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 저널클럽

‘맛집 지도’ 따로 가진 뇌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신경과학 저널클럽]‘맛집 지도’ 따로 가진 뇌

휴대전화를 천천히 살피다 보면 비슷한 목적의 앱들을 여러 개 깔아둔 것이 눈에 띌 때가 있다. 지도 앱이나 배달 앱이 대표적이다. 화면이 좀 복잡해 보이긴 해도 인터페이스의 편의성에서 차이가 나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쿠폰을 달리 주기도 하니 굳이 하나만 남기고 지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어떨까.

대개 뇌에는 각 구역이 대표적으로 담당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흔히 인식된다. 특정 기능은 특정 뇌 구역에서만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마는 학습과 기억, 공간 지각 등을, 편도체는 공포를 포함한 감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시각이나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감각 정보의 처리 기능에는 이들을 담당하는 각각의 ‘일차 피질’ 영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측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같은 정보가 여러 뇌 구역에서 동시에 병렬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견해도 인정받고 있다. 얼핏 모순되는 이 두 견해를 어떻게 종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되는 연구가 나왔다. 공간 정보가 뇌 여러 구역에서 처리될 가능성을 연구하는 포르투갈 샴파리모드 연구소의 신디 푸 박사와 자카리 매이넌 박사 연구진은 ‘후각피질’과 ‘해마’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피질은 ‘신피질’ 또는 ‘동형피질’로 불리는 여섯 층의 세포 구조로 이뤄진 구역과 ‘원시피질’ 또는 ‘이형피질’로 불리는 세 층 정도의 세포 구조로 이뤄진 구역이 있다. 일차 시각피질이나 전전두피질은 신피질이고, 후각피질이나 해마는 원시피질에 속한다.

푸 박사와 동료들은 후각피질과 해마가 비슷한 구조를 보이기 때문에, 해마의 기능인 공간 지각을 후각피질도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쥐가 후각 정보와 공간 정보를 활용해 시원한 물을 찾아가는 ‘미로 찾기’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쥐에게 먼저 아무 방향으로나 갈림길을 따라 내려가게 한 후 냄새 힌트를 받게 했다. 그리고 각 냄새가 지시하는 동서남북 중 정답인 갈림길을 찾아가면 그 끝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실험을 구성했다. 예컨대 포도향을 맡으면 북쪽에서 물을 마실 수 있고, 딸기향을 맡으면 서쪽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한 것이다. 포도향이나 딸기향을 어디서 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푸 박사는 게임을 진행 중인 쥐의 해마와 후각피질에서 신경세포들의 활성을 동시에 측정했다. 예상과 같이 해마의 세포들은 특정 위치로 쥐가 움직일 때 강한 반응을 보였고, 냄새를 맡을 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후각피질의 여러 신경세포들 중 일부는 냄새에 유달리 잘 반응했는데, 특이하게도 냄새보다는 위치에 더 잘 반응하는 세포들도 있었다. 위치 정보 처리가 해마만의 고유한 기능이 아님을 보여준 재미있는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치 정보를 아주 잘 처리할 수 있는 해마가 있는데, 후각피질은 왜 굳이 역할을 하려는 것일까. 후각피질이 처리하는 위치를 미로상에 표시해 보니 전체 미로의 정보가 아니라 냄새가 나오는 위치만 표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의 위치 정보는 일반적인 지도처럼 전체 공간이 빠짐없이 표시된 반면에, 후각피질의 위치 정보는 ‘맛집 지도’처럼 관심 위치만 드문드문 표시돼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종류의 정보가 두뇌의 여러 구역에서 처리되더라도 해당 구역의 주된 기능과 관련된 정보를 더 중시함으로써 기능적인 차별성을 가질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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