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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소수자의 목소리 외면하는 독단, 분열의 씨앗 키워 폭력의 꽃을 피워
불화를 조장한 죄를 지은 자들지옥에서 몸이 잘리는 형벌 받아세상에서 남들을 갈라놓는 것은몸에서 머리를 떼어놓는 것과 같아적이 있어야 살아남는 자들은이념·인종·젠더·세대 등 쪼개남을 부정하고 자기 편을 결집그들이 남발하는 폭력의 언어는불통을 풀지 못하는 무능의 표출■의심의 눈을 가진 자들분열의 씨를 뿌리는 자들은 늘 상대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상대를 믿지 못하니 더불어 사는 공생의 원리도 모른다. 어울려 공감과 합의를 도모하는 능력이 원래부터 부족하기 때문이다. 적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들은 이념, 인종, 국가, 정당, 젠더, 지역, 세대를 안에서부터 쪼개고 잘라서 부정하고 적을 만들어 선동을 통해 자기 편을 결집한다. 그리하여 상대에 의지할 줄 모르는 고립에 처하고, 고립에 처할수록 분파주의에 빠져들며 자신들이 옳다는 확신을 자기 편에게서만 인정받고 검증받는다. 한번 갈라진 분파는 계속해서 더 아집과 독선에 사... -
⑪정의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 이 땅을 다스리는 자의 의무다
■단테, “정의를 전파하는 사람”정의는 좋은 사회 위한 필수 요건문제는 정의를 이해·실천하는 능력단테, ‘정의를 전파하는 사람’ 자칭평생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 쏟아의도와 행위에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정의는 인간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성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정의로운 사회 안에서 더 잘 살 수 있다. 정의는 좋은 사회의 필수 요건이고, 좋은 사회는 좋은 삶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항상 정의로울 수는 없으므로 법률과 같은 규제와 조절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좋은 인간은 법이 두려워 법을 지키거나 불의하다는 비난이 두려워 정의롭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좋은 인간은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를 원하기 마련이다. 반면, 나쁜 인간은 그 이상의 자유를 원하고, 그래서 법과 정의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 법과 정의에서 이탈할 때 인간은 사악한 짐승이 된다.위 문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 제5권에서 진술... -
⑩아무리 가져도 불완전한 재화, 나눔으로써 완전한 충족을 얻으라
■단테가 겪은 세이렌과 암늑대탐욕의 죄를 씻는 연옥의 다섯째 둘레에서 단테는 늙은 세이렌의 꿈을 꾼다. 세이렌은 육체가 뒤틀리고 안색이 창백하고 파리하건만, 잠에 취한 단테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젊은 여자로 보인다. 세이렌이 일찍이 수많은 뱃사람을 홀리고 죽게 만들었던 노래를 부르자 단테는 마음을 빼앗겨 혼미해진다. 이때 고결한 여인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베르길리우스를 부른다. “오, 베르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 이 여자는 누구인가?”([연옥] 19곡 28행) 그러자 베르길리우스가 나서서 세이렌의 옷을 찢고 앞자락을 젖혀 배를 보여 주는데, 단테는 거기서 나오는 악취에 기겁하여 잠에서 깬다([연옥] 19곡 29~33행).세이렌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탐욕의 죄를 짓게 만드는 요부다. 실제로는 추하고 늙었지만 일단 사로잡히면 마냥 아름답고 젊게 보이듯, 탐욕도 그런 속성을 지녔다. 세이렌의 노래에 취한 단테는 잠에 빠져 어두운 숲을 밤새 헤매던 때를 떠올리게 한... -
⑨합리적 소통·결정에 움직이는 사회…예언이 아닌 주술은 ‘죄’다
■인간, 별의 관찰자단테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언덕 위의 별빛을 올려다보며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캄캄한 지옥에서 벗어나 연옥에 올랐을 때 그의 머리 위에는 새벽별이 빛나고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별빛이 인도하는 구원의 순례였다. <신곡>을 구성하는 [지옥]과 [연옥], [천국]의 끝 구절은 모두 “별(stella)”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지옥에서는 별을 그리며, 연옥에서는 별을 올려다보며, 천국에서는 별과 함께, 단테는 길을 만들어갔다.오랫동안 인간은 별의 운행이 세상의 변화와 맞물린다고 생각했다. 중세에서 천문학(astronomy)과 점성학(astrology)은 별의 정확한 관측과 수학적 계산에 기반을 둔, 대학에 개설된 공식 학문이었다. 천문학이 별의 운동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한편 점성학은 그 해석을 통해 삼라만상의 원리를 궁구하고 이치를 가르쳐주는 ‘이성의 과학’이었다.단테는 <신곡>에서 신의 세계... -
⑧하느님도 양성의 존재인데…과연 동성애자를 내치실까
■단테가 불타는 모래벌판에 들어서다당대 가톨릭, ‘자연을 거스른 죄’로고리대금업만큼 동성애를 죄악시신곡 속 동성애자들 만난 단테는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단테는 폭력배들이 잠겨 있는 피의 강과 나무가 된 자살자들의 숲을 지나 고리대금업자와 동성애자가 위치한 모래벌판으로 내려간다. ‘하느님께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다. 거기서 정의의 끔찍한 기술이 보였다.그 새로운 광경을 분명히 드러내 말하자면,우리가 도착한 벌판은 바닥에서 모든 식물이 사라진 곳이었다.([지옥] 14곡 6~9행)하느님이 악을 벌하고자 이곳 벌판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불모의 모래땅으로 만들었다. 이 불모성은 인간이 자연에 가한 폭력의 결과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한 본성을 주셨고, 본성은 자연에서 나온 것이기에, 하느님에 대한 폭력은 결국 자연을 괴롭히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다. 하느님은 그런 행위의 대가를 재생과 순환이 다시는 이루어지지 않는 상... -
⑦폭력에 저항하고, 삶을 견딜 때…선한 의지는 거룩해진다
■펄펄 끓는 핏물에 잠긴 폭력배들끓는 핏물에 잠긴 폭력 가해자들켄타우루스의 감시하에 고통받고괴물에 쪼임당하는 자살자의 숲나무가 된 몸은 비명만 지를 뿐언어 폭력, 감정 폭력, 아동 폭력, 여성 폭력, 데이트 폭력, 학교 폭력, 성폭력, 묻지마 폭력, 갑질 폭력, 팩트 폭력, 인종 폭력, 소수자 폭력, 국가 폭력…. 종류와 대상, 장소와 방식을 가리지 않고 폭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습격하고 있다. 조절하기 힘든 울분과 파괴의 충동, 광기 어린 질투와 지배의 욕망이 우리를 날뛰게 만든다. 카인의 후예답게 오랫동안 인간은 폭력의 손아귀에 덜미가 잡힌 채 살아왔지만, 요즘처럼 별별 폭력을 경험했던 적도 없으리라. 그뿐인가. 자연에 대한 폭력은 인간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단테는 폭력을 악한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고 대상을 괴롭히는 행위로 정의하고([지옥] 11곡 22~24행), 폭력을 당하는 대상에 따라 종류를 크게 셋으... -
⑥위조하는 자여, 그대 영혼은 이미 지옥에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지옥 밑바닥이성이라는 미덕 이용한 사기죄는인간임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것단테의 지옥에는 사기꾼들이 득실거린다. 그만큼 저지르기 쉽고, 종류도 다양한 범죄가 ‘사기’라는 얘기다. 사기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역행하여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이기에 해악의 정도와 범위가 매우 큰 범죄다. 단테는 사기를 “사람만이 행하는 죄악”([지옥] 11곡 25행)이라 부른다. 인간의 고유 능력인 이성을 적극 이용해 저지르기 때문이다.이성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사기는 절제를 동반한다. 절제를 못할수록 커지고 드러나는 다른 죄들과 달리, 사기는 절제를 잘하면 잘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절제가 인간을 짐승과 구별해주는 최고의 미덕이라면, 사기는 그 미덕을 범죄에 의도적으로 가담시키는 일이다. 그 결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절제가 오히려 인간을 짐승보다 못하게 만든다. 사기는 인간임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일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 -
⑤분노의 자욱한 연기를 가르며 평화의 빛으로
■인간의 죄에 분노하다지나친 분노의 수렁에 빠진 사람은화내선 안 될 일에 과하게 분노분노를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은인간적인 삶에 둔감하다는 징후지옥 여행을 이어가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앞을 진흙 수렁이 가로막는다. 일행이 뱃사공 플레기아스의 배를 타고 수렁을 건너는 도중에 그 속에 잠겨 있던 망령 하나가 나타나 단테에게 말을 건다. 정체를 묻는 단테에게 그는 그저 “우는 자”라고만 밝히는데, 이 말에는 이미 세상과 자신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다. 그는 세상에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분노의 정치를 펼쳤고 단테 추방에 앞장섰던 필리포 아르젠티. 이제는 지옥에 떨어져 있건만 죄를 숨기려는 그의 교만하고 위선에 찬 모습에 단테는 분노를 터뜨린다. 내가 그에게 외치길, “저주받은 영혼아, 눈물과 비탄에 잠겨 있어라!아무리 더러워졌어도 내 너를 알아보겠다.”그러자 그가 배를 향해 두 손을 뻗었는데, 스승이 알... -
④대식, 입이 저지르고 입이 해결하는 죄
나는 셋째 고리에 있다. 무겁고 차가운,저주받은 영겁의 비, 규칙과 성격이결코 새로워지지 않는 비가 내린다.거대한 우박과 구정물, 그리고 눈이어두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이를 받아들이는 대지는 악취를 뿜어낸다.([지옥] 6곡 7-12행)■대식의 죄인들이 진흙탕에서 뒹굴다단테는 지옥의 셋째 고리에 내려가 영원토록 변함없이 쏟아지는 비, 우박, 구정물, 눈이 뒤섞인 진흙탕에서 뒹구는 대식가들을 발견한다. 세상에서 먹는 일에만 몰두하다 죽은 자들이다. 뱀 껍질에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루스가 사납게 짖어대며 세 개의 아가리로 이들을 물어뜯고 찢어발긴다. 세상에서 음식을 게걸스레 입에 처넣었던 이들의 거친 동작이 케르베루스에게 고스란히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케르베루스는 대식의 상징이 되어, 일찍이 대식가였던 이들을 대식의 제물로 만든다.케르베루스와 똑같이 개처럼 울부짖는 이들의 몸이 찢겨나가고 피가 튄다. 세상에서 먹었던... -
③우리 시대의 사랑은 안녕한가
“그런데 말해 주오. ‘사랑의 지성을 지닌 여인들’로시작하면서, 새로운 시구를 끌어낸그 사람을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지를.”내가 그에게, “나는 사랑이 숨을불어넣을 때, 받아서, 안에서 불러 주는그대로, 드러내며 가는 하나라오.”([연옥] 24곡 49~54행)■사랑으로 시를 쓰다연옥에서 마주친 시인 보나준타는 단테에게 “사랑의 지성을 지닌 여인”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를 지은 사람인지 묻는다. 단테가 청년 시절에 쓴 <새로운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테는 사랑이 불어넣는 숨이 생명의 근원이고, 그 숨을 내쉴 때 목소리가 되는데 그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으면 시가 된다고 대답한다. 단테의 시 쓰는 법을 간결하게 요약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테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학운동을 주도한 시인들은 사랑이 숨을 불어넣어 시를 쓰게 하는 존재가 여자라고 생각했다.사랑의 궁극을 구원으로 설정한 문학청년 단테에게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