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외국인 유권자' 느는데 투표율 하락세…이유는?

정희완 기자

김은혜 “중국인 지방참정권 가지는 것 불공정” 발언

전문가들 “외국인 혐오 부추기지 말고 포용성 보여야”

처음으로 지방선거 선거권이 주어진 외국인들이 2006년 4월 15일 서울 중구 한성 화교소학교에서 열린 투표시연회에서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모의 투표를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처음으로 지방선거 선거권이 주어진 외국인들이 2006년 4월 15일 서울 중구 한성 화교소학교에서 열린 투표시연회에서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모의 투표를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외국인은 ‘주민’일까 아닐까.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 18세 이상이면서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 이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은 2005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했다. 외국인도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주민으로서, 지역 살림을 꾸려갈 대표자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등 국정선거의 투표권은 아직 없다.

2006년 지방선거 이후 외국인 유권자는 계속 증가했지만 투표율은 하락했다. 투표권에 대한 인식, 차별·혐오 분위기, 정치권의 무관심 등 복합적인 요소가 원인으로 거론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 가능한 외국인은 역대 최다다. 형식적인 참정권을 넘어 실질적인 정치 참여로 나아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은혜 전 의원이 지난 4월 22일 6·1 지방선거의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된 뒤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김은혜 전 의원이 지난 4월 22일 6·1 지방선거의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된 뒤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외국인 참정권의 정략적 이용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문제, 국가 간 공정성 관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지난 4월 14일 경선 후보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글이다. 그는 “우리 국민은 단 한명도 중국에서 투표하지 못하는데 1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우리나라 투표권을 가지는 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3월 말 기준 6·1 지방선거의 외국인 유권자는 12만6668명이고, 이 가운데 중국인은 9만9969명(78.9%)으로 추정했다.

김 후보는 “‘영주권 취득 3년 경과’ 요건을 강화하는 등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현행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은 국가 상호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최소한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라도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후보가 외국인 유권자 가운데 유독 중국인을 강조하자 ‘반중 정서’에 기대 외국인의 참정권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KIN)는 공동성명을 내고 “경기도에 거주하는 외국 주민과 다른 주민을 편 가르기하는 전형적인 혐오 선동 방식”이라고 밝혔다.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김 후보의 발언을 이렇게 우려했다. “이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볼 수도 있지만, 더 큰 문제로 번질 여지가 있어 긴장하게 된다. 재일동포를 향한 일본인의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을 향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가 외국인에게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 우리 동포 입장을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최상구 지구촌동포연대 사무국장도 “국내 이주민을 향한 혐오를 조장한다면 해외동포들도 같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 지방참정권의 역사

일본사회에서 차별과 배제에 시달린 재일한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은 숙원이다. 한국 정치권에서 외국인의 참정권 문제가 본격 논의된 건 재일한국인의 처지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외국인 참정권을 인정하면, 상호주의에 따라 일본도 재일한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토록 견인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었다. ‘남이 안 하니까 나도 안 한다’가 아니라 ‘내가 먼저 해서 남도 하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외국인 참정권 법안이 통과되기 전인 2005년 6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선거법소위원회 회의에서도 관련 발언들이 나왔다. “우리가 전격적으로 해주면 일본에 굉장히 좋은 영향”, “재일동포의 경우 굉장히 명분이 설 것 같다” 등이다.

한국에서 외국인 참정권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른 건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뒤부터다. 정부는 1999년 장기 체류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관련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2002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법사위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헌법에 위배된다”며 반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7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재차 일본에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했다. 한국 국회가 2005년 관련 법 통과로 지방선거에 한해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지만, 일본은 현재까지도 재일동포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4년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외국인 주민과 함께하는 설 한마당’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제기차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외국인 주민과 함께하는 설 한마당’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제기차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인도 지역사회의 주민

그렇다면 한국도 외국인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까. 지방자치의 취지,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흐름 등을 고려하면 외려 유지·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외국인이 지방선거에서 투표한다는 것은 지역공동체의 정치의사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다. 외국인이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활한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지방정부의 여러 정책은 외국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참정권 문제를 연구해온 이윤환 건양대 국방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지방자치의 본래 취지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또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도 참정권이 필요하다며 “인간이 국경을 초월해 생활하는 오늘날에는 국적을 기준으로 한 인권보장은 실태와 맞지 않다”고 밝혔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이민학회장)도 “투표권이 있다는 건 배제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참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국인이라도 자신이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국적을 따질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 합당한 주민인지를 봐야 한다. 과거 미국에서 생활할 때 지역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는데 여권을 요구받지 않았다. 지역 은행의 계좌나 집으로 온 우편물 등을 통해 해당지역에서 생활하는 주민이라는 점만 입증하면 됐다. 외국인의 지방참정권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 자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장은 영주권 취득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고 한국이 영주권 전치주의를 시행 중인 점을 들며 참정권 자격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주권 전치주의는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주권부터 받아야 하는 제도로 한국은 2018년 12월부터 적용하고 있다. 곽 원장은 “영주권 취득자 대부분은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며 “외국인 참정권은 세계적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라고 했다. 최소 40개국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저조한 투표율

외국인 유권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6년 6726명이던 외국인 유권자들이 2010년 1만2875명으로 늘었다. 2014년 4만8428명에서 2018년에는 10만6049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번 6·1 지방선거는 아직 선거인 명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12만6668명으로 추정된다. 다만 전체 유권자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기준 0.25%에 불과하다.

투표율은 2010년 35.2%, 2014년 17.6%, 2018년 13.5% 등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원인을 묻는 질의에 “외국인 투표권자 증가와 투표율이 비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유의미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저조한 투표율의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꼽힌다. 우선 외국인이 투표권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11월 연구용역을 통해 발간한 ‘이주민의 권리에 기반한 사회통합 방안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설문조사에 응한 영주권 보유 외국인 33명 가운데 42.4%가 투표권이 없는 것으로 인식했다. 24.2%는 투표권 여부를 몰랐다. 보고서는 “향후 교육 또는 홍보 등 정책적인 대응이 필요해보인다”고 했다.

외국인을 향한 차별·혐오 분위기도 투표율 하락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윤인진 교수는 “낮은 투표율은 외국인의 사회통합 수준이 낮다는 걸 보여준다”라며 “투표를 한다는 건 소속감을 갖는 일인데 영주권이 있어도 자신이 사회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약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외국인의 참정권을 높이기 위한 직접적인 노력보다는 우선 이들이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윤 교수는 지적했다. 그러면 투표율은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외국인들이 더 조직화·세력화돼서 표를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증진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투표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곽재석 원장도 “정치권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지 말고 포용성을 보여주는 등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단순히 국민에게 차별·혐오를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만으론 개선이 어렵다”고 했다. 윤 교수와 곽 원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변 ‘재외동포연구모임’의 조덕상 변호사는 “외국인들의 언어로 후보자의 공약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가 필요하다. 또 제대로 된 이주민 공약 자체가 없다 보니 투표를 할 동력이 떨어진다”라며 “투표율이 낮으니 정치권에서도 외국인을 별로 관심 갖고 안 보는 등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링크 센터장(48)은 외국인이 투표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점을 언급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한다. 그들 입장에선 이주민이 소수이기 때문에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 이주민 얘기를 할 때 차별과 혐오의 발언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부터 고쳐주면 정말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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