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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들 스칠 때 나는 묵직하고 달큼한 향…‘하얀 연기’의 마법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라마다 고유한 향이 있다고 한다. 그 향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아랍의 공항에는 묵직하면서도 달큼한 향이 난다. 하얀 칸두라와 까만 아바야를 걸친 현지 사람들을 스치기라도 하면 그 향은 배가 되어 코끝을 간지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은 “엄마, 여기 사람들한테서는 왜 좋은 향이 나는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향수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라기에는 이질적이고 좀 더 자연의 향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이 냄새에 대해 나는 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이 향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보기에도 어지러운 아랍어 간판에 번쩍번쩍한 인테리어, 그리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이 미소 짓고 있는 어느 매장 앞에 황금빛 항아리가 놓여 있고 그 안에서 하얗고 기다란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직원에게 다가가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물어보니 그는 투박하고 낮은 목소리로 ... -
캐나다 생활 20년이 준 깨달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다’
지난 11월25~26일 주말을 이용해 미국 시카고에 다녀왔다. 자동차로 10시간이 걸리는 800㎞ 먼 길이었다. 겨울철 운전이 만만치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하루 종일 내린 진눈깨비 때문에 미끄러웠다. 이틀 왕복 20시간을 운전하여 그 먼 길을 다녀온 이유는, 한국 사는 내 고교 친구가 시카고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토론토로 넘어오기 어렵다고 하여 내가 움직여야 했다. 하루 10시간 운전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틀 연속 장거리 운전은 나로서는 처음이었다. 겨울이라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절친’의 부름에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시카고를 처음 방문했는데도 그 아름답다는 도시 구경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후 3시 에어비앤비 숙소에 들어간 이후, 이튿날 오전 11시까지 친구 부부와 꼬박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해도 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운전 피로가 며칠간 지속되었으나 속은 더없이 시원했... -
비탈면은 눈썰매장, 연못은 스케이트장…사계절 내내 변하는 공원은 ‘커다란 놀이터’
도시 곳곳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마켓, 두툼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잔인하리만큼 적은 일조량, 그리고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도시 곳곳에 각기 썰매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내 머릿속을 스치는 베를린의 겨울 풍경이다.베를린에는 곳곳에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 역할은 사계절 내내 부지런히 바뀐다. 봄이면 맑은 공기를 제공해주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사람들이 햇볕을 쬐고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여유로운 공간을 내어줬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놀이터는 아이를 키우는 가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이렇듯 삶의 다양한 배경이 돼주는 도심 속 공원은 이곳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낙엽이 지고 날씨가 추워지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공원들은 한 번 더 변신한다. 녹지로 뒤덮인 비탈면은 눈썰매장이 되고, 비탈면 끝에 있는 연못은 스케이트장이 된다. 오직 자연요소로만 이루어진 공원은 커다란 놀이터가 된다.유독 눈이 많이 내리는 베를린에 사는 아이들은 저... -
한국은 ‘얼죽아’…중동에는 보약 같은 ‘뜨죽아’가 있다
아랍의 호텔에 들어서면 금테를 두른 작은 손수레나 탁자에 황금빛 주전자 달라(Dallah)와 작은 잔인 핀잔(finjan)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함께 자리한 유리그릇에는 잘 익은 대추야자가 담겨있다. 아부다비에 거주하며 대추야자의 달콤 쫀득한 맛에 눈을 뜬 아이들은 그런 수레를 만날 때마다 참새 방앗간 들르듯 쪼르르 달려가 하나씩 집어 먹곤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대추야자를 향해 돌진한 아이들과 그 뒤를 따르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던 한 호텔 직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친절한 얼굴로 주전자를 가리키며 아랍식 커피를 마셔보겠냐 물었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주전자를 들어 소주잔만 한 작은 잔에 쪼르륵 커피를 따랐다.‘무슨 맛일까? 여기 사람들은 꿀을 좋아하니 달콤하고 향긋한 맛일까?’두근대는 마음으로 잔을 코에 갖다대자 순식간에 경동시장 한가운데로 소환된 기분이 들었다. 어릴 ... -
차고 문 하나 고치려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집수리 굴레
토론토의 자동차 도둑에 관한 글(10월20일자 ‘차 한 잔 하는 동안 차 한 대 도난…눈 뜨고 코 베이는 캐나다 운전자’)을 게재한 이후, 토론토에서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이제서야’ 깨달은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대대적으로 자동차 도둑 단속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도둑들이 선호하는 차량을 가진 나에게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하는 소식이었다.두 번째는 이런 가느다란 기대마저도 무참하게 밟아버리는 뉴스였다. 경찰이야 어쩌거나 말거나 자동차 도둑들은 여전하고 그 수법은 더욱 대담해졌다. 집 안에 있는 자동차 스마트키를 바깥에서 연결해 시동을 걸고 훔쳐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아예 심야에 집 안으로 몰래 들어가 자동차 열쇠를 훔치는 사건까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이 뉴스를 신문에서 접한 직후, 내 지인의 친구 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전해 들었다. 이쯤 되면 캐나다 동부에서는 자동차 도둑 떼가 창궐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
차보다 먼저…차보다 빨리 소소한 즐거움, 쏠쏠한 혜택이 도시에선 ‘자전거가 왕’이다
8월과 9월, 둘째 아이가 태어나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이 시기는 베를린의 여름 날씨가 절정으로 치닫던 때였다. 화창한 날씨,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여름의 태양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아이와 함께하는 이동은 쉽지 않았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은 걸어가기는 멀고, 차로 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였다. 주차 문제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최적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여름이면 베를린에는 자전거 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중 오전 이른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자전거 행렬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때론 보호자 앞에 타기도 하고, 때론 보호자 뒤에 타기도 하는 풍경. 바구니처럼 생긴 어린이 탑승용 자전거, 말만 자전거이지 삼륜차와 다를 바 없는 덩치 큰 자전거도 함께한다.나는 성장하면서 자전거로 아이를 통학시켜주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전거를 즐겨 타고 관리하는 걸 즐겼지만 학교를 오가는 통학수단으로 ... -
중동에서 김장이라니…이란 배추·두바이 무·한국 고춧가루로 김치 완성
“이란 배추가 속이 노랗고 실하더라고요.”이웃의 SNS 계정에 갓 담근 김치 사진이 올라왔다. 늘 정갈한 한식 요리로 채워진 그의 식탁과 빵 쪼가리로 채워진 우리 집 식탁이 비교가 되어 마음 한구석이 영 찜찜했지만 ‘외국에 나와서 어떻게 다 차려 먹나’ 하며 애써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신선함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 김치 사진을 보니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김장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비법을 알려줄 테니 날을 잡자고 했다.김치 종주국에서 태어나 매일 김치를 먹었던 나는 안타깝게도 김장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곳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그런 이야기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나는 “한국은 어디서나 김치를 살 수 있어서 보통은 사 먹어. 그게 훨씬 경제적일걸?”하며 둘러대곤 했다. 한식을 좋아하는 그네들이 같이 김장을 하자고 꼬드겨도 꿋꿋이 한인 마트에서 파... -
차 한 잔 하는 동안 차 한 대 도난…눈 뜨고 코 베이는 캐나다 운전자
1990년대 초중반 프랑스에 살던 어느 선배가 귀국하면서 자기가 타던 중고차를 가지고 왔었다. 서울에서 외제차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독일산인 그 차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었다. 내 눈에는 자동차보다 운전자가 하는 행동이 특이해 보였다. 선배는 자동차에서 내릴 때마다 ‘카오디오’ 기기를 들고 내렸다. 마치 검은색 벽돌을 잡아빼는 것 같았다. 자동차에서 카오디오 기기를 뺀다는 것도, 들고 다니기 편하게끔 거기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는 것도 신기해 보였다. 그 선배는 “유럽에는 카오디오 도둑이 하도 많아서 이걸 빼 들고 내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나는 ‘별 이상한 도둑도 다 있네’ 했었다.그로부터 10년쯤 지나 토론토에 살러 왔더니 비슷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자전거 안장이었다. 안장을 뽑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자물쇠를 아무리 채워도 자전거 도난... -
이중언어 가정 아동 위한 ‘언어 처방전’…부모 마음까지 보듬었다
지난 4월, 첫째 아이의 네 번째 생일 즈음 소아과 정기검진에 다녀왔다. 지금까지의 정기검진은 대부분 신체 발달 사항에 중점을 둔 검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네 번째 생일 직후, 그러니까 여덟 번째 정기검진은 조금 달랐다. 부모와 떨어져 담당의와 개별적 상담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통한 심리 검사도 했다. 언어로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 것도 필수였다. 아이의 독일어 의사소통에 대한 검진도 포함됐기 때문이다.첫째 아이는 생후 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코로나19로 인한 공백기를 제외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매일 또래 아이들과 외국어로 소통한 셈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신체 발달 사항과 맞추어 독일어 수준이 잘 발달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한국말로 소통하는 만큼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독일말로 소통하고 있을 테니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짐작만 했다.주변의 다른 한국 가정들을 봐도 독일어 소통에 대한 고충이 많다. 집에... -
관공서 대기실 남·여 구분 ‘경악’…알고보니, 차별 아닌 여성 배려였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현지 신문 1면에 게재된 한 여성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까만 히잡 위에 안전모를 눌러쓰고 푸른 작업복을 입은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지만 팔짱을 낀 여유로운 자세와 의기양양한 눈빛이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신문은 그를 알루미늄 탄소 공장의 용광로에서 크레인 운전을 하는 최초의 여성 자국민이라고 소개했다. 다양한 방면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자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쏟아낸 그날은 에미라티(Emirati: UAE 자국민을 일컫는 표현) 여성의날이었다. 그들이 이룬 성 평등의 업적과 여성의 역량 강화를 기리기 위해 도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이벤트와 파티가 열렸다.‘까만 히잡’으로 상징되는 아랍 여인들의 삶은 무척이나 갑갑하고 수동적으로 보이고, 현재까지 논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매체를 통해 접하는 그들의 삶은 단순히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의복, 결혼, 외출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선택의 자유가 박탈당했다고 조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