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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5)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불안·공포 야기하는 인종차별정책에 반기
    (25)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불안·공포 야기하는 인종차별정책에 반기

    “당시 내 나이 열한 살, 모든 것이 이상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신발을 사러 가면 얼마든지 신발을 신어 볼 수 있었고 집으로 가져올 수도 있었죠. ‘나는 가져갈 수 있는데 저 사람들은 왜 안 되지?’ 나는 열다섯 살 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썼습니다. 내가 내 양심을 자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나딘 고디머는 19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근처 작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아버지는 소련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아프리카로 이주했다. 탄광촌 스프링스에서 보석상으로 자리를 잡은 아버지와 영국 출신으로 백인 중산층 문화에 자부심을 가졌던 어머니는 똑똑한 딸을 성공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보냈다. 나딘 고디머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 했다. 온통 책 생각뿐이었다. 혼자서 집 안에 있는 책들을 다 읽어 치우고, 도서관을 부지런히 다녔다.어느 날부터인가 나딘 고디머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일...

    2020.03.03 21:51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4)“네모반듯 획일적 공간 벗어나지 못하면, 도시는 죽음을 맞이할 것”
    (24)“네모반듯 획일적 공간 벗어나지 못하면, 도시는 죽음을 맞이할 것”

    “제가 아는 도시는 전부 문제가 있고 실수를 저질렀어요. 하지만 도시가 살아 있는 한,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일하는 한, 늘 희망이 있고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스스로 관심이 많은 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희곡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건물을 설계하거나 물건을 발명하는 사람도 있지요. 저를 흥분시키는 것은 그 모든 삶의 집합, 활동적인 사람들과 그들이 하려는 일들입니다.”제인 제이콥스는 평생 호기심이 많았다. 1916년, 펜실베이니아의 탄광도시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제인 제이콥스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 신문을 좋아했다. 가정의였던 아버지는 자녀들과 그날의 신문 기사 내용을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제인 제이콥스의 재능과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고, 딸의 결정을 존중했다....

    2020.02.18 21:38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3)위기의 삶서 다시 꺼낸 ‘이야기꾼’ 재능…희망의 삶 얻다
    (23)위기의 삶서 다시 꺼낸 ‘이야기꾼’ 재능…희망의 삶 얻다

    “나는 침대에 누워 지난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며 그 일들의 실체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삶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 절대 빠져서는 안될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그 모든 게 그저 우연의 일치이며 소위 말하는 불운이 겹친 것일 리는 없고 어떤 근본적인 요인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제대로 찾아보면 그 일들의 일관성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며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터였다.”스물여덟 살에 케냐 이주 후 결혼세계 대공황·이혼·파산 아픔 겪고빈털터리 되어 고향 덴마크 돌아와1931년, 마흔여섯 살의 카렌 블릭센은 빈털터리가 되어 케냐에서 덴마크로 돌아왔다. 케냐에서 보낸 약 20년간의 시간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로 알려진 카렌 블릭센은 스물여덟 살에 처음 케냐로 떠났다. 그곳에서 스웨덴 출신 귀족과 결혼을 하고 커피농장 경영에 뛰어들었...

    2020.02.04 21:05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2)억압과 공포의 시대…극단의 선택 극복할 힘을 ‘문학’에서 찾다
    (22)억압과 공포의 시대…극단의 선택 극복할 힘을 ‘문학’에서 찾다

    “나는 바닥을 쳤지만 동시에 비밀경찰이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나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그들은 나를 물속에 던져 버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게 하겠다고 협박했어요. 나는 ‘만약 나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다면 그것은 너희들이 해야 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나를 살렸습니다.”작가모임 가입 이유로 루마니아 독재 치하서 감시·모욕받아첫 소설 ‘저지대’ 검열 후 출간…서독서 원본 펴내자 ‘금서’ 수모‘작가로서 삶 원천 봉쇄’ 판단에 독일로 망명 작가 활동 이어가헤르타 뮐러는 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의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고 외진 마을에서 자랐다. 헤르타 뮐러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몰입했다. 독일어를 가장 먼저 익혔다. 루마니아어는 열다섯 살 때부터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언어가 살고 있어요.” ...

    2020.01.21 21:08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1)통설 깬 ‘침팬지 박사’…이젠 청소년에 ‘희망의 씨앗’ 뿌린다
    (21)통설 깬 ‘침팬지 박사’…이젠 청소년에 ‘희망의 씨앗’ 뿌린다

    “나는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치른 마지막 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 학창 시절이 끝났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하지? 나는 단지 동물을 관찰하고 동물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할 것인가? 동물을 관찰하는 것으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제인 구달은 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41년 장차 아프리카로 가겠노라고 마음을 굳혔다. 어머니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둘리틀 박사 이야기>에는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큼 좋아했던 책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상상하는 시간들은 행복했다.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뿐 아니라, 각종 동물들에 대한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나는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고,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타잔>을 특히 좋아했다.”학교 공부도 재미있었다. 문제는 가정 형편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돈이 없었다. 어...

    2020.01.07 21:00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0)사회 곳곳 만연했던 성차별에 페미니즘으로 당당히 맞서다
    (20)사회 곳곳 만연했던 성차별에 페미니즘으로 당당히 맞서다

    부친 사업 실패 겪으며 부모 이혼책 읽으며 희망 품고 고난 견뎌내“부정했거나 무시하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억눌린 분노가 폭발해서 넘쳤다. 독신 여자는 집세를 낼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주인 때문에 아파트를 빌릴 수 없었던 일, 여자라는 이유로 나보다 젊고 경험도 없는 남자 기자에게 정치 기사를 뺏겼던 일, 내가 이룬 일은 모두 내가 ‘예쁜 여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여겨지는 것, 여자는 별로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내게는 돈을 적게 주던 일, 나를 인정해 줄 때는 언제나 빈정거림을 빠뜨리지 않던 것.”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 기자 생활편견 탓 ‘정치’보다 ‘패션’ 등 맡겨여성운동 기사도 거절당하기 일쑤1956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스미스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정치 분야에서 취재 업무를 맡고 싶었지만, ‘여기자’에게는 “패션이나 가정에 대한 신변잡기 기사”만 주어지던 시절이었다. 특종을 다루고 싶었다. 1963년 ...

    2019.12.24 21:20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19)무질서·탐욕·모순의 빅토리아시대를 정조준하다
    (19)무질서·탐욕·모순의 빅토리아시대를 정조준하다

    “부귀영화를 나는 가벼이 여기네/ 사랑을 웃으며 조롱하네./ 명예욕은 아침이면 사라지는/ 한낱 꿈이었네.// (…)//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 살아서도 죽어서도, 견딜 용기를 지닌,/ 구속받지 않은 영혼.”1821년, 에밀리 브론테는 어머니를 잃었다. 세 살 소녀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울지 않겠다, 울고 싶지 않다./ 어머니는 우리가 우는 걸 바라지 않는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매우 건강했다.1777년, 패트릭 브란티는 아일랜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장장이, 직조공으로 일하면서도 악착같이 공부를 했고, 10대 후반에 마을학교 교사가 되었다. 청년은 야망이 컸다. 교구학교로 옮겨 경력을 쌓고 인맥을 넓혔다. 명망가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패트릭 브란티는 가정교사 생활을 마치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들어갔다. 이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姓...

    2019.12.10 21:42

  • (18)병들어가는 사회 속에서 문학이라는 ‘모험’을 계속한 지성인

    “20년 전에 시작된 병 때문에 사람들과의 연결 관계가 더욱 깊어졌고, 그 덕분에 타인의 욕구에 더욱 주의하고 공감하고 예민해졌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타인과 타인의 고통에 더욱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가능하면 더욱 개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세 살 때부터 글 읽기 시작열두 살 되던 해, 작가 결심“원했던 건 다양한 삶 사는 것작가의 삶, 포용적으로 보여”1933년 뉴욕에서 태어난 수전 손택은 세 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다. 시련도 일찍 찾아왔다.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모피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수전 손택의 아버지는 딸이 다섯 살 되던 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외국에서 돌아가셨어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몰랐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알았어요.” 아버지의 부재는 직격탄이었다. 가세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전 손택은 천식을 앓았다.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또다시 애리...

    2019.11.26 21:41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17)아버지와 오랜 갈등 이후…자전적 소설로 ‘화해’ 이끌어내다
    (17)아버지와 오랜 갈등 이후…자전적 소설로 ‘화해’ 이끌어내다

    “아버지는 큰 좌절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열두 살에 학교를 그만둔 다음에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버지는 똑똑했고 교육을 더 받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우리 사이는 좀 멀어졌습니다. 아버지는 70대 후반의 남자로 백인이고, 영국인이고, 교육을 받지 못했고, 흑인 딸이 있었지요. 우리가 같이 거리를 걸어가면 재미있는 한 쌍으로 비춰졌습니다.”제이디 스미스는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교에 진학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다녔지만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작가의 아버지는 교복 살 돈이 없어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다. “2.6파운드 때문에 인생을 놓친” 소년은 학교 대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열일곱 살에 포탄을 맞고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세월이 흘러 쉰을 앞둔 나이에 30세 연하의 자메이카 출신 여성과 결혼을 했다. 어머니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흑인 여성이 나타나는 순간 유럽 대도시의 빈 방은 사라졌다. 예외...

    2019.11.12 21:27

  •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16)그녀의 가르침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멕시코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16)그녀의 가르침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멕시코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미술 선생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고, 미술 선생이 된다는 생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대로 그린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기법을 제대로 익혀야 하고, 아주 엄격한 자기 수양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1922년,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했다. 2000여 명 가운데 여학생은 35명뿐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5년 과정에 등록한다. 여섯 살 되던 해인 1913년에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리다 칼로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예비학교는 역동적이었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여파가 예비학교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는 진실의 시대, 신념의 시대, 열정의 시대, 고귀함의 시대, 진보의 시대. 천상에는 음악이 있고, 지상에는 칼날이 있던 시대였다. 우리는 행운아였다. 프리다를 포함해서 우리는 행운아였다.” 예비학...

    2019.10.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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