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잔디밭, 야생화밭으로 바꿨더니…식물·곤충 종 ‘4배 껑충’

이정호 기자

케임브리지대 연구진, 국제학술지 발표

약 2년 만에 생태계 복원 효과 확인

‘도심 열섬’ 완화 효과도 탁월

잔디밭에서 야생화 밭으로 바뀐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내 전경. 야생화 밭에선 식물과 곤충 숫자가 약 4배 늘어나는 현상이 관찰됐다. 케입브리지대 연구진 제공

잔디밭에서 야생화 밭으로 바뀐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내 전경. 야생화 밭에선 식물과 곤충 숫자가 약 4배 늘어나는 현상이 관찰됐다. 케입브리지대 연구진 제공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디밭을 야생화밭으로 바꿨더니 불과 약 2년 만에 식물과 곤충 종이 4배나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야생화밭은 이산화탄소 저감과 도심 열섬 완화 효과도 있다. 이 때문에 근대 이후 도심에 습관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잔디밭을 자연에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호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얼럿은 5일(현지시간)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최근 국제 학술지 ‘에콜로지컬 솔루션스 앤드 에비던스’를 통해 학내 잔디밭 일부를 야생화 밭으로 바꿔 주목할 만한 생태학적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학내 교육기관인 ‘킹스칼리지’ 근처에 있는 잔디밭인 ‘백 론’의 일부를 2019년부터 야생화밭으로 바꾸는 실험을 했다. 백 론은 1772년 만들어진 전통 있는 잔디밭이다. 학내 관리 인력이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잔디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전형적인 근대식 정원이다.

연구진은 백 론의 전체 면적 가운데 약 40%, 즉 0.36㏊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축구장 절반에 해당하는 이 면적에 국화 등 야외에서 흔히 자라는 꽃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인위적인 급수와 비료 공급 같은 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스스로 지탱되는 서식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관찰됐다. 2021년을 기준으로 야생화밭에서 식물은 84종, 벌레와 거미는 16종이 발견됐다. 백 론 가운데 잔디밭으로 그대로 유지된 곳과 비교했더니 식물 종은 3.6배, 거미와 벌레 종은 3.7배 많았다. 잔디밭을 그저 야생화밭으로 바꾼 것뿐인데, 단 2년 만에 서식 생물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야생화밭에서 발견된 84종의 식물 가운데 연구진이 파종한 건 33종뿐이었다는 사실이다. 파종하지 않았는데도 발견된 51종은 살기 좋아진 야생화밭에 스스로 들어와 알아서 뿌리를 내리고 산 식물이었던 셈이다.

잔디밭이 야생화밭으로 바뀌자 생긴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었다. 연구진은 케임브리지대 공식자료를 통해 “㏊당 연간 약 1.36t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석연료를 써야 하는 잔디깎이 운전, 비료 생산·투입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생화밭은 지상으로 전해진 햇빛을 공중으로 반사해 기후변화 효과를 낮추는 기능도 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잔디밭에 비해 야생화밭의 햇빛 반사율이 25~34% 높았다”고 설명했다. 잔디밭보다 ‘알베도(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높아진 것이다.

야생화밭이 하얀 설원도 아닌데 이런 효과가 나타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야생화 가운데 흰색 등 밝은 색의 꽃을 피우는 종이 다수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똑같은 양의 햇빛이 지상으로 쏟아져도 야생화밭에선 땅이 달궈지는 효과가 덜하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도심 열섬 효과를 낮출 수 있게 된다.

연구진은 “잔디밭이 야생화밭으로 바뀌는 일은 작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며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와 함께 사람과 야생동물에 추가적인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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