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한국남자라면 잘 견뎌야 해”… 그 말을 한 내가 밉습니다

조형국 기자

■ 군에서 뇌종양으로 떠난 동생 잊지 못하는 누나

▲ 5개월 넘게 두통 호소한 동생 손 따주고 진통제 줘 돌려보내
수술 후 ‘다나까’ 안 쓴다고 혼나… 순직 서류도 제대로 처리 안돼

[세상 속으로]“한국남자라면 잘 견뎌야 해”… 그 말을 한 내가 밉습니다

지난해 6월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당시 22세)의 부모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아들이 입던 군복, 그가 치던 피아노에다 사진과 가방까지 그대로 있다. 단 군복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두었다. 아들을 잃은 후 어머니는 군복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가족들은 군 차량이 보이면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다. 군인이 나오면 TV 채널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신 상병의 누나 신민령씨(37)는 “성민이가 하늘나라로 간 후 시간이 멈춘 상태로 살고 있다”고 했다. 신씨에게 신 상병은 14살 차이나는 막둥이였다. 신씨는 신 상병이 어릴 땐 기저귀를 갈아줬고 크고나선 아침잠을 깨워 학교에 보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남동생은 가장 역할을 했다. 누나들이 늦으면 “언제 와”라며 챙겼고 집안에 궂은 일은 늘 도맡았다.

신 상병은 누나에게 “일본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군 입대 전 실용음악을 공부하던 그는 집에서 피아노를 즐겨 연주했다.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는 동생에게 교재를 사다주던 신씨는 “일본에 가서 뭐하게?”라고 물었다. 신 상병은 “구체적인 계획은 전역할 때 다 말해주겠다”며 웃었다. 끝내 누나는 동생의 꿈을 듣지 못했다.

신씨는 “군에서 숨진 동생을 현충원에 눕히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순직 확인을 받기 위해 신씨는 똑같은 서류를 서너번씩 반복해 보냈다. 신씨는 “국가가 필요해 동생을 데리고 갔는데 필요없어지니 가족 보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나는 그나마 여유가 있어서 동생의 죽음을 챙길 수 있었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절대 자식의 억울함을 풀 수 없는 곳이 군대”라고 했다.

신 상병은 뇌종양에 두통약을 처방받는 등 군 당국의 소홀한 대처로 투병하다 지난해 6월17일 사망했다. 2012년 1월 육군에 입대한 신 상병은 입대 후 지속적인 두통에 시달렸고 통증을 호소하며 의무대를 찾았지만 군은 진통제를 처방하거나 손가락을 바늘로 딴 뒤 돌려보냈다.

2013년 1월 가족은 신 상병이 5개월 넘게 아팠지만 부대에서 꾀병으로 여겨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뇌종양 수술을 마친 신 상병이 “네”, “아니오”라고 희미하게 대답하면 국군수도병원 간호장교는 “다시 대답해!”라고 외쳤다. 종결어미 ‘다, 나, 까’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 아들 군에서 떠나보낸 지 10년, 부모는 아직 이유도 몰라

▲ 면회 때 선물 달라며 전화한 아들 불과 1시간 뒤 숨졌다는 연락 와
처음엔 “전부 해결하겠다”던 군, 증거 보존 않고 ‘신병비관’ 결론

[세상 속으로]“한국남자라면 잘 견뎌야 해”… 그 말을 한 내가 밉습니다

10년 전 아들 이가람 이병(당시 20세)을 떠나보낸 어머니 박현애씨(57)는 해마다 아들의 ‘하늘 나이’를 셌다. 지난 10일에도 이 이병의 10주기를 맞아 박씨는 자유로 청아공원 납골당을 찾았다.

이 이병은 2004년 8월12일 부대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전 10시12분. 박씨는 아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시각까지 기억했다. 박씨는 “아들, 면회 며칠 안 남았네. 곧 보겠다”고 했고 이 이병은 “별일 없이 잘 있어요. 그때 뵐게요”라고 했다. 평소 힙합 음악을 즐기던 이 이병은 박씨에게 힙합 음악CD를 전해달라고 했다. 자대 배치 후 첫 면회였기 때문에 박씨는 들뜬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들과의 통화를 마치고 1시간 뒤 박씨는 남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 가람이가 많이 아프대. 부대로 가야 할 것 같으니까 준비하고 있어.” 이때만 해도 박씨는 영문을 몰랐다. 사업차 부산에 있던 남편은 KTX를 타고 서울로 왔다. 부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남편은 “가람이가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다. 부대에 거의 도착해서야 남편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가람이가… 군화끈으로 목숨을 끊었대.”

10년이 지나도록 박씨는 왜 아들이 그런 결정을 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군에선 “전부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박씨는 군을 믿고 장례까지 치렀다. 장례가 끝나고 군은 ‘신병비관 자살’로 결론지었다. 뒤늦게 박씨는 아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부대를 찾아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수첩도, 일기장도 없었다. 아들이 목을 맨 화장실은 사고난 지 5일 만에 공사를 마쳤다. “사고현장을 보존해달라”는 간곡한 요청도 소용없었다.

박씨는 “아들이 마치지 못한 군 복무를 대신 내가 마치겠다”며 통곡했다. 5년 동안 박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말하는 것도 두려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10년 전엔 자살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는 분위기가 더욱 심했다. 100일 휴가를 나온 이 이병은 “힘들고 토할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너만 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건 힘들 테니 잘 견뎌야 한다”고 했던 것을 10년 내내 후회했다.

박씨는 “군은 남편이 사업차 떨어져 지내는 것을 두고 ‘부부 간 불화’라며 자살의 이유로 들었다”고 했다. 박씨는 군의 설명이 잘못됐다는 증거를 직접 찾아야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 휴가 나와 스스로 목 맨 아들, 군은 “우발적 자살” 결론

▲ “구타 막아달라” 항의 받고도 중대장은 별다른 조치 안 해
인권위가 가혹행위 인정해도 가해자는 약식기소 그쳐

[세상 속으로]“한국남자라면 잘 견뎌야 해”… 그 말을 한 내가 밉습니다

2011년 10월16일 휴가를 나온 김범수 이병(당시 20세)은 오전 7시50분쯤 광주 광산구의 한 중학교 숙직실 앞에서 군화끈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이병의 가슴과 양쪽 정강이에서 멍이 발견됐다. 31사단은 부대 내에서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멍이 선임병의 폭행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부검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부검에 동의하지 않았다.

김 이병의 친구들은 김 이병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쪽지에 옮겨 적었다. 쪽지엔 “김 이병의 선임들이 여자친구를 소개할 것을 강요했다고 들었다”, “선임병이 이유없이 (김 이병의) 뺨을 때렸다고 했다”, “생일에 멍석말이 당한 친구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술을 담은)철모 두번 원샷”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 이병의 자살에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선임병의 가혹행위와 지휘관의 부대관리 소홀이 김 이병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사단장에게 형사·행정상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군은 “휴가를 나간 김 이병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순직 요청도 기각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병 2명 중 한 명은 ‘혐의 없음’, 다른 한 명은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다.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김 이병은 첫 외박을 나갔을 때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전화해 “우리 아들이 맞고 있다”고 했다. 이틀 뒤 중대장은 “앞으로 잘 단속시키겠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이병은 “아빠, 이러니까 사람들이 자살하나봐요. 죽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다시 중대장에게 전화했다. 중대장은 “김 이병이 불침번을 세웠는데 일어나지 않아 군기교육을 한 것 같더라”고 했다. 결국 군은 김 이병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김 이병의 아버지는 화물차를 운전하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 순직이 기각돼도, 가해자 처벌이 약식기소에 그쳐도 부모는 어찌 손쓸 도리가 없다.마지막 휴가 때 김 이병은 어머니를 도와 밥상을 차리고 치웠다. “군대 보내니까 좋네”라며 칭찬했던 어머니는 평생 그 말을 후회했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바보같이 애 마음을 몰랐을까 죄책감만 든다. 아들 가기 전도, 가고 나서도 무식한 엄마는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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