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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하나로도 우주로 연결되는 거예요
“우리가 보는 빛은 태양 속에서 그 오랜 시간을 버틴 끝에 지구를 향해 8분을 날아온 빛입니다. 달이나 목성 혹은 다른 곳으로 갈 확률도 있지만 극히 일부의 빛알이 지구 표면에 도달해 아주 작은 이파리에 들어가서 광합성을 일으키지요. 그 잎을 먹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거니까, 나뭇잎 하나로도 우주로 연결되는 거예요.” <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어크로스)산책을 즐기는 실험물리학자 고재현은 ‘산책길에서 코스모스(우주)와 연결됨을 느끼는 순간이 있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봄에 특히 그렇죠”라면서 위와 같이 답한다. 봄철에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의 연한 녹색에서 수십만 년의 시간을 넘어 지구로 날아온 빛의 존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주적 연결에 대한 감각은 과학의 지식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경이롭고 시적인 통찰일 것이다.책은 저자가 국내 과학자 8명과 인터뷰한 기록이다. 그는 ‘과포자’가 양산되는 것은 우리... -
휴대전화가 사람을 끌고 바쁘게 걷고 있다
“모든 길은 바스락거리는 불씨를 품고 있다// 휴대전화가 사람을 끌고/ 바쁘게 걷고 있다/ 모든 것이 있는데/ 하나가 없는/ 내가 사는 도시/ 입술로 말하면 사뭇 쑥스러운/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스물세 살 같은 땀방울/ 열세 살 같은 새로 솟는 깃털/ 세 살 같은 반짝이는 이빨이 안 보이는 거리 - ”<그 끝은 몰라도 돼>(문정희·아침달)시 ‘빈 거리’의 일부다. 시 속 사람들은 자신의 리듬으로 걷기보다는 휴대전화에 끌려가듯 움직인다. “스물세 살 같은 땀방울/ 열세 살 같은 새로 솟는 깃털/ 세 살 같은 반짝이는 이빨” 같은 생명력 넘치는 인간적인 요소들은 이제 첨단 기기가 점령한 도시에서 굳이 언급하기 “쑥스러운” 옛것으로 전락했다.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마무리된다. “끝내 만날 일 없는 발자국들과 발자국들이/ 누더기 햇살 속을 어른거린다/ 휴대전화끼리 속이고 사랑한다/ 휴대전화끼리 축의금과 조의금을 주고받는다/ 병원으로 화장장으로 도깨... -
광장 군중을 ‘폭도’로 몰아붙이는 독재자들
“예를 들어 흥분한 관중들로 들어찬 축구장과는 달리, 분노한 여러 사람이 함께 행진하는 시위 현장에서는 모욕적인 욕설을 외치지 않는다. (중략) 폭력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이들이 저지르며, 거의 언제나 경찰이 행사하는 무력에 맞대응하느라 발생한다. 대중이 집단 심리에 사로잡혀 스스로 먼저 폭력을 쓰는 일은 없다”<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원더박스)권력자들은 흔히 광장에 모인 군중을 폭도로 몰아붙이기를 좋아한다. 몇몇 극단적 선동가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작가 프리데만 카릭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카릭은 <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에서 미국 사회학자 클라크 맥페일의 연구를 인용한다. 맥페일은 “‘광기 어린 군중’이라는 말은 근거가 희박한 주장, 일종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 시민들은 이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
나한테 주어지는 모든 세계를 살아보고 싶어요
“미란씨는 무언가를 나중에 잃는 것보다 처음부터 없는 게 나은 것 같다고 했었죠. 나중에 잃게 되는 건 너무 가슴 아프다고요.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난 나중에 잃는 것을 선택할 거예요. 그건 두 세계를 살아보는 거잖아요. 어쩌면 세 세계인지도 모르죠. 있음과 없음, 그 둘을 연결하는 잃음. 나는 나한테 주어지는 모든 세계를 빠짐없이 살아보고 싶어요.” <모린>(문학동네)고객센터 상담직원이자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낭독 봉사를 하는 ‘미란’은 시각장애인이자 복지관 재활자립팀 팀장인 ‘영은’과 연인이 된다. ‘진상’ 고객과 고된 업무에 시달리던 미란은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마저 사망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영은과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다. 영은은 미란을 기다리며 쓴 글에서 미란을 ‘모린’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미란씨를 그 이름으로 부르면 어떨까. 미란씨가 나에게만은 그렇게 불린다면 어떨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지만 난 알고 있어요. 미란... -
장밋빛 약속을 동력 삼는 ‘투기 자본주의’
“이런 식으로 투기는 경제 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효과인 ‘참여 에스컬레이션’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낸다. 슬롯머신 게임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이 그 좋은 예다. (중략)우리는 통계적으로 적어도 한 번은 좋은 운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시 동전을 기계에 넣는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더 많이 잃을수록 잭팟의 가능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투기 자본주의>(민음사)피에르이브 고메즈 EM리옹 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투기 자본주의>에 따르면 ‘투기’는 자본주의의 예외적 일탈 현상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이자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과거 자본주의는 건전한 자본 축적에 의한 성장을 추구했으나 현대의 투기 자본주의는 미래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밋빛 약속을 동력으로 삼아 전진한다. 가령 2018년 미국에서 흑자 기업의 주가는 32%, 상위 5400대 기업의 주가는 9% 상승했지만, 유니콘 기업(시가총액이 10... -
가정환경 배제한 ‘능력주의’는 정의롭지 못하다
“한마디로, 사회적 불평등 요인들의 효력은 매우 강해서 경제적 수단의 평등화가 성취된다고 하더라도, 대학 체계는 사회적 특권을 개인적 재능이나 역량으로 변환함으로써 불평등을 계속해서 신성화할 수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이 실현되면 학교 체계는 온갖 정당성의 외양을 이용해 특권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이다.” <상속자들>(후마니타스)<상속자들>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와 장클로드 파스롱(1930~)이 1964년에 출간한 책이다. 책은 1960년대 프랑스 교육 제도에 내재한 불평등에 대한 분석이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다. 전후 프랑스는 모든 시민에게 차별 없는 교육기회를 제공했으나, 대학 진학률과 대학 학업 성취도는 계급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냈다. 저자들은 학생들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의 차이가 결정적인 이유라고 분석한다. 상층 계급 출신들은 토론 문화... -
농사짓는 것, 농산물 포장하는 것
“한 해 동안 철따라, 날마다 달라지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야만 멀쩡한 채소와 곡식과 과일을 얻는다. 그러니 농사를 짓는 것과 농산물을 포장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일인데, 요즘은 그걸 같은 사람에게 다 해내라고 밀어붙인다. 몇년 전부터 모든 농사꾼을 농업경영인이니, 농업경영체니 하면서 관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보고 있으면 농업인에 대해서, 농사짓는 사람이라는 부분보다 농산물 파는 사람이라는 부분을 더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다.” <농사연장>(상추쌈)귀농한 저자는 농사짓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농산물 포장재를 찾고 이를 포장하는 게 더 어려웠다고 말한다. 여러 작물을 조금씩 짓는 농사일수록 더 건강한 농산물이 나오기 쉽지만 그러자면 택배를 이용해 직거래를 해야 하고 포장하고 파는 일까지 다 해내야 한다는 것. 조금씩, 때마다, 적은 돈으로 직접 포장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먹을거리를 싸야 한다는 조건이 가장 까다롭다. 최근 농산물을 가공하... -
읽기를 통해 보살피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돌봐야 할 것이 많다. 나의 몸과 마음이 있고, 주변 이웃이 있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멸종위기종이 있고, 이 모든 것들의 거처인 지구가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알 수가 있다. 그 역시 책을 읽고 생각할 때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읽기를 통해 돌보는 눈을, 보살피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유유)저자는 스마트폰을 “디지털 시대의 트로이 목마”라고 부른다. “각자 손안에 주의 뺏기의 첨병인 스마트폰을, 그것도 비싼 값에 자진해서 들여놓았고, 그 결과 트로이 성이 함락되듯 속수무책으로 시선과 정신을 내주게” 됐다는 의미에서다. 저자는 디지털 기기에 빼앗긴 주의력을 되찾음으로써 타인을 돌보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우리가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무엇으로 고통받는지 ... -
고도의 관심, 물끄러미
“물끄러미, 다른 존재는 못 보는 걸 본다. 못 닿은 것에 닿는다. 물끄러미는 놓치지 않지만 억압하지 않는 시선이다. 간섭하지 않지만 거두지 않는 시선이다. 물끄러미는 고도의 집중력, 고도의 관심이다. 열기도 냉기도 아닌 자연스러움이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중력이 모두 내부에 있어 겉으로는 안 드러나는 상태, 그러니까 식지 않은 명랑의 상태다. 선생님은 타인을 위해 가져야 하는 덕목이 명랑이라고 쓰셨다.” <물끄러미>(난다)이원 시인은 6년 전 작고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을 회고한다. 시인은 선생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로 ‘물끄러미’를 꼽았다. 언젠가 툭 던지듯 전한 “이원은 별걸 다 신경 써”라는 선생의 말이 그에게는 내내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별걸 다 신경 쓰는 분주함이 나의 허약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뒤척임이 많았는데,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정말 괜찮아졌다.” 그 말은 ‘별걸 다 신경 쓰니 그만 써’라는 뜻도 ‘별걸 ... -
미국에는 이·팔 전쟁의 책임이 있다, 명백하게
“한 세대에 걸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살해하고 투옥하고 격리하기 위해 힘쓴 결과 하마스와 같은 단체가 권력을 잡게 되었고,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에 찬성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줄어들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스라엘과 로비가 함께 지지한 것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란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왜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서는가> (크레타)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와 스티븐 M 월튼 하버드대 존 F 케네디스쿨 교수는 국제정치학계에서 냉정한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책에서 이들은 미국이 중동 정책에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옹호해온 것은 미국 내 유대인들의 대정부 로비 탓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가 냉전 이후 크게 떨어졌는데도 미국이 이스라엘의 편에 섬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이 훼손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원서는 이스라엘 비판이 금기시됐던 200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