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은 좋든 싫든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김응빈 교수

(52) 미생물, 반려자이자 조력자

동식물 제외한 모든 생물이 미생물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김치 속 젖산균·막걸리 속 누룩
된장·고추장·간장 맛내는 발효균
하수·분뇨·심해·동물 소화관…
지구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존재

해로움보다 이로움이 훨씬 많아
반감보다는 공감의 시선으로 보자

[전문가의 세계-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미생물은 좋든 싫든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대중 강연을 하다 보면, 왜 미생물학을 전공으로 택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것도 뭔가 근사한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과 함께 말이다. 내 답변은 단순하고 한결같다. “보이지 않는 게 매력적이어서요.” 그러고는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을 덧붙이곤 한다. 사실 미생물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첫 연구 대상은 일산화탄소를 먹어치우는 미생물이었다. 연탄 난방을 주로 하던 시절,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 사고의 주범인 그 독가스를 먹고산다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흔히들 미생물 하면 인간에게 해로운 병원균만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이렇게 독성 화합물을 분해하는 기특한 미생물도 많다.

미소(微小)의 매력에 이끌려

일산화탄소를 주식으로 하는 미생물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연구 여정은 태평양 너머로 이어졌다. 환경호르몬을 비롯한 독극물 분해 미생물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동안에는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았다. 연구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최대한 빨리 학위 과정을 마치고 싶은 일념에 오로지 그 미생물에만 매달렸다. 돌이켜보면, 크고 대단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미생물이 신기해서 대학원 생활을 했고, 해보니 재밌었고, 끝내고 보니 미생물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그런 발전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유학생 시절, 마지막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이제 내 이름 뒤에도 ‘박사’라는 수사가 따라온다는 기대에 부풀어 시험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필고사가 아니라 구두시험이라 더욱 부담스러웠다. 다섯 심사위원이 무작위로 묻는 말에 답해야 하는데,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를뿐더러, 시험 범위는 미생물학 전 분야라니 시험 준비가 난감했다. 그래서 다소 무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본 실력을 믿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실전에 임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작 그 순간이 오니 마음먹은 대로 되기는커녕 어느 유행가 노랫말처럼,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였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심사위원장이 쉬운 질문으로 긴장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쉬운 질문’이라는 말에 더 긴장되었다. 그마저 답하지 못하면 진짜 사달이 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질문 자체는 쉬워도 너무 쉬웠다. “자네 한국에서 왔으니 김치 담글 줄 알지?”라는 물음에 ‘우선 배추를 반으로 잘라 소금물에 절인 다음에’라며 운을 뗐는데, 잠깐 소리와 함께 배추를 왜 절여야 하냐고 다시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탓에 “아니…. 그건…. 소금을 안 뿌리면 맛이 없잖아요(You know. No salt, no taste.)”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왔다. 순간 심사위원 모두가 크게 웃었고, 나는 그만큼 더 작아졌다. 안절부절못하는 학생에게 심사위원장이 넌지시 말했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인데, 맛보다는 미생물학적으로 생각해 보게나. 살모넬라균이 힌트야!” “아! 염분 농도가 올라가서 살모넬라균이 못 살겠네요”라는 답변에 심사위원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나라 대표 음식인 김치는 맛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건강 증진 효과까지 지닌 매우 우수한 발효식품이다. 특히 김치는 별도의 씨균(종균) 없이 담글 뿐만 아니라, 상온에서 마냥 두고 먹어도 식중독 같은 감염병 걱정은커녕 오히려 갈수록 깊은 맛을 내는 ‘웰빙식품’이다. 여기에는 우리 조상의 생물학적인 지혜가 녹아 있다. 일단 방금 언급한 것처럼 소금이 유해균 성장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작용원리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소금에 절이면 배추 숨이 죽는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소금기로 인해 배추 세포 안에 있는 물이 빠져나온 결과이다. 배추 세포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유해균 세포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숨이 죽는다. 해당 미생물 사망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미생물도 많다. 김치를 맛있게 익히는(숙성하는) 마이크로 셰프, 김치 젖산균(유산균)도 그런 경우다. 또한 김치 젖산균의 발효 산물인 젖산이 쓸데없는 잡균의 생장을 막는다. 이러한 삶의 터전 속에서 형성되는 미생물 생태계는 김치가 익어감에 따라 조화 속에 끊임없이 변해가면서 우리에게 맛과 건강을 선물한다.

미생물 요리사

‘누룩’ 하면 흔히 막걸리를 떠올린다. 누룩은 밀이나 콩 따위를 찐 다음,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띄운 것이다. 누룩이 익는 동안 곰팡이가 피는데, 이를 누룩곰팡이 또는 국균(麴菌)이라고 한다. 분류학적으로는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 집안(분류학 용어로 ‘속’) 곰팡이다. 어떤 종류의 누룩곰팡이가 자라는가는 분쇄된 곡물 입자의 크기와 수분,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덩이의 모양도 중요한 요소다. 두께와 넓이에 따라 달라지는 공극률이 누룩 내의 산소 함유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누룩곰팡이는 술 빚는 과정에서 알코올 발효의 원료가 되는 당분을 만든다. 효모는 곡물의 주성분인 녹말을 직접 이용하지 못한다. 술밥에 누룩을 고루 섞어주면 누룩곰팡이가 먼저 녹말을 분해해서 당분으로 만든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효모가 알코올 발효를 시작한다. 우리나라 막걸리는 이렇게 익어간다.

아스페르길루스 속은 곰팡이 가운데 구성원의 종류가 가장 많다. 다양한 종(species)이 있다 보니 누룩곰팡이처럼 유익한 것도 있지만,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가 만드는 독소 아플라톡신(Aflatoxin)은 사람과 가축에게 치명적이고, 암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독소 이름은 속명 첫 글자 ‘A’와 종명 ‘fla’에 독소를 뜻하는 영어 ‘toxin’을 더해 만든 것이다.

누룩에는 곰팡이 말고도 효모와 젖산균, 고초균 등 다양한 미생물이 어울려 살고 있다. 고초(枯草)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른 풀은 물론이고 공기와 토양 등 여러 자연환경에 널리 분포한다. 고초균은 누룩곰팡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된장과 고추장, 간장의 맛을 내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메주 발효 세균이다.

전통 장은 주원료인 메주가 중요하다. 메주는 보통 그해에 나온 해콩으로 초겨울에 만든다. 먼저 가마솥에 해콩을 넣고 푹 삶는다. 잘 무른 콩을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는다. 으깨진 콩을 틀에 넣거나 손으로 빚은 다음에 초벌로 말린다. 마지막으로 꾸덕꾸덕해진 메줏덩이를 볏짚 위에 두거나 볏짚으로 꼬아서 높이 매달아 겨우내 둔다. 그러면 메줏덩이에서도 맛있는 곰팡이가 핀다. 메주를 만드는 과정을 보니 옛사람들이 이미 고초균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잘 띄운 메주에는 적어도 800여종의 미생물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조성은 지역별로 다르다. 발효의 양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미생물이다. 따라서 지역마다 메주 미생물 조성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 고장의 장맛은 미생물에 달려 있음을 깨우쳐준다. 이들 발효 일꾼은 온도와 습도 같은 환경 요인에 따라 다른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특급 토산 메주는 미생물에 그 지역의 날씨와 고유한 메주 띄우기 방식이 더해져 마침내 완성된다. 어쨌든 미생물학적으로 보면 메주는 누룩곰팡이와 고초균, 젖산균 등이 어우러진 미생물 집합체다. 한마디로 메주는 건강식품을 만드는 미생물 요리사의 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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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하게 동식물 축에 끼지 못하는 생물을 몽땅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동식물을 제외하면 남는 게 뭐가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당연하고도 좋은 질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남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남는 게 없어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은 너무 작아서 맨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무시당하는 게 억울했는지 이들 가운데 일부가 요사이 부쩍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코로나19와 같은 신종감염병의 연이은 나댐처럼 아주 고약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지경이니 보통 사람들이 미생물은 병을 일으켜 건강을 위협하고 음식을 썩게 해 생활에 불편을 주는 해롭고 더러운 생물이라고 여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하나만 알고 훨씬 더 큰 두 번째를 몰라서 생기는 걱정스러운 오해다.

사실을 말하자면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훨씬 소수고, 대다수의 미생물은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삶을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엄청나게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음식물 찌꺼기, 분뇨, 생활하수 등)만 생각해봐도 미생물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미생물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머지않아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심해 화산 분화구에서 동물 소화관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가장 널리 퍼져 있다. 한마디로 온통 미생물 세상이다. 우리는 싫든 좋든 미생물 세상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면 그에 따라 미생물도 변화하고, 그러면 다시 우리가 변화하게 된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미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도 끝이라는 것이다. ‘반감’보다는 ‘공감’의 자세로 미생물을 바라보자. 우리는 삶의 반려자이자 조력자인 미생물과 함께 조화 속에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지난 4년간 연재한 ‘미생물 수다’가 미생물의 참모습을 알리는 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했기를 바라며, 독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연재 끝>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미생물은 좋든 싫든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생물학의 쓸모>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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