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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 [금요일의 문장]초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것을 곧잘 잊는다
    초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것을 곧잘 잊는다

    흔히 시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운율, 리듬, 음악성 같은 특징은 사실 산문에도 있다. (중략) 초보 작가는 하려는 말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문장의 모양과 소리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하곤 한다. 이들은 단어 안에 욱여넣은 의미에 골몰한다. 내용에 집착하느라 형식을 망각한다. 내용과 형식은 같다는 사실을,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와 다르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단어 옆에 서기>, 위고영국의 사회문화사학자 조 모란은 “좋은 문장을 쓰는 일은 미적분을 푸는 일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한다. “아무리 문장의 기본 구조를 안다 해도 독자를 움직이고 매혹시키며 흥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단어를 배열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러니 글을 잘 쓰려면 장인의 기술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마치 일본의 초밥 장인이 몇년 동안 바닥 쓸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첫 10년은 책읽기만 허용하고 그 후...

    10시간 전

  • [금요일의 문장]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처음에는 인물도 낯설고, 상황도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갈등이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무슨 이유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영원히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무겁게 남아 있는 채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단 한 번의 삶>, 복복서가이름만으로 독자를 설레게 하는 작가들이 있다. ‘김영하’도 그중 하나다. 유료 e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에 연재한 글 열네 편을 다듬어 엮은 이번 책은 소설 <작별 인사> 이후 3년, 산문집으로는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의 작품이라 관심이 높았다. 지난달 24일 예약판매를 시작하자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2주 연속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책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몇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로부...

    2025.04.10 21:01

  • [금요일의 문장]4월의 소나기는 5월의 꽃을 부른다
    4월의 소나기는 5월의 꽃을 부른다

    “‘4월의 소나기는 5월의 꽃을 부른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나는 빗방울이 맺힌 메이애플의 잎사귀를 보며 메이애플을 위한 속담이라고 생각했다. 소나기를 맞는 우산 같은 모양새와 5월에 피는 꽃 때문도 있지만, 메이애플의 현명한 생존 방식이 속담의 뜻과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속담에서 소나기는 시련이나 역경을 의미한다고 한다. 5월의 꽃은 그 이후 한층 성숙하거나 좋은 날이 온다는 의미다.”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한겨레출판저자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다. 2025년 4월 런던 린네 학회로부터 과학적인 식물 그림을 그린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질 스미시스상을 받았다. 책에서 저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원으로 지내며 자주 갔던 미국 메릴랜드주 숲속의 식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이애플은 우산 모양의 잎이 4월 내내 조금씩 커지다 5월에 활짝 펼쳐지면서 꽃이 핀다. ‘잔인한 4월’을 견디고 5월에 절정을 맞는 ...

    2025.04.03 20:11

  • [금요일의 문장]예술은 인간의 경험에 감정적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
    예술은 인간의 경험에 감정적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

    “예술과 미학은 아름다움을 넘어 훨씬 큰 것을 아우르며, 인간이 하는 다양한 경험에 감정적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 ‘예술은 혀에 단 설탕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예술 작품에 도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는데, 그 불편함은 자세히 들여다볼 의향이 있다면 어떤 변화와 탈바꿈의 가능성을 제공하죠. 그건 굉장히 강렬한 미적 경험이 될 수 있어요.’”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윌북예술은 어렵고 불편한 생각이나 개념을 곱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페인 내전을 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한 장면만으로 사람들에게 전쟁의 본질적 참혹함과 잔혹성, 범인류적 고통을 곱씹어볼 계기를 던져준다. 정신적 깨달음을 넘어서 생물학적 변화도 촉진한다. 책에 따르면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는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결정적 영역인 중앙대상피질을 활성화해 뇌 신경 활동을 변화시킨다. 미술 치료나 연극 치료 ...

    2025.03.27 20:26

  • [금요일의 문장]디지털은 촉각적 리듬을 재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디지털은 촉각적 리듬을 재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것을 또다시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원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우연한 만남이 우리 관심을 촉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디지털 기술은 이 계획되지 않은 사건, 즉 책장을 넘기고, 시간을 표시하며, 텍스트를 진행하는 데 따른 촉각적 리듬을 재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디지털 서비스의 이상적 고객이 되려면 인간 스스로가 더 로봇 같아지고, 예측할 수 있으며, 제한적이고, 유순해져야 한다.” <도서관의 역사>, 아르테도서관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바빌로니아 왕은 아시리아의 왕궁 도서관을 불태웠다. 최근에는 전자책이 도서관을 관 속에 넣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장서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책과 만나는 놀라운 경험은 도서관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도서관의 역사> 필자들은 말한다. “도서관이 다양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돌아다니고, 책을 읽다가 내킬 때 언제든...

    2025.03.21 06:00

  • [금요일의 문장]죽은 자가 꼬리다, 몸통은 다른 꼬리를 만들 것이다
    죽은 자가 꼬리다, 몸통은 다른 꼬리를 만들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안으로 굽은 팔은 서로 봐주고 대 주고 몰아주고 밀어주다가, ‘니들이 남이야’라며 내리친 주먹으로 뺏고 끊고 잘라 내고 밀어낸다. 그러다 뭔가가 꼬인다. 꼬인 몸통이 드러날 즈음 누군가 죽는다. 죽은 자가 꼬리다. 몸통은 이제 다른 꼬리를 만들 것이다. 특정의 정치적 사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두루 널린 한 단면을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 민음사시인 정끝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입말 중 하나를 복기해본다.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이다.” 육남매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해주신 말이다. 특정 사안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최근 권력 수뇌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시인은 첫 산문집을 내며 아버지의 이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책에는 아버지 외에도 어머니, 어린 자녀들과 함께했던 시간 속 그의 상념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 팥칼국수를 만들던 날은 “잔칫날”이었다. 형제들과...

    2025.03.13 20:35

  • [금요일의 문장]노년을 불쾌해하는 건 삶의 30년을 지워버리는 것
    노년을 불쾌해하는 건 삶의 30년을 지워버리는 것

    “노화는 일어난다. 그건 너무나도 현실적인 일이다.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 인식하는 것처럼 노화 이야기는 젊은 청춘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화가 현실로서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하거나 현실이지만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렵고 불쾌하다고 여기는 건 우리 삶의 10년, 20년, 30년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 그 시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며 최소한 우리 자신에게는 물론 종종 다른 이들에게도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웅진지식하우스70대인 저자는 사회가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노인을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저자는 노년을 다룬 문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다른 나이대가 흥미로운 것처럼 노년도 흥미롭다. 많은 노인은 사랑에 빠지고, 다른 사람을 돌보고, 앞으로 나아가고, 성관계를 하고, 음악을 만들고, 물건을 만들고, 최소한의 고통으로 하루를 버텨내거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과 모든...

    2025.03.06 20:05

  • [금요일의 문장]글씨 속에 마음이 봉인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
    글씨 속에 마음이 봉인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

    “흰색과 검은색, 직선과 곡선의 경계와 어우러짐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우주, 언젠가 인류가 멸망해 버려도 모래 속에 파묻힌 종잇조각이나 돌조각을 발굴한 외계생명체는 그 글씨 속에 모든 동식물이, 예전에 존재했던 풍경들이,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봉인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먹물의 흐름은 시간을 초월하여 검고 선명하고 생생하게 피어올라 공간을 가득 메우며 외계생명체 앞에서 다시금 만물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할 것이다.” <먹의 흔들림>(하빌리스)미우라 시온의 전작 <배를 엮다>는 출판사의 비인기 부서 사전편집부에서 24만개 단어가 실릴 사전 ‘대도해’ 편찬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라고 믿는다. 조금이라도 더 적확한 말로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것이 소통이기에 사전은 필수 도구다. <먹의 흔들림>은 ‘편지 대필’에 나선 서예가 도다와 호텔리어 쓰즈키의 이야기다. 굳이 편지로...

    2025.02.27 20:57

  • [금요일의 문장]아저씨의 언어로 아저씨의 아킬레스건을 꿰뚫는 것
    아저씨의 언어로 아저씨의 아킬레스건을 꿰뚫는 것

    “학문은 아저씨의 언어로 되어 있으니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인 여성은 아저씨의 언어를 습득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 아저씨의 세계에 동화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아저씨의 언어로 아저씨의 아킬레스건을 꿰뚫을 수도 있습니다. (중략) 아저씨의 언어로 ‘당신들은 이런 구조에 편승해 왔어, 그걸 간과한 거 아니야?’ ‘이래도 모르겠어?’라고 논증하고 데이터를 제시하며 ‘이것 봤지?’라고 확인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학문으로서 여성학의 역할입니다.”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느린서재우에노 지즈코(77)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등의 여러 저서로 잘 알려진 일본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여온 양심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NHK 프로그램 <마지막 강의>의 강연 내용을 묶은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을 ‘마르크스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에 의한 노동...

    2025.02.20 20:49

  • [금요일의 문장]쓰기란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쓰기란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모르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 외에는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이 많지 않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한 본인이 아는 것을 쓴 글은 ‘지당하신 말씀’이거나 지루한 글이 된다. 이런 글은 통념의 반복일 뿐이다. 이처럼 쓰기는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휴머니스트)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에 수록된 ‘공부 되기’에서 “쓰기가 최고의 공부”라고 말한다. ‘쓰기’는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사고를 돌아보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키보드 워리어의 ‘긴 글’”이나 “블로그의 ‘편안한 글’”은 ‘공부로서의 쓰기’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소위 ‘아무 말 대잔치’는 본질적으로 논리가 없다는 말이다. 논리란 말의 맥락, 상황, 적절성, 연결, 성장, 확대 넘어섬 등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주장만...

    2025.02.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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