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 취재기

전용기보다 18시간42분 늦게 도착···이래도 ‘취재 제한’ 아니다?

심진용 기자

심진용 기자의 ‘민항기 이용’ 순방 취재기

지난 14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경향신문 심진용 기자가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기 위해 다른 취재진들은 모두 자리를 뜬 탓에 프레스센터가 텅 비어 있다.

지난 14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경향신문 심진용 기자가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기 위해 다른 취재진들은 모두 자리를 뜬 탓에 프레스센터가 텅 비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도착 첫날부터 바쁘게 움직였다고 들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고, 오후 들어서는 국내외 경제인들이 함께 한 B20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저녁에는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일정을 소화했다고 들었다. 양국 정부와 경제계 인사들이 여기에 자리했고, 정부·민간의 양해각서(MOU) 10건이 체결·채택됐다고 들었다. ‘들었다’라고밖에 쓸 수가 없다. 그 시간 기자는 기어가듯 움직이는 그랩 택시를 타고 꽉막힌 캄보디아 프놈펜 도로 위를 움직이던 중이었다. 경유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환승 게이트에서는 연신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비행기를 기다렸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이른 오전부터 브리핑에 나서 윤 대통령의 일정을 소개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브리핑 준비 중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일정상 정말로 가능할지는 전날까지 알 수 없었다. 브리핑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공항에서 카카오톡으로 전해들었다. 그 이후로 한참 후속 중계가 없어 긴 브리핑에 아침부터 기자들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최 수석은 프놈펜에서부터 이어진 윤 대통령 동남아 순방 전반의 의미도 설명했다고 한다. 경제외교 키워드로 ‘세일즈 외교’ ‘공급망 강화’ ‘디지털·녹색 파트너십 기반 구축’ 3가지를 꼽았다고 한다. 다음날 있을 G20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국제공조 정신 복원’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기여’ ‘우방국과 연대·협력 기반 강화’ 등 크게 3가지를 들어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텍스트로 내용은 확인했으나, 현장의 분위기는 그저 추측할 따름이었다.

순방취재단 일원으로 대통령과 함께 했어야 할 경향신문은 현장에 있지 못했다. 캄보디아 시간으로 14일 오전 11시 프놈펜에서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인도네시아 시간으로 오후 6시25분에 발리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11시43분에 도착한 윤 대통령보다 18시간42분 늦은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일정이 막 시작하려던 때였다. 윤 대통령이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했다는 것도, 최 수석이 질의응답을 제외하고도 원고지 42장 분량의 브리핑을 했다는 것도 발리에 착륙하고 나서 알았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국익’을 위한 조치라며 MBC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조치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부적절한 처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에 대해 “취재 편의의 일부분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지, 취재 제한은 아니다. 취재에 관한 어떤 제한도 한 바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전용기가 아니더라도 취재에 제한됨 없이 대통령을 쫓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프놈펜에서 발리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경유편도 많지 않다. 인터넷 검색 1분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아니면, 대통령의 발리 첫날 일정은 보도 가치가 없고 취재 대상도 아니라고 대통령실에서 판단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전용기 자체가 취재의 공간이라는 지적도 이미 여러 차례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행(?)인지,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도 기내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14일 민항기로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말레이시아 항공 비행기에서 바라 본 공항의 모습. 멀리 각국 정상들을 태운 비행기가 있고 오른쪽 끝에 전날 먼저 입국한 한국 대통령 전용기의 모습도 보인다. 발리|강윤중기자

14일 민항기로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말레이시아 항공 비행기에서 바라 본 공항의 모습. 멀리 각국 정상들을 태운 비행기가 있고 오른쪽 끝에 전날 먼저 입국한 한국 대통령 전용기의 모습도 보인다. 발리|강윤중기자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오후 9시 무렵 MBC에 전용기 탑승 불가를 통보했다. 직후부터 기자들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에 그 같은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통지 내용도, 시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늦은 밤 통지가 나온 탓에, 경향신문은 출국 하루 전인 다음날 오전에야 탑승 거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찾아 제출했던 여권을 반납받고, 성남공항으로 가서 전용기 탑승을 위해 맡겼던 짐을 되찾은 후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프놈펜, 프놈펜에서 발리, 다시 발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편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전용기를 띄우는 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대통령 사비도 아닌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전용기인데, 이런 형태로 특정 언론사 탑승을 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전용기 이용료를 포함한 순방 취재 비용 일체를 언론사 각자가 부담한다는 사실은 이제 다시 말하기도 구차스럽다.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 내내 언론과의 관계에서 말썽이 일었다. 출국 전부터 전용기 탑승 문제로 시비가 일었고, 현지에서는 전속 취재로 사실상 일관한 윤 대통령 부부 일정이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이 전용기 내에서 특정사 기자 2명을 불러 “편한 대화”(대통령실 관계자)를 나눈 것도 문제가 됐다. 언론 ‘차별’ 논란으로 시작한 대통령 순방이 언론 ‘특혜’ 논란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 표현대로 ‘국익’이 걸린 중대한 순방 일정인데,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아닌 언론과의 관계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기자들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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