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제 놓고 정반대 입장에 선 한국과 미국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의원들의 대북제재 관련 질의에 “대북제재를 완화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의원들의 대북제재 관련 질의에 “대북제재를 완화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종전선언, 대화 복원을 위한 제재 완화 등을 추진하면서 북한 문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자 한·미 간 입장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대한 유화적 조치 필요성을 제기한 것에 대해 미국이 공개적인 반박을 내놓는 이례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한·미가 북한 문제를 놓고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막판 시도’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의 입장 차이는 방법론에서 두드러진다. 한·미 모두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감하고 있으나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유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북한 문제를 대화의 트랙 위에 올려놓으려는 생각이 강하다. 이를 위해 대북제재 완화와 과감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보고 미국이 이에 협조해줄 것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줄곧 내세우면서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서 느슨해진 대북제재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에 쫓긴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 남북관계 진전, 남북정상회담 등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미국의 반대 신호도 더욱 선명해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했으나 북한이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들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북한에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북한의 반응이 부족했기 때문에 협상이 안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1일(미국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키 대변인은 이날 북한 문제과 관련해 “북한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했으나 북한이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1일(미국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키 대변인은 이날 북한 문제과 관련해 “북한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했으나 북한이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정 장관이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미국은 즉각적으로 반박했다. 미 국무부는 1일(미국시간) 정 장관 발언에 대한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논평 요청에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며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함께 외교를 통해 이를 이행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국무부는 이어 “국제사회는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며, 미국과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강력하고 통일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함으로써 한국이 대북제재 문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경계했다.

미국 정부 사정에 밝은 외교전문가는 “바이든 행정부는 줄곧 대북문제에 대해 ‘한국과의 한 목소리’를 강조해왔으며 종전선언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며 이견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 했다”면서 “최근 한국이 본격적으로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미국도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한 태도로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은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국제적 대북제재 체계를 정비하겠다는 뜻이 강하다. 실제로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4월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대북 보고서를 입수해 바이든 행정부가 무뎌진 제재망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보고서에서 회원국들의 대북제재 이행능력 부족을 지적하면서 북한의 무기밀거래와 사치품, 광물거래, 돈세탁에 대한 추가제재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핵외교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문제 어젠다는 모두 미국이 키를 쥐고 있는 사안”이라며 “미국이 한국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순항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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