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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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8) ‘법과 폭력’ : 민주주의 지체의 증상들

    (8) ‘법과 폭력’ : 민주주의 지체의 증상들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자본주의 체제가 곤란에 빠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한 테리 이글턴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이야기할 때는 민주주의가 곤란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민주주의라는 말은 이제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 구태여 발설할 필요가 없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심각한 민주주의의 지체라는 돌부리에 걸리며 많은 사람들이 다친 제 발을 살피듯 새삼 그 말의 함축을 되새기게 되었다. 이 시대 한국문학은 그와 같은 민주주의 지체의 증상들에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써 세상의 어긋남과 그 어긋남으로 인한 고통에 유난히 민감한 분야가 문학임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 문학 영역에서 자주 마주치는 몇몇 ‘정치적’ 개념들은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읽는 데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해준다. ▲ 국가 차원서 자행·묵인되는 각종 폭력민주주의 퇴행에 분노를 느낀 작가들용산의 절박함 부르짖는 ‘6...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7) ‘아메리카’ :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상상의 거울

    (7) ‘아메리카’ :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상상의 거울

    “그러니 뭘해요? 되루 주구 말루 받지는 못한들, 그 비싼 영어를 써먹지를 못하니 딱하우. 안집 딸만 해도 쭉 째진 영어를 웬걸 하겠소마는 그래두 이런 크낙한 집을 얻어 든 걸 보우! 헝 내 참……” “허허허…이런 딱한 소리 봤나? 글쎄 내 영어는 집 얻어대는 영어, 통역하는 영어가 아니란 밖에! 영어 못하는 셈만 치면 그만 아닌가? 그러지 말구 여보 마누라! 술이나 한잔 더 사오우.” <해방문학선집>(1948)에 실린 염상섭의 단편 ‘양과자 갑’에는 미국 유학을 다녀왔어도 처세의 수단으로는 한사코 영어를 쓰지 않으려는 고지식한 남편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의 위력은 연간 수조원대를 가뿐히 넘는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방증하는 것이지만, 당시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층 더 노골적인 면조차 있었다. ‘해방’을 맞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돌아온 귀환민들로 조선 인구가 폭증하던 그 시절, 영어는 살 집과 일용할 양식이라...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6) ‘민주주의’ : 해방기 분열 혹은 통합의 아이콘

    (6) ‘민주주의’ : 해방기 분열 혹은 통합의 아이콘

    해방으로 독립운동가만이 높은 감옥 담벼락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권력의 혹독한 전제와 독재 속에서 조선인 사회가 독립운동의 원리이자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상으로 보듬고 키워왔던 민주주의도 마침내 음지생활을 끝내고 해방의 햇살 앞에 섰다.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저마다 민주주의 강좌를 열었고, 언론은 다투어 민주주의를 다루었다. 조선과학자동맹은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주보를 발간하기도 했다. 1947년에는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 포스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유일무이한 국가적 행사가 아니었을까 한다. 해방 정국을 풍미한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니었다. 다양한 얼굴을 한 민주주의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신국가 건설의 모델이 되고자 각축을 벌였다. 뜨거운 경합 속에 민주주의는 민족의 운명을 가를 만큼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모...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5) ‘공화’ : 신국가 건설의 등불

    (5) ‘공화’ : 신국가 건설의 등불

    동서양의 ‘공화’ 개념‘공화(共和)’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 주나라 본기에서 처음 나온다. <사기>에 의하면, 주나라 여왕이 기원전 841년 체 땅으로 달아나 왕이 없는 가운데, 주공과 소공이 협화를 하여 14년간 정치를 잘했다는 의미로 ‘공화’라 칭했다고 한다. 그런데 뒷날 전국시대 위나라의 왕묘에서 출토된 <죽서기년>에 따르면, 주공과 소공이 아니라 공백화(共伯和)라는 인물이 여왕 대신 정치를 했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공화라는 말이 ‘공백화’라는 사람의 성과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유력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중국과 한국에서 ‘공화’란 군왕이 없는 가운데 신하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왔다. 영어로 ‘공화’라는 말은 리퍼블릭(republic)인데, 이는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레스 푸브리카’(res publica)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에서는 기...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4) ‘자강’ : 제국의 시간을 상징하다

    (4) ‘자강’ : 제국의 시간을 상징하다

    우리나라에는 4대 국경일이 있다. 달력을 넘기는 순서대로 세면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이다. 1949년 신생 대한민국에서 법률로 정한 국가 기념일이다. 이 날은 관청도 쉬고, 학교도 쉬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 기념하는 의미가 민족의 시작, 민족운동의 폭발, 민족의 해방, 국가 체제 수립으로 이어져 있어서 흥미롭게도 대한민국 건국사를 읽을 수 있다. 국경일을 합하면 민족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국경일은 대한제국 시대에도 있었다. 광무년간 설립된 신식 학교의 휴학일 규정을 보면 만수성절(萬壽聖節, 음력 7월25일), 천추경절(千秋慶節, 음력 2월8일), 흥경절(興慶節, 음력 12월13일),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 음력 7월16일),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 음력 9월17일)에 학업을 쉬었음을 볼 수 있다. 융희년간 제정된 관청 휴무일 규정을 보면 건원절(乾元節, 양력 3월25일), 즉위예식일(卽位禮式日, 양력 8월27일), 개국기원절(양력 8월14...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3) ‘번역’

    (3) ‘번역’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다. 손님 언어로 된 원저술과 주인 언어로 된 번역 사이에 필연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일 터이다. 번역은 순수언어의 꿈이라는 말도 있다. 하나의 언어에 폐쇄된 사고나 개념들이 번역에 의해 보다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지평으로 유도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영어의 Subject에 해당하는 주체라는 말만 하더라도 문맥에 따라 주어, 주체, 주인, 신민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데, 본디 그 말이 우리말에 있어서 짝을 지운 것이 아니라는 데 사정의 복잡함이 있다. 오히려 번역적 상황에 의해 소위 ‘주체’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 의제가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번역은 각각의 국가와 그 언어를 틀짓고 고정시키는 한편, 개별 국어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새로운 지식을 이입한다. 순수하면서도 반역적이고, 실천적이면서도 폭력적인 것이 번역이다. ▲ 한자·서구 문맥이란 번역의 극점역사적 주체의 입장 차이에 따라한국의 번역어들은...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2) 철학 : 새 문명을 향한 원동력

    (2) 철학 : 새 문명을 향한 원동력

    근대 전환기에 서양철학을 국내에 소개한 학자들은 철학을 서양 고대 문명의 기원이자 근대 정치제도와 과학기술을 발달시킨 근본적인 학문으로 인식했다. 오늘날 철학은 문학, 사학과 함께 인문학의 기본 영역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근대 이전 우리의 지식 체계에 ‘철학’이라는 용어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철학’ 개념이 없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서양의 철학과 같은 학문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 다르긴 해도 그들보다 더 나은 학문이 있었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philosophy)’이란 용어의 부재가 철학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음이 당연시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서양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번역어로 일반화된 ‘철학’은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에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으로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가 고안한 신조어다. 그는 (1874)의 말미에서 “필로소피(ヒロソヒ)는 학...
  • [개념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1) 이용후생 : 중세의 균열을 알리다

    (1) 이용후생 : 중세의 균열을 알리다

    ※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특징짓는 개념이 있게 마련이다. 개념은 지속성이 강하고 때론 폭발적인 파급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개념은 긴 호흡으로 역사를 조망하게 한다. 경향신문은 개념사를 연구해 온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과 함께 새 연재물 ‘개념으로 읽는 한국의 근현대’를 싣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용후생’ ‘철학’ ‘자강’ ‘민주주의’ ‘공화’ 등은 언제 한국사에 등장했고, 근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연재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에 깊이 있게 안내하는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개념은 우리 의식의 심층에서 작동하는 시대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서학 이용하자” 박제가의 파격 제안정조의 창조적 활용 거쳐 끝없는 변신기존 질서 흔들고 근대를 향해 발아▲ 바른 정치와 실용 조화롭게 결합새 개념 만드는 건 우리와 미래의 몫1786년(정조 10) 정월 22일 정조는 창덕궁에서 대신 이하 일반 관료들에게 개혁과 관련한 방책을 올리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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