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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 당선작 -거세된 인간과 진화한 뱀파이어의 생존조건
1 괴물의 탄생시퍼렇게 그을린 단칸방의 아랫목, 한 이불 속에서 군밤을 까먹었던 겨울밤을 기억하시려나. 단란한 가족 간의 훈훈했던 추억은 이제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나,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구질구질한 단칸방이 싫어서, ‘나만의 공간’을 소유하려는 것은 나를 비롯한 그 시대 소년들의 영원한 꿈이었지 않은가. 오죽하면 옛날식 화장실에 기어들어가 형의 책상서랍에서 훔쳐온 꽁초담배 따위를 꼬나물었겠는가. 냄새마저 얼어붙어 한―없이 적막했던 그곳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소년시절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혼자일 수 없었으므로 고독할 이유가 없었고, 고독이 키우는 ‘내 안의 괴물’과 아귀다툼할 필요도 없었던 것. 우리가 체감하는 근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어린이의 사적공간은 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낳은 수여물이다. 일터와 집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가족이란 개념조차 확정(確定)... -
대중문화평론 심사평-영화 서사 내 숨은 맥락 짚어내
올해 대중문화평론에 응모한 32편의 글들은 작년에 비해 평균적으로 수준이 높았지만 한눈에 반할 만한 원고를 단번에 골라낼 수는 없었다. 영화비평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예년과는 달리 드라마 비평의 투고 편수가 많이 늘었고, 광고, 대중음악, 연예오락프로그램을 분석한 글들도 제법 많았다.최종심에 올라온 5편의 원고들은 각기 자기 발화법(發話法)을 알고 쓴 글들이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 에서 역사적 틈의 사유를 읽고자 했던 글은 꼼꼼하게 분석했으나 너무 줄거리 위주의 실제비평에 머물렀다. 아디다스 광고를 시간성 관점에서 노동 이미지의 소멸과 놀이 이미지의 치환으로 분석한 글은 나름의 복잡한 기호적 도식을 제시하는 신선함을 보였지만 글이 너무 딱딱하고 지나치게 단정적인 주장에 머물렀다. 홍상수 영화에서 공간의 의미를 꼼꼼하게 분석한 글은 기존의 홍상수론의 반복적인 주장을 담고 있어 신선하지 못했다. 미국 드라마 과 를 다중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도 나름 자기 근... -
대중문화평론 당선소감-“내 주장 옳은지 끝없이 질문하며 글 쓸것”
29세의 문학도에게 교수의 냉정한 평가가 곁들여진 ‘합평’은 혹독한 시간이었다. 애써 내놓은 소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자, 실의에 빠진 그는 다음 시간 수업을 빠졌다. 대신 찾아간 곳은 영화관. 마침 스크린에는 스웨덴에서 온 뱀파이어 영화 (Let Me In)이 상영 중이었다.부영우씨는 을 분석한 글 ‘거세된 인간과 진화한 뱀파이어의 생존조건’으로 2009 경향신문 신춘문예 대중문화평론 부문 당선자로 선정됐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애초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쥘 베른을 우선으로 꼽고, 도스토예프스키, 오에 겐자부로, 디킨스, 김주영을 즐겨 읽는 문학도였다. 그러나 먼 훗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전에 남의 글과 문화 전반을 공부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 평론은 물론, 회화, 사진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물론 영화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중·고교 시절 그는 1990~2000년대 한... -
올 신춘문예 새바람은 ‘쉰 세대’
올해 국내 일간지 신춘문예에서는 ‘늦깎이 신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문청들의 꿈의 등용문인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첫발을 디딘 당선자들 중에는 50대가 여럿 포함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문단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경향신문의 시부문 당선자인 양수덕씨(본명 양선희)는 1954년생. 양씨는 몇년 전부터 신춘문예의 문을 여러번 두드렸고 40대 초반에는 자비로 시집을 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8년 전이었다. 양씨는 심사위원들로부터 “개성 있는 언어의 활달한 구사력”을 인정받아 시부문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는 조선일보 시조부문 당선자인 배우식씨로 1952년생이다.3년 전 우연히 서점에서 시조집 몇 권을 읽으면서 현대시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배씨는 ‘인삼반가사유상’으로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동아일보 동화부문 당선자인 조희애씨(21) 와 무려 36년의 나이차가 나는 ‘... -
재현체계의 폭력을 넘어 ‘우리’의 현시로
0. 초대장얘들아, 뭐 하니?나는 두 눈을 바깥에 줘버렸단다.얘들아, 얘들아, 어딨니? 같이 놀자.(시인의 말, )이 글은 비평문이면서 동시에 초대장이다. 김행숙의 시 세계를 탐색하다보니 어느 순간 나의 손에는 초대장 하나가 들려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초대였다. 그녀가 열어 보이는 세계를 알게 된다면 그 세계로의 초대를 거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나의 비평은 그녀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김행숙의 세계가 조금 더 알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나의 글이 당신을 초대에 응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시가 지닌 매혹을 충분히 해명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확신한다. 그러므로 내가 글의 중간중간 당신을 부르더라도 당신은 당황하지 말고 부디 나에게 귀를 빌려주시길, 그리고 결국에는 당신 역시 도래할 ‘우리’에 함께 동참하기를.1. 충동, 비상사태 그리고 징후이상한 소리들이 읽는 이의 귀를 ... -
시 당선작- ‘맆 피쉬’
시 부문/ 양 수 덕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콘크리트 계단에 몸을 붙인 청년의물살을 떨다 만 지느러미뢴트겐에서 춤추던 가시, 가물가물동전 몇 개 등록상표처럼 찍혀 있는 손바닥과염주 감은 손목의그림자만이 화끈거린다채 풀지 못한 과제 놓아버린 손아귀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
시 부문 당선소감- “이제 내게도 뿌리가 생긴 것 같다”
시 부문 당선자 양수덕씨(55·본명 양선희)는 기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번째는 적지 않은 나이로 ‘늦깎이 등단’을 했다는 점이었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그의 시가 젊고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양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뿌리가 없던 사람에게 뿌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시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고, 희망도 안 보여 스스로가 바람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당선된 것은 시를 잘 써서라기보다 저 같이 뿌리없이 사는 사람들, 존재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뿌리가 없다고 했지만, 양씨에게 시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 성신여자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시에 대한 꿈을 한시도 접지 않았다. 40대 초반 자비로 시집을 내기도 한 그가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8년 전. 혼자 쓰는 시는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 시 공부모임에 나갔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시사랑회 화요팀에서 공부하고 있다.... -
시 부문 심사평- 개성있는 언어 활달하게 구사
예심을 통과해 본심의 대상이 된 열다섯 분의 작품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수연씨의 ‘숙련공’이었다. 시를 쓰고 있는 자기 세대의 어법을 개성적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행과 행의 관계를 긴밀하게 조직하는 힘이 부족해 보였고, ‘숙련공’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감각적인 표현에 구체적인 사유를 담지 못한 허약한 표현이 많았다. 시에서 강한 정신력과 숙련된 언어는 함께 이루어진다. ‘도원역’과 ‘아주 조금만 남은 것들’을 쓴 김우찬씨는 언어를 정제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갈고 닦은 언어는 새롭다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언어나 세계를 향한 모험이 보이지 않는다. 시에 지루한 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웅선씨의 ‘창밖으로 오분’은 창을 내다보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개성적인 어조로 붙잡아내는 그 착상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끌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 환상으로 잇대어진 연결 부분은 실감이 부족했다.... -
소설 당선작- ‘글렌 굴드 이야기’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다. 굴드의 이 거대하고도 미묘한 콘서트용 피아노는 배와 자동차, 비행기에 실려 주인과 함께 세계의 수많은 공연장을 누볐다. 굴드의 연주여행에는 이 스타인웨이 외에도 별도로 고용된 당대 최고의 조율사가 따라다니곤 했다. 콘서트 전날 밤이 되면, 피아노의 물리적인 속성을 빠짐없이 알고 있던 굴드와 그의 조율사는 스타인웨이를 완전히 분해했다 다시 조립하기도 했다. 굴드는 음의 높낮이를 정확하게 조율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연주방식과 연주할 작품에 맞추어 피아노의 기계적인 성격들마저 조율해버리곤 했다. 콘서트 직전에 이르면 굴드는 손가락의 마디마디까지 조율하기 위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고, 손의 관절들이 충분히 유연해졌을 때를 기다려 자신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다.굴드는 데뷔한 이래 늘 과도하게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였으므로 그가 지구의 반대편까지... -
소설 당선소감 “꿈이 좌절된 사람에게 위로됐으면”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부문 당선자 현진현씨(35)의 수상 소감이다. 그럴 만도 하다. 현씨는 신춘문예 당선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분에 당선됐다. 계명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현씨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국문과와 문예창작과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대학 마지막 학기 교수님의 조언으로 처음 써본 비평이 덜컥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비평을 계속하는 대신 “사회생활을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한 광고회사에 취직해 카피라이터가 됐다. 그렇게 시작한 직장생활이 해를 넘기고 또 넘겨 벌써 9년째. 그러다 어느날,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일을 하다보니 여유가 없어서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만의 창의적 작업에 대한 욕구가 생겼고, 자연스레 제 몸이 소설을 쓰고 있더라고요.”당선작 는 학창 시절 A4 1장 분량으로 쓴 꽁트가 골격이 됐다. 현씨는 지난해 이 꽁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