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 나돈다는 ‘검사 윤석열 파일’의 정체는

정용인 기자

잠행 길어짐에 따라 뜬소문만 무성…출마 행보 뚜렷해져야 실제 평가 가능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창림 기념토론회가 열린 5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정용상 상임대표,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진중권 전 동양대학교 교수(왼쪽 세 번째부터 오른쪽으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창림 기념토론회가 열린 5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정용상 상임대표,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진중권 전 동양대학교 교수(왼쪽 세 번째부터 오른쪽으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그건 민감한 문제이니, 대표에게 문의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5월 27일 저녁, 기자와 통화한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참여 인사의 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관계’에 대한 기자문의에 그는 끝내 자신이 말할 위치가 아니라며 입을 닫았다.

5월 21일 이 단체는 ‘창립 및 기념토론회’를 열었다. 언론은 윤석열 지지 전문가·학자 그룹이라며 이 단체의 출범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기념토론회 주제는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였다. 이 단체와 윤 전 총장의 관계란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이 윤 전 총장의 석사 논문 지도교수라는 것과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기조발제자라는 것이었다. 송 전 소장과 진 전 교수가 대권주자 윤석열 포럼에 합류했다는 착시(錯視)를 만들어내기 좋은 구도다.

■ 지난해 ‘작은정부운동연합’ 판박이?

그러나 기자가 참석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실상’은 달랐다. 송 전 소장은 “상임대표를 맡은 정용상 교수의 간곡한 요청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국제적 경험을 정리해 간단하게 말씀드려볼까 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조강연은 ‘국제형사재판소 활동을 통해 본 국제기구 실상’에 대한 개인 경험담에 가까웠다. 행사 뒤 송 전 소장은 윤석열 전 총장과의 관계에 대한 기자문의에 “윤 전 총장은 내가 가르쳤던 수천명 제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진중권 전 교수는 “행사의 제목인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라는 제목을 사전에 전달받지 못했다”고 강의 도입부에 밝혔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서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출마 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출마한다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같이할 것인지 정치일정에 관해 긍정적으로 볼 어떤 하나의 사실도 알려진 바가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윤석열 현상’으로 나타난 공정에 대한 욕망의 실체가 뭔지 짚어보고, 특정정당의 후보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뜻이 있는 모든 정치인이 짚고 가야 할, 새겨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토론에 나선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이렇게 자신의 ‘소감’을 먼저 밝히고 토론을 시작했다. “1994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무수한 토론회에 참석했지만, 단 한 번도 대통령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주제로 토론한 적 없다. 진 교수님 못지않게 당황했다.” 이쯤 되면 하필이면 왜 이 시기에 이 단체가 만들어졌고, 또 무엇을 지향하는지 갸우뚱해볼 수밖에 없다.

의혹의 눈은 단체를 만든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에 쏠린다.

창립행사의 앞부분, 경과보고가 있었다. 경과보고에서 단체 측은 지난 2020년 1월 19일 작은정부운동연합이라는 단체를 일부 발기인이 참여해 출범했으나, 바로 다음날 평가회의에서 단체 명칭 변경과 비전과 관련한 토론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정세 변화 등을 반영해 작은 정부 실현이라는 단체의 방향을 수정하기로 해 올해 4월 8일 정 교수 주도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단체명칭을 변경했다.

“…그렇게 출범하면서 가장 유력한 야권주자인 윤석열의 정치참여를 격려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가 모여 방법론을 제안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제안하게 됐다”는 것이 단체 측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윤석열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안을 제안하기 위해 모였지만, 실질적으로 윤 전 총장과 커넥션은 없다는 설명이다. 33인 전문가라고 했지만, 이날 출범식 팸플릿에서는 이름만 나열돼 있을 뿐 구체적인 직책이나 경력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해 1월 2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작은정부운동연합 출범식 보도를 보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 등 ‘키노트 스피커’로 한 행사를 열고 있다. 행사포맷이나 팸플릿이 이번 공정과 상식 출범식과 판박이다.

정 교수는 행사 전 윤 전 총장과 관계를 묻는 언론 질문에 직접적인 관계는 부인하며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반문 네트워크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지만, 언론은 현재까지 이 공정과 상식을 윤석열 싱크탱크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이 단체의 출범에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윤석열 파일 “검사 윤석열 행적 정조준”

윤 전 총장의 잠행이 길어지며 정가에는 여러 소문이 퍼져 있다. 기자는 현 정부 청와대 고위직을 역임한 인사로부터 “MB 때 청와대 출신 인사가 윤 전 총장을 돕고 있는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인사의 주변인사가 ‘선임행정관 출신으로 MB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역임한 모 인사’로부터 윤 전 총장과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론된 당사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5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인사는 “나는 현직검사가 퇴직 후 대통령이나 선출직에 나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며 “게다가 나는 그분(윤석열) 때문에 조사까지 받은 사람인데 전혀 같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신지호 전 의원이 ‘주간조선’ 연재 글에 기고한 “‘검사 윤석열 파일’은 왜 야권에서 등장했을까”라는 글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신 전 의원은 글에서 “대선 시즌이 되면 주요 후보자의 신상을 다룬 문건이 여의도 정가에 은밀히 돌아다닌다”며 “유통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금배지’들도 구하기 힘들다”며 자신이 전해들은 ‘여의도 정가에 등장한 윤석열 파일’을 언급했다.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나 장모의 요양병원 부정수급 의혹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검사 윤석열’의 비위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일에는 윤석열 검사가 수사하면서 특정 피의자를 친소(親疏)관계 때문에 봐주는 등 사건처리를 엄정하게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재벌 비위 수사를 뭉갰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본 결과, 신 전 의원이 실제 파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자세한 내용을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뭉갰다는 ‘재벌 비위’ 수사의 예로는 윤석금 전 웅진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이 간여된 웅진플레이시티 의혹 관련이 거론됐다. 윤석금 회장 관련은 증권가에서는 이른바 ‘윤석열 테마주’로 오래전부터 주목받던 사항이다. 윤 전 총장이 파평윤씨 문정공파 35대손인데, 비록 나이차는 있지만 윤석금 회장도 문정공파 35대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윤 전 총장의 아버지 윤기중 전 연세대 명예교수와 윤 회장의 지역적 배경(충남 논산 및 공주)도 겹친다는 것. 증권가에서는 “윤 전 총장이 2008년 논산지청장 때 종중 묘소와 유적을 두루 참배했다”며 “윤석열의 정치행보 시작점으로 아버지 고향 방문 및 친족 어르신들 인사 가는 것이 필수 코스”라며 웅진 관련 기업을 추천하고 있다.

‘검사 윤석열 X파일’은 어떻게 나왔을까. 신 의원은 기고 글에서 “왜 하필이면 파일이 목격된 장소가 야당 의원실일까”라고 자문하며 여권발 공작이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이런 파일을 만들려면 법무·검찰의 내부정보를 획득해야만 각색을 통해 생산 가능한 ‘작품’인데 야당은 이럴 정도의 정보 수집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답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해석은 다르다. 국민의힘 인사의 말이다.

“소문의 그 파일을 보지는 못했지만 여권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입당 신청한 홍준표 말고도 우리 쪽엔 대선을 향해 최근 부쩍 몸 풀고 있는 검찰 출신 인사가 또 있지 않나.”

이 인사에 따르면 답은 황교안이다.

“알다시피 검찰 권력의 양대 축은 공안과 특수다. 형사부 출신인 김웅 의원 같은 사람은 이 출세라인-엘리트 코스에서 일찌감치 배제된, 말하자면 스스로 출세를 포기한 유형에 속한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 양대 축이 무너졌다. 윤 전 총장은 주요보직에 특수부 측근들을 포진시키며 황 전 총리로 대표되는 공안부 라인을 몰락시켰다. 게다가 황 전 총리는 자신이 법무부 장관 시절 윤 전 총장을 징계한 당사자다. “당연히 윤 전 총장과 관련한 불만이나 정보가 모이는 것은 구(舊) 공안 라인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럴까.

여전히 유튜브에서 기승을 부르고 있는 윤석열 테마주 광고 / 유튜브 캡처

여전히 유튜브에서 기승을 부르고 있는 윤석열 테마주 광고 / 유튜브 캡처

■ “윤석열 메시지·측근 관리 잘되고 있다”

이른바 ‘대권수업’에 한창인 윤 전 총장은 알려진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외활동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수 제3정치 연구소 소장은 “드러난 몇몇 사례만 봐도 윤석열의 정치 감각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앞서 거론한 MB 청와대 인사의 경우 ‘무대’(김무성)의 측근 인사인데 실제 그 사람이 관련됐다면 당장 ‘무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

“최근 윤석열이 만난 사람들이 비록 각계 전문가이지만 윤 전 총장의 초등학교(대광초) 동기로 알려졌는데, 그런 식으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 정치적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윤 전 총장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반기문 때 직접 경험해보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장예찬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 ‘매일 얼굴 보고 (캠프에) 출근하는 입장에서 온갖 웃지 못할 일’을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그런 그룹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정과 상식 포럼에 결합했다는 33인이나 창당(다함께 자유당, “윤석열의 사람들? 검증해보니…” 기사 참조)했다는 사람들 모두 윤 총장의 입장을 과도하게 왜곡해 메시지를 내보내거나, 자신들의 ‘장사’에 이용하는 것이 아닌 한 어느 후보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과거 안철수나 반기문처럼 ‘팔이’가 많은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측근이나 메시지 관리에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봐야 한다.”

대권주자 윤석열의 진짜 ‘실력’은 구체적인 출마 선언 후 다시 평가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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