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김경수의 진실’···대법 판결의 의미와 친문의 운명

박태우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친문 운명·문 대통령 입지 맞물려 정치적 후폭풍 예고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7월 21일 경남도청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7월 21일 경남도청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모 공동정범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오해, 이유모순, 판단누락 등의 잘못이 없다.” 지난 7월 21일 댓글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2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김 전 지사의 정치적 여정도 일단 중단됐다. 그런데 김 전 지사는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했다. 또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라 제가 감내해야 할 몫은 온전히 감당하겠다”고도 했다.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되 진실은 아니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김경수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재심에서 다른 결론이 나지 않는 이상 김 전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댓글조작을 공모했다는 판결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 또 한 번 정치권을 흔들 태풍이 될 수도 있다. 김 전 지사가 여권에서 가진 상징성이 친문(친문재인)의 운명, 퇴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입지와 맞물려 있는 탓이다.

김경수가 주장하는 진실은

김 전 지사는 대법원 판결 직후 페이스북에 대법원 상고심 최후 진술문을 공개했다. 1만자에 이르는 진술문은 최종 판결을 며칠 앞두고 작성됐다. “김동원은 자신과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 악용하고 심지어 불법적인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번 상고심이 지금까지의 재판을 통해 드러난 사실에 기초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과정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증거들이 있는 그대로 다뤄지고, 증거가 말하는 대로 항소심 판결이 이뤄졌는지 살펴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했다. 요약하자면 ‘드루킹’ 김동원이 불법적 행위에 자신을 이용했고, 항소심 판결은 증거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친문계도 김 전 지사의 주장에 동조한다. 한 친문 의원은 “김 지사가 최후 진술문에 밝힌 대로 재판부는 드루킹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결론을 내렸다”고 항변했다. 그는 ‘법원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하자 “삼권 분립은 입법, 행정, 사법의 결론이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왜 법원의 판단이 무오류라고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일부는 공개적으로 사법부를 직격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SNS에 올린 글에서 “오늘의 사법부가 과연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라며 “대법원이 김 지사의 항소를 기각한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고 썼다. 그는 “김 지사는 순수한 지지를 가장하고 다가온 검은 음모의 희생자일 뿐”이라며 “대법원이 눈감은 진실이 양심과 역사의 법정에서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민 의원 역시 SNS를 통해 “사법제도를 존중해야 하지만 우리의 사법 시스템이 온전히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의 주장에 친문이 동조하는 것은 본질적 문제와 연관된 탓이다. 김 전 지사와 친문은 사실상 ‘운명공동체’다. 그는 친문 적통 중의 적통으로 인식된다. 그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94년 민주당 신계륜 의원실 보좌진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후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노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제1부속실 행정관을 거쳐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냈고,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게 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정치권과 거리를 두다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권 도전과 함께 여의도로 복귀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고, 경선 기간 문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대선 선거운동 때는 문 대통령을 24시간 밀착 수행하는 ‘복심’으로서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당·청 간 가교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당선되면서 일약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체급을 높였다. 그는 지금까지 남은 친문의 유일한 적자였다. ‘노무현의 왼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2018년 보좌진의 ‘미투’ 폭로로 정치적 생명을 다했다. ‘오른팔’ 이광재 의원은 이번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과정에서 정세균 전 총리와의 단일화로 조기에 물러났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018년 12월 13일 경남 창원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제조혁신 전략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018년 12월 13일 경남 창원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제조혁신 전략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친문의 마지막 버팀목

‘김경수의 진실’이 부정되는 것은 친문계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는 퇴임 후 문 대통령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당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 측의 최인호 의원은 대법원 판결 후 페이스북에 이 후보와 김 전 지사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대통령을 부탁드린다.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고, 이 후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 잘 지켜드리겠다”고 했다. 짧은 통화 내용은 이번 판결로 닥칠 정치적 후폭풍을 암시한다. 청와대는 김 전 지사 판결 이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고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김 전 지사는 징역형 2년에 출소 후 피선거권 제한 기간 5년을 더해 향후 7년간 대통령·국회의원 등 공직 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1심 판결 후 구속수감됐던 77일을 빼도 2028년 4월에야 피선거권이 회복된다.

그는 재기를 다짐했다. 지난 7월 26일 창원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바뀔 수 없다. 외면당한 진실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은 가시밭길도 차근차근 헤쳐나가겠다. 제게 주어진 2년의 시간을 묵묵히 인내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친문계 의원도 “다음 정권에서 김 지사에 대한 사면복권 문제가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복권될지는 미지수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했던 허익범 특별검사는 김 지사의 실형이 확정된 직후 “특정인에 대한 처벌의 의미보다는 공정한 선거를 치르라는 경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동화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 참관 사실 등 인터넷 댓글 순위 조작에 관여한 사실, 공직을 제안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김 지사가) 기소된 범죄사실 대부분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는 진실을 밝혀달라는 피고인에 대한 답”이라고 말했다.

그가 정치적 재기를 위해서는 다시 ‘드루킹 족쇄’와 지난한 다툼을 벌여야 한다. 김경수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진영이 정권을 차지하든 언제든 정국을 뒤흔들 뇌관으로 부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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