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게이트는 14년 전 BBK와 어떻게 다를까

정용인 기자
10월 4일 경기 성남시 판교 대장 도시개발사업구역 일대에 화천대유 의혹에 대한 정치권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기남 기자

10월 4일 경기 성남시 판교 대장 도시개발사업구역 일대에 화천대유 의혹에 대한 정치권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기남 기자

2007년 대선이 치러진 날은 12월 19일이다. 그러나 승패는 이미 2주 전인 12월 5일 결정됐다.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룸에서는 검찰의 BBK사건(당시 공식용어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사건)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됐다.

30분 남짓 당시 기자회견을 TV로 지켜보던 동료 기자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다 끝났군.”

수사결과 발표의 결론은 명확했다. 옵셔널벤처스 자금을 횡령하고 주가조작 및 사문서 위조·동행사를 한 김경준의 행위는 이명박 후보와 무관하며, 김경준이 실소유주라고 주장한 BBK투자자문의 경우도 이명박 후보가 관여됐거나 사기사건에 연루됐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해 대선 출마 자격을 두고 한나라당 내부경선이 치러지던 4월경부터 불거져 여야 본선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BBK 실소유자 의혹’에 대해 검찰은 이명박 후보에게 ‘혐의없음’이라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2018년 재판에서 결국 이명박 구속

“100%라고 할 순 없지만 97% 이상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간담회 자리에서 ‘검찰이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했다고 자신하느냐’는 한 기자 질문에 대해 당시 수사를 총괄지휘한 최재경 부장의 답이다.

1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논란의 결론을 안다. BBK 실소유자 의혹의 핵심은 BBK에 190억원을 묻은 다스의 실소유자 문제로 이어진다. 당시 검찰은 “이 회사(다스)가 실제로 이 후보의 소유라고 볼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발표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8년 재판에서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며 구속기소했다. 지난해 10월 29일 대법원이 원심선고 내용을 확정하면서 논란은 최종 종지부를 찍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현재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박형준 대변인과 당관계자들이 2007년 12월 5일 한나라당사에서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를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  경향자료 박민규 기자

한나라당 나경원, 박형준 대변인과 당관계자들이 2007년 12월 5일 한나라당사에서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를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 경향자료 박민규 기자

“화천대유 누구 겁니까.”

지난 9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을 찾은 국민의힘 ‘이재명 대장동게이트 진상조사 TF’ 소속 의원들의 손에 들려 있던 피켓이다. ‘화천대유 실소유주’를 묻는 질문은 국민의힘 기자회견장이나 1인 시위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도 마찬가지다. 앞엣것은 2007년 이후 BBK-다스 실소유자 의혹, 뒤엣것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현재의 여권, 민주당 쪽에서 사용하던 레토릭이다. 그대로 가져다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모두 한사람을 겨냥하고 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유력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화천대유-대장동 특혜논란은 이재명의 BBK가 될 것인가.

외형상 사건 진행은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장동 논란이 1차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BBK처럼 당내 대선 경선이었다. 핵심관계자가 외국으로 도피한 것도 유사하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뒤지고 있던 박근혜 후보 측은 미국 LA의 연방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경준을 면담하기 위해 유영하 변호사를 보냈다. 그러나 당내경선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전세를 역전하는 데는 실패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당시 여권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이었다.

이명박 후보에 밀리던 정동영 후보 측에서 BBK 실소유자 의혹을 제기했고, 공교롭게도 선거를 한달 앞둔 시점인 11월 16일 김경준씨가 전격 송환되면서 대선은 BBK의 늪으로 빠졌다. 대장동의 경우 어떻게 될까.

야권에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이 지사와 핵심연결고리로 지적하는 사람은 두사람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천화동인 4호’ 남욱 변호사다. 유 전 본부장은 구속됐고, 남욱 변호사는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구속된 유 전 본부장은 자신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을 ‘사법권이 미치지 않은 외국에 있는’ 남욱 변호사에게 돌릴 가능성이 높다. 신속한 수사를 위해서는 인터폴에 의뢰해서라도 남 변호사를 소환해야 한다.

차이점은 김경준의 경우 미국 LA 연방구치소에 신병이 확보돼 있었고, 남 변호사는 국내 언론의 추적을 피해 도피,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남 변호사 소환없이 사건의 실체 규명은 오랫동안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대장동 의혹 관련 해명과 서울지역 공약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대장동 의혹 관련 해명과 서울지역 공약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대장동게이트, 내년 3월 대선까지 갈 듯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2위 주자인 이낙연 후보 측이 제기한 대장동 의혹은 본선에서 야권, 특히 국민의힘이 바통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2007년과 유사점이다. 그리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 남 변호사가 귀국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사건의 실체 규명이 검찰의 판단에 맡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지사 측에서는 “사건 연루자 대부분이 국민의힘과 법조계 관련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년 3월 대선에서 이 지사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실소유자 의혹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야권이 임기 내내 제기할 정치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파나 진영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BBK보다 10배 이상 심각한 사안이다. 엄청난 부패스캔들이다. 설혹 남욱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성남시에서 일했던 유동규가 관련됐다는 점에서 결제라인에서 사인한 이재명 지사의 배임은 확정된 사안이다. 뇌물수수 여부까지 이 지사가 연루됐을지는 더 판단해봐야겠지만.” 국민의힘 인사의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대장동 의혹과 2007년 불거진 BBK의 차이’에 대해 많은 인사는 “양 사안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이 인사는 BBK는 민간영역에서 벌어진 사기사건이었다면 이 건은 공공기관이 농락당했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며, 더 명확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유동규가 혼자 결정한 것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별것도 아닌 중간관리자가 털어먹게 해놨다고 말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그에 비하면 BBK는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진 사기사건이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애매하지 않았나.”

■국민의힘 “BBK보다 악질적인 결탁 비리사건”

그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서는 “2007년 선거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 지사가 과반을 차지한다는 것인데, 대의원이나 선거인단까지 참여한 사람은 대부분 극성지지층, 극소수의 지지자들이다. 그런 와중에도 약 40%의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 아니냐. (이 지사가) 민주당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도 아닌데, 지금 여론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장 두달 전 서울시장선거만 복기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 당에서 ‘오세훈이 나오면 지니 안철수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어땠는가. 당연히 민주당은 깨진다. 질서 있는 퇴각도 아니고 내년 대선에서 거의 역대급으로 아수라판을 만들면서 깨질 것이다. 게다가 선거결과에 대해 승복도 못 하고 지방선거는 하는데, 의석은 170석이 있다.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이 인사는 야권에 제기되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도 대장동에 비하면 파괴력은 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명 공권력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면 심각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옵티머스 의혹은 실체가 있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내부고발 성격이 겹쳐 있는 문제다. 공익적인 문제 제기로 프레임전환을 할 수도 있다. 반면 대장동 개발의혹은 권력을 활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한 비리사건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둘 중 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겠는가.” 과연 그럴까.

민주당 대선 경선과정에 등장한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은 블랙홀처럼 모든 정책과 이슈를 빨아들였다. 당내 2위 주자인 이낙연 후보 측이 대장동 의혹을 이슈화를 시킬 때마다 역설적으로 진영의 위기로 인식한 이재명 지지자들을 뭉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소장은 “대장동과 고발사주 의혹이 각각의 진영에서 유권자 결집을 가져왔다는 것은 데이터가 보여주는 결과”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사주 논란은 최종적으로 윤석열 당시 총장이 보고를 받았는지 규명이 힘들다는 점에서, 또 대장동은 ‘결국 개발이익을 왜 더 환수하지 못했냐’라는 질타로 이어지는데 둘 다 그것만으로는 자기 진영 유권자 결집을 넘어서는 결정타는 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9월 29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 진상조사를 위해 판교 대장동 일대를 방문해 원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9월 29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 진상조사를 위해 판교 대장동 일대를 방문해 원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BBK와 대장동 건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수사상황을 봐야겠지만 이재명 지사가 직접 수뢰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 짚을 것이 설계단계에서 잘못됐다는 것인데, 아파트값이 폭등한 시점과 5년 정도 시차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공세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선 전이든 대선 후든 입증하기엔 무리가 있는 공세로 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2위 주자였던 이낙연은 대장동 이슈가 늪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막판까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것일까.

엄 소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직접적으로 연관된 결정적 증거가 나온다든지 경우의 수를 두고 이재명 후보 사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2007년의 박근혜가 MB로 후보가 확정된 이후에도 BBK 이슈를 놓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찌됐든 대장동 이슈가 이재명이 가지고 있는 핵심가치를 훼손한 것은 맞다. 기존에 대장동 개발 관련 이 지사가 이야기해오던 것은 유능하다, 국정 능력이 있다, 공정과 정의·실행력 등이었는데 이런 부분의 핵심가치 훼손됐다. 그런 면에서 야당은 공세가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보고 특검이나 국정조사 공세를 펴는 것이다.”

그는 이 이슈가 민주당 후보선출 이후 내년 3월 대선까지 계속될 이슈로 봤다.

“처음부터 자신이 설계한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부패사슬과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알고 보니 무능한 거 아니냐’는 반박은 가능해졌다. 결국 이번 대선 승패를 가를 핵심 이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특히 2030·여성이 이 지사의 약한 고리인데 이것을 돌파해내지 못하면 구조적으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유능함… 이재명 핵심가치 타격”

박신용철 더 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BBK와 대장동 이슈의 공통점 중 하나는 팩트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공수 모두 어느 한쪽이 일부러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넓혀 복잡하게 만들면 상대편이나 유권자들은 그 팩트를 쫓아가기에 바쁘다. 피곤해지니 ‘저 사람이 우리 편이냐 아니면 남의 편이냐’에 집중하게 된다. BBK 때도 그렇고 팩트가 사라지면서 구도가 단순해졌다. 이런 식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좀 있더라도 이명박이 우리 편이야. 우리에게 돈을 벌어다 줄 놈이거든.’ 결국 이해관계로 결론이 나는 것이다. 이 지사 캠프도 자꾸 그런 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간다. 실제는 양쪽 다 물타기하는 것이다. 이런 사안은 정확히 이재명 또는 국민의힘 잘못으로 떨어지는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부동산 기득권엔 여야가 없다. 이게 팩트인데 유권자는 누가 자기편이고, 어떻게 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가만 계산하게 된다. 결국 투표율은 떨어지고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지는 검찰에게 맡기는 형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 사건 역시 검찰이 정치하기 딱 좋은 프레임”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아마도 양다리를 걸칠 것이다. 이재명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하면서도 여지를 남기는 방식일 것이다. 문제는 갈수록 정치력을 상실하는 대선으로 간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3김 이후 이명박·박근혜 빼놓고 다 율사 출신이다. 노무현·문재인·이재명까지. 율사 출신 정치의 병폐는 정치를 사법으로 끌고 가면서 스스로 정치를 약화하고 희화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이재명 측에서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이재명 게이트’를 ‘국민의힘 게이트’로 프레임 전환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면이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슈는 계속 터져나올 텐데 과연 저게 관리될 수 있는 사안이냐. 정치고관여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이나 2030·여성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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