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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많은 10대에게 가장 필요한 장르 ‘시’
“현실의 어떤 문제에 답을 구하기가 어렵고 막막한 어떤 날, 답답한 생각이 들 때는 늘 시를 찾아 읽고 시에서 답을 구하곤 했는데요. 대학 다닐 때 시집 살 돈이 충분하지 않아서 종로서적 계단을 오르내리며 몇 시간씩 선 채로 시집을 읽고 있노라면, 삶의 주름들이 단번에 펴지고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답이 눈에 선연히 그려지는 신기한 눈 뜸의 경험을 하곤 했지요.” <홀로 함께>(민음사)부제는 ‘시를 처음 읽는 십 대를 위한 언어 수업’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10대들에게 서점 한구석에 서서 몇 시간씩 시집을 읽는 풍경은 낯설 것이다. 또 시를 읽고 현실 속 난제들의 해법을 찾는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시는 현실과 동떨어진 감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는 늘 가장 구체적인 현실이고 가장 절박한 외침이며 생생한 역사이고 또 가장 날것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언어다.” 10대에게 시야말로 가장 혁신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 문학 장... -
기후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다만 종말은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기후 변화를 멈추기 위해 해야 할 ‘행동 리스트’를 만들어 실천하고, 모든 시위에 참여하고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겠지만, 그래도 기후 변화는 우리를 덮칠 것이다. (중략) 상황은 괜찮아지지 않을 것이며, 결코 그런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내일이 없더라도>(한문화)BBC 기자 출신으로 스웨덴에서 환경운동을 해온 저자 도갈드 하인은 인류가 기후 변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인류가 과학의 힘으로 기후 위기라는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불신한다. 과학에 기후 변화에 대응할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과학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본다. 경제성장과 생태적 지속 가능성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의 도전 과제는 유럽 국가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방식을 성공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는 농민들... -
카프카의 ‘소송’만큼…각박한 한국 소수자의 삶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성별, 인종, 계급 등의 사회문화적 규정들 속에 던져진다. 사회는 그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며 늘 우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대기 중이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동안 사회적 ‘정상상태’에 있을 것을 명하는 법 앞에서 계속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를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마음산책)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소송>은 주인공 요제프 K가 이유 없이 체포당하며 시작한다. 주인공의 죄목조차 알 수 없다. 진은영 시인은 카프카의 소설을 설명하며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는 ‘정상’이라는 규정을 들이대며 구성원들에게 끝없이 이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시인의 시선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향한다. 이들의 삶은 비난받아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던 K보다 더 힘든 상... -
자신을 역사에 연루시킬 때 윤리적 주체가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유형의 사례들을 근거로 한국도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전범국이니 일본의 책임을 묻지 말라는 우익적 주장의 변형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조선인 포로감시원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을까. (중략) 우리가 져야 할 몫의 역사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역사에 연루시키는 자만이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한겨레출판)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는 제2차 대전 당시 포로가 된 영국 군인들이 일본군의 철도 건설에 동원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당시 건설 현장에서는 조선인 포로감시원 1000명이 일했다. 일본군이 조선과 대만에서 민간인을 동원해 감시를 맡겼기 때문이다. 조선인 감시원들은 일본군의 지시를 받고 포로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했다. 이들의 잘못이 일본군과 동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피해자일 뿐인가. 1942년 포로감시원으로 일했... -
끝없는 삶의 난제를 형태로 만들어가는 게 인생
유명한 수학 상수인 파이는 원의 지름에 대한 원주의 비율로, 참으로 매혹적인 숫자다. 그리고 파이 파텔이 말했듯이, 이 숫자는 영원히 계속된다. 파이는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무리수’다. 끝이 없으니 딱 떨어지는 분수나 소수로 적을 수도 없다. 주인공의 이름에 빗댄 ‘무리수 파이’에 대한 생각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다. <수학의 아름다움이 서사가 된다면>(미래의 창)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소년이 벵골 호랑이와 구명정에서 227일을 표류하며 살아남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별명인 ‘파이(Pi)’는 원주율을 말할 때 쓰는 바로 그 파이(π)다. 수학자 새러 하트는 주인공의 이름에 빗댄 ‘무리수 파이’에 대한 생각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바다에서 표류하다 살아남은 파이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파이가 망망대해를 떠돌 때, 무작위처럼 보이는 π의 자릿수... -
역사적 기반 위에서 계속되는…평등을 위한 투쟁
“내가 평등을 향한 흐름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절대 우쭐대자는 의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내 의도는 오히려 그 반대다. 단단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평등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자고 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났던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평등을 지속적인 현실로 만들어 준 무수한 투쟁과 집단행동,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사법 시스템, 사회·조세·교육·선거 제도 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평등의 역사>(그러나)<21세기 자본>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18세기 이후 평등이 꾸준히 확대됐다고 지적한다. 2020년의 세계는 1900년보다, 1900년의 세계는 1780년보다는 평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등의 규모는 제한적이다. 피케티는 실질적 평등을 위해 “젠더 차별, 사회적 차별, 종족-인종 차별을 철폐할 수 있는 지표와 절차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평등을 향한 길은 “적극적인 시민을... -
멈춤은 움직임에서 벗어나 고요를 간직하는 일
“내가 높이 사는 멈춤은 끊어내는 일이 아니라 머무르는 일(stay)에 가깝다. 무언가를 더 하거나 덜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일이다. 움직임에서 벗어나 고요를 간직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하는 ‘그대로 멈춰라’ 놀이를 생각해보자. 움직이던 아이가 가만히 멈춰 있기 위해서는 흔들리는 몸을 잡을 수 있는 힘, 노련함, 정지를 유지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창비) 멈추는 자는 ‘멈춰 세우다’라는 말처럼 자신을 세운다. ‘멈춤’은 “멈춤 다음에 오는 변화, 달라진 삶, 더 나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세우는 일”이다.박연준 시인은 ‘멈춤’을 ‘머무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무용수의 동작을 빛나게 하는 것도 멈춤이다. 무용수가 역동적인 동작을 취한 후 그 상태로 1~2초 정도 멈출 때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코어근육, 서로 반대 방향으로 뻗어내야 하는 팔과 다리,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등근육,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러므... -
볼라뇨를 읽다가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볼라뇨를 읽다가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늦여름 오후였고 방에는 작은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2023년 여름은 도쿄 서울 속초 광주를 오가며 보냈다. 7월이 시작될 무렵 도쿄에서 오랜만에 ‘전화’를 펴서 천천히 읽다가 광주에서는 ‘2666’ 1권을 읽다가 여름이 끝나갈 때 읽다 만 ‘전화’를 다시 폈다. 덥지만 괴로운 정도는 아니었고 뜨거운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을 정도의 날씨였는데 그래도 오후에는 더위 때문인지 왠지 나른해져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위즈덤하우스)<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은 소설가 박솔뫼의 첫 에세이다. 박솔뫼의 산문은 여름날의 낮잠처럼 느릿하게 흘러간다. 칠레 출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는 작가가 책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예술가다. 볼라뇨 관련 행사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주변 친구들이 왜 그렇게 볼라뇨가 좋냐고 물어보면 하고 싶은 ... -
매일 밤 9시에 그녀는 자신의 정신을 포기했다
“그녀가 포털을 열자 정신이 한참 달려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그 안은 눈이 내리는 열대였다. 만물의 눈보라 속 첫 번째 눈송이가 그녀의 혀에 떨어져 녹았다. 포털이 왜 그토록 개인적인 공간처럼 느껴졌을까? 우리는 모든 곳에 있고 싶어서 포털에 들어갔을 뿐인데… 매일 밤 9시에 그녀는 자신의 정신을 포기했다. 부인했다, 신념처럼, 양위했다, 옥좌처럼.”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RHK)<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지금의 디지털 문화를 조명한 퍼트리샤 록우드의 자전적 소설이다. 곳곳의 문장들은 독자를 아리송하게 만들지만 곰곰히 다시 읽어보면 인터넷에 종속된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녀는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문장보다 “그녀가 포털을 열자 정신이 한참 달려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는 문장이 온라인이 현실을 장악한 오늘날을 더 잘 보여준다.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하는 조카가 희귀한 질환에 걸렸다. 괴상한 트윗으로 유명해... -
절대 노인들을 제쳐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인을 생물학적, 문화적 부를 얻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닌, 무거운 짐으로 치부하는 것은 진화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명한 소설의 제목을 조금 바꿔서, 호모 사피엔스의 이야기에는 ‘고독 없는 백 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겠다. (중략) 오, 친애하는 코스쿠시여, 인간이 생물학과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우리 종은 절대 노인들을 뒤로 제쳐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현암사)스페인 인류학자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불완전한 인간>에서 ‘할머니 가설’을 소개한다. 집단 내에 할머니가 없으면 손주들의 생존율이 최대 40%까지 줄어들 수 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성장기가 길고 그 기간 중 신체적으로 허약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성장기가 길면 뇌를 발달시키기에는 유리하지만 생존에는 불리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노인의 존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