할까. 영국 연금개혁을 분석한 <코끼리 쉽게 옮기기>(후마니타스·2014)의 저자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영국에서 그런 단단한 합의 사례가 있었음을 짚으면서, 이를 가능케 한 조건 중 하나로 ‘대중의 이해’를 꼽았다. “연금위원회가 방대한 자료를 면밀하게 수집해 대중적으로 잘 전달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상태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구조도 같이 논의해야 제대로 가는 거죠. 제가 오늘, 기자들에게 ‘이건 잘된 상황’이라는 걸 설명하느라고 목이 쉬었습니다.” 국회 연금특위가 자문위의 모수개혁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렸음에도 한 전문가는 오히려 “더 잘 해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에게선 “개혁동력을 잃어선 안 된다”, “정공법으로 새로 시작하자”는 반응이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사회복지·연금 전문가들은 대체로 ‘대중의 이해’를 높이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질문을 쏟아내고 이해가 될 때가지 되물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연금정치가 시작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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