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처럼 머물고, 김정일처럼 다녀갔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김정은 추정 인물’의 25시간

댜오위타이 18호실서 숙박…백두혈통만 타는 기차 이용

중, 김정은 관련 보도 통제…가는 곳마다 ‘국빈급 경계’

중국 보안요원들이 북한 최고위급 방문 이틀째인 27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베이징 | AFP연합뉴스

중국 보안요원들이 북한 최고위급 방문 이틀째인 27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베이징 | AFP연합뉴스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중국 방문 이틀째인 27일 외국 국빈이 묵는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台)는 전날에 이어 경비가 한층 강화됐다. 댜오위타이에서 출발한 차량 행렬이 가는 곳마다 교통이 통제되고 경계가 강화되는 등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오전 댜오위타이 진입로 곳곳에는 접근 금지선이 세워졌다. 각 출입구 인근에는 공안차량이 줄지어 주차됐고, 곳곳에 이어폰을 착용한 공안요원들이 배치됐다. 맞은편과 인근 버스정류장에도 공안요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최고위급 인사는 김일성 주석 방중 당시 항상 머물렀던 18호실에 묵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에 온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18호각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은퇴를 앞둔 1991년 김일성 주석을 초청해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설명한 곳이기도 하다.

■ 긴장·주목 ‘베이징 25시간’

오전 9시30분쯤 무장경찰의 호위와 함께 검은색 승용차 수십대로 이뤄진 차량 행렬이 댜오위타이를 빠져나가 베이징 서북부 중관춘으로 향했다. 중관춘 일대는 교통이 통제됐다. 특히 ‘창신문화광장’은 출입구 1㎞ 앞부터 봉쇄됐다. 중국 과학원 베이징 분원인 이곳은 연구동이 밀집된 단지다.

차량 행렬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시내로 향했다. 차량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톈탄(天壇)공원으로 이동했다가 낮 12시쯤 댜오위타이에 도착했다. 오후 3시쯤 이들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특별열차가 역을 출발하면서 25시간의 베이징 일정이 끝났다.

김일성처럼 머물고, 김정일처럼 다녀갔다

최고위급 인사의 방중은 지난 25일 오후 10시쯤 북·중 접경 지역인 단둥역에 북한 특별열차가 도착하면서 처음 포착됐다. 녹색 차체에 노란색 선이 들어간 21량의 이 열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 방중했을 때 탄 차량이다.

이 열차는 단둥에서 선양을 거쳐 1100㎞를 달려 26일 오후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대표단 일행은 댜오위타이를 거쳐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국빈 접견 장소인 인민대회당으로 이동해 5시간가량 머물렀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 지도자가 한반도 정세와 비핵화, 대북 제재 완화 등을 논의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 18년 전과 닮은꼴 방중

이번 방중은 2000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이 1차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앞두고 베이징에서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과 만났던 것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찾은 김정일 위원장은 장 주석과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첫 중국 방문, 열차를 이용한 점 등이 같다.

직접 항공기를 조종하는 사진을 공개할 정도로 비행기를 좋아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를 타고 방중했다면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 노정을 따라가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이동 수단으로 열차를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 김정일을 따라가려는 것”이라며 “대북 제재 이후 원유난 등 어려움을 간접 항의하고, 외부의 주목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달 중순 스웨덴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경유했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베이징에 머물면서 중국 외교 당국자와 비공개로 접촉해 이번 최고위급의 방중 일정을 구체적으로 조율했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27일 오후 특별열차는 베이징을 떠났지만 북한으로 바로 돌아갈지, 아니면 선양 등 제3의 지역을 거쳐갈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도 2011년 베이징에 이어 헤이룽장과 지린성을 방문해 산업 시설을 돌아봤다. 이번 방중에 들른 중관춘도 2011년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방문했던 곳이다.

중국 당국은 김정은 방중설에 대한 보도를 통제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과 관련 글을 삭제하며 단속에 나섰다.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26일 오후까지만 해도 북한 고위급 인사가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특별열차 등의 사진이 떴으나 당일 저녁부터 사라졌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는지, 방중단에 누가 포함됐는지 등 관련 질문이 쏟아졌지만 “모른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