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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 [금요일의 문장]책도 적어도 내일까지는 우리 곁에 있을 겁니다
    책도 적어도 내일까지는 우리 곁에 있을 겁니다

    “디지털이, AI가 모든 것을 뒤바꿀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을 둘러싼 아날로그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영역과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이 있는 한 출판 산업의 세계에 내일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책도, 출판도, 책방도 먼 미래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일까지는 우리 곁에 있을 겁니다. 내일의 세계는 책을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읽는 사람인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일의 미래>, 메멘토인공지능(AI)이 저자의 자리를 위협하고, 유튜브가 책의 위상을 위협하는 시대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그럼에도 책이 소멸하는 날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책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을 기점으로 보더라도 500년 이상 된 ‘올드 미디어’다. 신문, PC, 비디오,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할 때마다 ‘사라질 운명’이라는 예언이 나왔지만 여태 살아남았...

    2025.06.12 21:27

  • [금요일의 문장]그는 여름 내내 날마다 밭을 받았어
    그는 여름 내내 날마다 밭을 받았어

    “그의 살갗은 매미 울음소리 같은 껍질 그의 목소리는 퍼붓는 억수 같은 음성 입은 옷은 늘어나 헐렁헐렁하고 구멍이 나고 빨아도 땀냄새는 다 빠지지 않았지 그는 여름 내내 날마다 밭을 받았어 큰 흙덩이의 거친 밭이었지 저녁이 오면 괭이 같은 발을 씻고, 물외냉국에 찬밥을 말아 뜨고, 여름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 한숨을 길게 놓았어 그러곤 홍자색 꽃망울 같은 눈을 꼭 감았지” <풀의 탄생>, 문학동네문태준 시인이 아홉번째 시집을 냈다. 제주에 풀밭 살림을 일궈 다섯 해 넘게 살고 있다는 그는 이번 시집에 생의 기운이 넘실대는 자연의 모습을 풀어놓는다. 꿈틀대는 지렁이를 보며 시인은 “흙 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 있었다”고 깨닫는다. 세상의 생명은 모두 이 큰 세계를 양분으로 두고 태어난다. 대지의 기운이 생동하는 봄부터 사계가 4부로 이뤄진 시집에 담겼다. 자연은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시끄럽고 부산하지 않다. “눈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네/ 안간힘 쓰지 않고/...

    2025.06.05 20:16

  • [금요일의 문장]노예는 모든 순간 임박한 파멸의 감각을 경험했다
    노예는 모든 순간 임박한 파멸의 감각을 경험했다

    “노예도 인간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부모와 친족에, 그리고 그들을 통해 조상에 속하기를 원했고, 자기 자식들이 자신에게 속하기를 원했으며, 그러한 유대가 안전하고 강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모든 유대는 위태로웠다. 아이는 언제라도 빼앗길 수 있었고, 연인이나 허락받은 ‘남편’, 어머니, 조부모, 모든 친척도 언제든 빼앗길 수 있었다. (중략) 노예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자기 존재의 모든 것, 모든 생각, 모든 순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항상 존재하는 임박한 파멸의 감각으로 경험했다.”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 이학사저자인 올랜도 패터슨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 노예사 연구의 권위자다. 1982년 출간된 이 책은 전 세계 66개 사회에 존재했던 노예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적 죽음’의 개념을 제시한 명저로 꼽힌다. ‘사회적 죽음’ 개념은 문학연구와 문화연구, 페미니즘 철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 죽음’이란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으로서...

    2025.05.29 20:14

  • [금요일의 문장]인간, 썩지 않는 물질을 배출하는 그 괴물들 말이지?
    인간, 썩지 않는 물질을 배출하는 그 괴물들 말이지?

    “아득한 옛날 수면 너머에는 이 대양처럼 온갖 종류의 생물이 화사하게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 200여년 사이에 거의 사라졌고 지금 저 위에는 인간이라는 기이한 종만이 닥다글닥다글 들끓고 있다고. ‘썩지 않는 물질을 배출하는 그 괴물들 말이지?’ 큰니가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를 떨며 말했다. 그들은 먹을 수 없는 유독물을 매일 수천 톤씩 배설해 대양에 버린다.” <고래눈이 내리다>, 래빗홀SF 작가 김보영이 5년 만에 낸 신작 소설집 표제작은 ‘고래눈이 내리다’다. 주인공인 바다 동물들에게 인간은 썩지 않는 물건을 바다에 던지고 바닷물을 뜨겁게 만드는 주범이다. 인간이 투척한 쓰레기는 심해 동물들을 아프게 한다.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기후위기를 다루지만 언제나 인간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동물의 고통과 생각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통쾌하다. 소...

    2025.05.22 20:08

  • [금요일의 문장]나에게 매달려 있는 엄마를 보고 저항을 멈췄다
    나에게 매달려 있는 엄마를 보고 저항을 멈췄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매달려 있는 것이 엄마라는 것을 보고 저항을 멈췄다. 깊은 물에 빠질 거라 생각하며 입을 벌렸지만 그 대신 깨끗하고 푸른 공기를 들이마셨다. 너른 바다가 아니라 하늘로 더 높이, 더 높이 나는 그렇게 헤엄치고 있었다. (중략) 그러고는 가느다란 푸른 강의 빛이 빙빙 돌며 땅을 향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 끝에서 나는 잠자고 있었다. 엄마가 심어놓은 작은 씨앗 주변에서 똬리를 튼 채 태어나기를 기다리면서.”<컴퍼트 우먼>, 산처럼재미 작가 노라 옥자 켈러는 1993년 하와이대학교에서 열린 인권 심포지엄에서 15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황금주 할머니(1922~2013)의 증언을 들었다. 증언에 압도된 작가는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일본 정부의 부인 속에 억눌려 있던 고통의 역사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하고 1997년 <컴퍼트 우먼>을 출간한다. 소설은 위안부 피해 여성의 거대한 고통과 슬픔을 피해 당사자인 여성과 ...

    2025.05.15 20:40

  • [금요일의 문장]읽고 있는 문장들을 마음속으로 외우는 것
    읽고 있는 문장들을 마음속으로 외우는 것

    “할머니가 어느 날 저에게 부탁을 하나 하셨습니다. 책 한 권을 외우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든지 간에 책 한 권을 꼭 외우고 싶다고. 할머니 기억 속에 안전하게 남아 있을 책 한 권. 더 이상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할머니는 읽고 있는 문장들을 마음속으로 외우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여러 가지 물건들의 목록들도. 강이나 마을의 이름들도.” <바이 하트>, 알마포르투갈 출신의 연출가이자 극작가, 배우이기도 한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희곡이다. 2013년 포르투갈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00회 이상 공연됐다. 작품은 무대 위에 놓인 열 개의 빈 의자에 열 명의 관객을 초대하면서 시작된다. 공연에 직접 배우로 출연하는 작가는 관객에게 세익스피어의 소네트30의 14행을 외울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모두가 소네트를 외워야만 공연이 막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소네트의 구절을 가르치며 곧 실명하게 될 그의 할머니...

    2025.05.08 20:07

  • [금요일의 문장]마감은 자신의 빈틈과 모자람을 견디는 훈련
    마감은 자신의 빈틈과 모자람을 견디는 훈련

    “그러니까 마감을 지킨다는 건 내가 지금은 이 정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부족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여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음 마감에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빈틈과 모자람을 견디는 훈련인 셈이다.”<일의 말들>, 유유저자 황효진은 작가, 강사, 대학원생, 무임금 가사 노동자 등 여러 가지 직업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정규직으로도 일했고, 계약직과 프리랜서도 경험했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아침에 최소 30분 이상 책을 읽고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수첩에 기록했다. 어느날 수첩을 다시 보니 “일과 일을 둘러싼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의 말>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이 문장들은 수많은 일하는 날들을 버티게 해 주었고 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거나...

    2025.05.02 09:51

  • [금요일의 문장]부재하는 것들은 부재의 감각으로 나를 일깨운다
    부재하는 것들은 부재의 감각으로 나를 일깨운다

    “이를테면, 그런 날이 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을 통과한 햇빛이 반소매의 팔에 닿은 순간, 당신에 대한 모든 기억이 문득 불러일으켜지는 순간 같은 때 말이다. 당신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아도, 몸과 마음에 새겨진 햇빛과 바람과 기후와 체취의 기억이 소름 돋듯 갑작스럽게 불러일으켜지는 때 말이다. 부재하는 것들은 이따금 부재의 감각으로 나를 일깨운다.”<반짝과 반짝 사이>, 나남김근 시인이 직접 고른 시와 삶에 대한 산문 형식의 글 8편을 엮은 ‘시의 바깥’을 함께 실은 선집이다. 시의 바깥에 서술된 시인의 경험은 명확한 시공간의 설정 없이 모호하고 혼란하다. 그 모호함 사이에서 ‘시’가 태어난다.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말은 완성되지 않는다. 말은 말을 반성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라고 썼다. 문학평론가 김태선은 김근의 시에 대해 “말에게서 말에게로, 말과 함께 나아간다. 나아감 끝에 어떤 폐허에 이르게 될지라도, 그곳을 가능한 한 공허...

    2025.04.24 21:33

  • [금요일의 문장]초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것을 곧잘 잊는다
    초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것을 곧잘 잊는다

    흔히 시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운율, 리듬, 음악성 같은 특징은 사실 산문에도 있다. (중략) 초보 작가는 하려는 말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문장의 모양과 소리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하곤 한다. 이들은 단어 안에 욱여넣은 의미에 골몰한다. 내용에 집착하느라 형식을 망각한다.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사실을,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와 다르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단어 옆에 서기>, 위고영국의 사회문화사학자 조 모란은 “좋은 문장을 쓰는 일은 미적분을 푸는 일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한다. “아무리 문장의 기본 구조를 안다 해도 독자를 움직이고 매혹시키며 흥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단어를 배열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러니 글을 잘 쓰려면 장인의 기술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마치 일본의 초밥 장인이 몇년 동안 바닥 쓸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첫 10년은 책읽기만 허용하고 그 후...

    2025.04.17 20:42

  • [금요일의 문장]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처음에는 인물도 낯설고, 상황도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갈등이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무슨 이유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영원히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무겁게 남아 있는 채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단 한 번의 삶>, 복복서가이름만으로 독자를 설레게 하는 작가들이 있다. ‘김영하’도 그중 하나다. 유료 e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에 연재한 글 열네 편을 다듬어 엮은 이번 책은 소설 <작별 인사> 이후 3년, 산문집으로는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의 작품이라 관심이 높았다. 지난달 24일 예약판매를 시작하자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2주 연속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책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몇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로부...

    2025.04.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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