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통치 10년

빠르게 ‘유일 영도 체제’·핵무력 완성…경제난은 가중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북한 김정은 통치 10년]빠르게 ‘유일 영도 체제’·핵무력 완성…경제난은 가중

일부의 ‘정권 붕괴’ 전망 깨고 안착
선대와 다른 스타일…고립은 심화

2011년 12월19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틀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을 때 전 세계는 북한의 앞날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은둔국가에 권력 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후계자가 27세의 젊은 나이라는 점,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권력세습이라는 점, 강력한 국제제재 속에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고 있는 나라라는 점 등에서 북한의 미래는 지극히 불투명해 보였다. 수년 내에 북한 정권이 붕괴하고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고, 스위스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젊은 지도자가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다. 젊은 후계자는 빠르게 권력을 장악한 뒤 ‘유일 영도 체제’를 구축했다. 선대와는 다른 통치 스타일로 북한을 이끌어가는 젊은 후계자 김정은(사진)의 권력기반이 공고하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북한은 진전된 핵기폭장치와 장거리 투발수단을 확보해 핵무장에 성공한 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과 새로운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핵을 가진 1인 독재국가이자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 북한은 국제적으로 점점 고립되고 있다.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경제난은 점점 가중되고 있지만 북한은 위기 돌파를 위해 국제적 협력이 아닌 ‘자력갱생’이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선택했다.

■ ‘김정은 시대 사회주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김정은은 인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지 1년 남짓 된 앳된 모습이었다. 직책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전부였다. 할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도 없고, 아버지와 달리 후계 준비기간도 짧았던 그의 앞날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김정은은 권력 개편·승계 작업을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10주기인 지난 17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모습을 조선중앙TV가 1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10주기인 지난 17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모습을 조선중앙TV가 1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후견인이던 장성택마저 제거, 1인 공포통치 길 열어
아버지 이어 핵개발에 매진…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
제재 강화에 중국과 더 밀착 속 ‘고난의 행군’ 버티기

그러나 김정일 사망 보름도 지나지 않아 인민군 최고사령관 자리에 올라 군부를 먼저 장악한 뒤 이듬해 당·군·정 최고 직위를 모두 접수했다. 2013년 반대파들을 이용해 장성택마저 제거하는 ‘공포정치’를 통해 1인 독재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또한 노동당을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시키는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함으로써 선대의 ‘선군정치’에 힘입어 비정상적으로 커진 군의 특권과 영향력을 차단했다. 정치경험이 없는 젊은 지도자가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절대적인 권력을 확보한 것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를 통해 선대와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선포했다.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개인적인 언급과 선군정치 등 과거를 연상케 하는 용어가 당 규약에서 사라졌다. 주석단 뒤에 걸려 있던 김일성·김정일 사진 대신 노동당 마크가 등장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특히 과거 북한의 기본 정치 방식이던 선군정치를 ‘인민대중 제일주의’로 바꾼 것은 김정은의 10년간 통치 경험과 공고해진 권력 기반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표현이다. 김정은 유일영도체제와 노동당 중심의 국정운영을 기본으로 하는 ‘김정은 시대 사회주의’를 확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만패불청’ 핵무장 질주

김정은 시대 북한의 가장 특징적 변화는 핵무력 완성이다. 김정은이 권력 승계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 직전 만들어놓은 북·미 합의를 바탕으로 2012년 ‘2·29 합의’를 승인했을 때만 해도 유럽 유학 경험을 가진 젊은 지도자가 이끄는 변화된 북한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29 합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장거리로켓을 발사하고 서방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선대에서 유지했던 ‘핵무장에 대한 모호성’을 벗어던졌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부인하거나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보였던 것과 달리 김정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향해 달려나갔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4번의 핵실험과 62회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와 국제적 고립, 유일한 우방이던 중국과의 관계 악화 등이 이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 핵을 손에 넣는 것이 최우선이고 수습은 나중에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북한이 핵을 완성하기 전에 어떻게든 협상으로 막으려 했으나 김정은의 이 같은 ‘만패불청’ 핵개발 질주로 끝내 대화의 길을 찾지 못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핵개발에만 매달려온 김정은의 집념은 2017년 11월29일 화성-15형 발사와 함께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결실을 맺었다. 북한은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수준의 핵탄두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전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 마지막 퍼즐 ‘경제난 극복’

김정은은 2012년 첫 공개연설에서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은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하고 핵무력 완성에도 성공했지만, 이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경제난 극복은 김정은이 계획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북한의 경제난은 권력 기반 강화와 핵무력 완성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어서 체제를 유지하고 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는 동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특히 2016년 이후 유엔 제재는 ‘핵개발 저지를 위한 제재’에서 ‘고통을 가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제재’로 성격이 바뀌었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불과 한 달 만에 대화 국면으로 서둘러 전환하게 된 것은 그만큼 핵·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받은 내상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정은은 2013년 ‘경제와 핵무력의 병진 노선’을 내세웠다가 2017년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병진 노선 대신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핵을 완성했으니 이제는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핵보유국 인정과 제재 해제를 얻어내려 했던 김정은의 시도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실패로 돌아갔다. ‘핵무력 완성 이후 경제난 타개’라는 김정은의 계획은 북·미 협상 결렬로 틀어졌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북한 경제에 절대적 영향을 가진 중국과의 교역이 차단됐고 2020년에는 자연재해까지 겹쳐 북한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경제는 조금씩 지표가 상승하는 추세였으나 대북 제재가 강화된 이후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코로나19 사태가 겹친 지난해에는 -4.5%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김정은이 직접 ‘고난의 행군’을 언급할 정도로 위기에 빠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내놓은 방안은 ‘자력갱생’이었다. 대외협상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부적으로는 국가 관리 경제체제가 강화되고 시장경제 요소들이 다시 약화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부의 힘만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격화로 북한은 중국과 밀착하며 버틸 여력을 찾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또 하나의 위험 요소다.

김정은은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에서 인민들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0년간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하고 핵무장에 몰두한 결과이기도 하다. 북한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그 변화는 대외관계 개선을 위한 결단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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