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TMI

두 자루 권총에서 ICBM ‘화성-17형’으로…김정은이 꺼내든 ‘총대 철학’

박은경 기자

[북한TMI] “어려운 북한 소식, 알기 쉽게 풀고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군악대원들이 대형을 맞춰 ‘두 자루의 권총’을 그려냈다.  조선중앙TV 화면

지난달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군악대원들이 대형을 맞춰 ‘두 자루의 권총’을 그려냈다. 조선중앙TV 화면

지난달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군악대원들이 대형을 맞춰 숫자와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들은 열을 맞춰 기념일 날짜인 ‘4·25’, 90주년이라는 뜻의 ‘90’과 함께 ‘두 자루의 권총’을 그려냈다. 권총이 형상화되는 데 맞춰 조선중앙방송 아나운서는 “백 번 쓰러지면 백 번 다시 일어나 싸우는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백두혈통의 근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을 계기로 ‘두 자루 권총’으로 상징되는 ‘총대(권총)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두 차례 연설에서는 권총에서 ‘핵보유국’으로 성장한 국방력 발전 과시에 초점을 맞췄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에서 “두 자루의 권총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 그 어떤 강적도 전률케 하는 무적강군으로 자라난 우리 군대의 력사는 세계의 군건설사에 전무후무하다”고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0일 보도한 군 지휘성원들 격려 자리에서는 “두 자루의 권총을 밑천으로 한 우리 혁명무력의 첫걸음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고 천하무적인 혁명적당군의 위풍당당한 보무로 이어지고 안도의 밀림에서 울린 싸창소리가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허세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화성포의 뢰성으로 천지를 진감하고 있는 위대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형직-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총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총대의 신화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 주석이 14살 때 부친인 김형직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성주(김일성 본명)가 커서 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라”는 유언과 함께 권총 두 자루를 남겼다. 이후 1952년 6·25전쟁 당시 1121 고지에서 싸우고 있던 김일성은 당시 11살이던 김정일에게 이 총을 다시 물려주면서 “이 총이 혁명의 계주봉이며 혁명의 승리를 담보해주는 방조자”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총은 평양 해방산동에 위치한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 전시돼있다. 전문가들은 이 권총이 벨기에 FN사가 개발한 FN M1900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권총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도 쓰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일을 계기로 ‘두 자루 권총’으로 상징되는 ‘총대(권총)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일을 계기로 ‘두 자루 권총’으로 상징되는 ‘총대(권총)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정통성 부여하는 수단인 ‘두 자루의 권총’

총대는 혁명 전통을 김형직-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이 승계하는 과정과 정당성을 보여준다. 김정은 위원장은 총대를 내세워 군사력과 정통성을 동시에 선전하려고 한다. ‘항일 빨치산’인 조선인민혁명군 기념일에 처음으로 열병식을 연 것도 두 개의 권총으로 상징되는 항일 투쟁의 역사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연설에 대해 “두 자루의 총으로 시작한 북한의 군사력이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허세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화성포의 뇌성’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화성-17형 완성에 부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 장기화, 만성적 경제난이라는 어려움을 덮기 위해 ‘총대철학’을 내세웠다는 관측도 있다.

정한범 국방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에서 집권 초에는 핵·경제 병진 노선, 2018년에는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선포했지만 경제중심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핵화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와 경제 재건에는 실패했다”면서 “김 위원장이 ‘총대철학’을 내세워 성과에 대한 평가는 전통과 역사의 뿌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며 내부단속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원수 계급장이 달린 하얀색 군복인 원수복을 착용하고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도 김일성 따라하기를 통한 정통성 확보로 해석된다. 흰색 원수복은 김일성 주석이 1953년 7월 6·25전쟁 휴전협정 직후 평양에서 전승 열병식을 열었을 때 처음 입고 나타나 최고통수권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총대철학과 마찬가지로 김일성-김정일을 이은 정통성 과시를 통한 권위 세우기 차원으로 읽힌다.


Today`s HOT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해리슨 튤립 축제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