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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늑대정신’의 원조는 중화민족이 아니라 흉노·돌궐 등 ‘이민족’
2004년 중국 작가 장룽(姜戎)이 <늑대토템(狼圖騰)>을 출간한다. 문화혁명기에 내몽골 올론 초원으로 하방(下方)되어 11년 동안 유목생활을 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중국 내에서만 18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소설이 제기한 ‘늑대토템론’에 대한 논란도 초래한다. 늑대 대 양, 유목 대 농경, 강인 대 유약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중국에 부족한 ‘늑대정신’으로 국민성을 개조하자는 강렬한 복음을 소설이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중화민족의 성격에서 양의 성격이 늑대의 성격보다 아주 우세하면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국토를 빼앗기고 유린당했다. 늑대의 성격이 양의 성격보다 아주 우세하면 전제와 폭정에 처했고, 군벌 간의 끊임없는 전란에 시달렸다. 그런데 늑대의 성격과 양의 성격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늑대의 성격이 양의 성격보다 약간 우세할 경우 영토가 넓어지고 국가가 부강하여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
(26) 용의 후예설, 중국 인문학 고질병…‘용의 신화’는 독점할 수 없다
용은 홍산문화 상징물 중 하나 중국 학자들 ‘선조 신화 만들기’ ‘중화문명탐원공정’에 끌어들여 중국 역사 용의 신화 존재 안 해 역대 전적에도 용의 기록 없어 한 고조 탄생신화에 처음 등장 예수셴(葉舒憲·1954~)이라는 중국학자가 있다. 그는 시골 대학 출신이었지만 같은 또래 중국학자로서는 드물게 신화학·문화인류학 이론들을 학습했고, 방문학자로 유럽과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서구의 신화·원형비평, 구조주의 신화학, 기호학 관련 저술을 번역했다. 1990년대에 들어 <영웅과 태양>(1991), <중국신화철학>(1992), <고당신녀(高唐神女)와 비너스>(1997)와 같은 저작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신화학자로서 성가를 올리기 시작한다. 나도 한동안 그의 책과 논문을 즐겨 따라 읽고 인용하던 독자였다. 그런 그가 국가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2007년 <곰토템(熊圖騰)>을 출간한다.‘2... -
(25) 7개의 해가 뜬 ‘재난’…용기와 희생이 자연의 질서 되돌린다
몽골 신화 속 영웅 에르히 메르겡‘7개 화살로 7개 해 쏘지 못하면 작은 동물 되어 굴속에 살겠다’ 6개의 화살 적중, 1개는 빗나가 절반의 성공담에 숨은 패러독스 해 전부 맞혔다면 ‘암흑 세상’으로 대만 타이얄족 신화 ‘고난’ 강조 태양 쏘러 떠난 세 명의 용사들 자신들은 태양 앞에 도달 못하고 후손이 과업 이루는 데 밑거름 돼 현대인의 폭염 진단 ‘지구온난화’ 과학, 화살 아닌 어떤 해법 찾을까이번 여름 유난히 부고를 많이 받았다. 폭염에 지친 어른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태양과 지구의 조화로운 관계에 금이 갔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인류가 관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비관론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의 종언을 기정사실화하고 지구를 떠나라는 유언도 남겼다. 물론 ‘현재의 상태가 지속되면’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그럼 빙하기도 건넌 신화는 이 폭염을 어떻게 ... -
(24) 뱀 물리치고 얻은 신성한 칼…한반도 철기 전래의 은유일까
창세신의 눈이 아닌 ‘코’에서 나온 스사노오는 추방당한다이즈모로 내려온 그는 여성을 잡아먹는 뱀을 물리치는데이승서 태어나 저승 어머니를 그리워한 ‘매개성’과 연결하면제련 기술을 갖고 이즈모로 건너간 도래인의 얼굴이 겹친다일본신화에 스사노오라는 수수께끼 같은 신이 있다. 그는 태초의 남녀신 가운데 남신 이자나기가 저승에 다녀온 뒤 몸을 씻을 때 태어난 존재다. 오른쪽 눈에서는 월신 쯔쿠요미가, 왼쪽 눈에서는 일신 아마테라스가 생겨나는데, 그는 하필 코를 씻을 때 생성된다.(23회 참조) 왜 코였을까?창세신의 두 눈에서 해와 달이 창조되는 신화는 적지 않다. 중국 문헌신화의 창세신 반고의 좌안은 해가 되고 우안은 달이 된다. 만주족 구전신화 ‘우처구우러번’에서는 천신 압카허허의 눈에서 빛의 신 와러두허허가 해와 달을 만들어낸다. 제주도 구전신화 ‘초감제’에서는 청의동자의 앞이마에 돋은 눈이 해가 되고 뒷이마에 돋은 눈이 달이 된다. 좌우가 불분... -
(23) 권력욕의 산물 일본 천황 신화, 유지시키는 바탕은 지진 아닐까
조카 살해 황위 계승한 덴무정통성 세우려 신화 만들기가상의 천황 창안하게 기획고사기·일본서기에 형상화천황가 조상신 아마테라스탄생 전에 여러 신들이 출현재편 거쳐 일본 최고신 상승불교 전래 후 부처와 동일시근대엔 천황제 국가의 신화로 800만 신국 ‘천황’ 비판하지만자연재해 많아 집단 불안의식신화가 없다면 버틸 수 있을까7월 초에 도쿄 문학관 답사를 다녀왔다. 저녁에 와세다대학 앞에서 저녁을 먹다가 지진을 겪었다. 집이 흔들리자 작은 이자카야 주인은 후다닥 문을 열어 놓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였다. 당황한 일행들이 “어어” 하는 사이 흔들흔들하던 지진은 잦아들었다. 진앙은 도쿄 인근 바다, 진도 6.0이었다. 걱정하며 떠난 답사 여행지에서 지진국의 실체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날 낮 와세다대학 지하철역을 나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보살상이었다. 길 모퉁이에 낙마지장존(落馬地藏尊)을 모신 작은 성소가 있었다. 에... -
(22) 자연의 금기 깬 남편 대신 해결 나선 영산 각시, 산천을 바로잡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고, 산마다 산신이 있다. 삼국시대 이래 고대국가들은 오악의 산신 숭배를 제도화하여 나라의 번영을 기원했고,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발원했다. 그 오랜 전통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이제는 산악회 단위로 신년 산행을 할 때면 시산제를 지낸다. 등산로 곳곳에 쌓인 돌탑도 그 흔적이다. 그런데 팔도 명산의 산신령이 어디서 왔는지, 그 산신령의 신화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는 등산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함경도 지역에서 했던 망자천도굿을 망묵(이)굿이라고 한다. 망령(亡靈)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비는 굿인데, 남쪽에서는 오구굿, 새남굿 등으로도 불린다. 망묵굿에는 작은 굿거리가 여럿 포함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산천굿이라는 것이 있다. 죽은 사람을 산천에 묻을 때 다른 탈이 나지 말라고 비는 굿, 산 사람은 산천의 기운으로 운수대통하라고 드리는 굿이다. 이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산천굿의 신화다. ‘영산 각시와 붉... -
(21) 물과 불의 통과의례를 통해 되찾은, 두 손과 신발 한 짝
계모의 음모로 쫓겨나 팔이 잘리고왕자를 만나지만 다시 쫓겨난 공주물을 마시다 혹은 아이를 구하려다생명의 원천인 물에서 팔이 자란다 몽골 설화 속 ‘팔 없는 소녀’는유라시아에 흔한 ‘계모 학대’ 민담그런데 재투성이 소녀는 왜 있을까죽음의 세계에서 온 선물인 신발과그 신발을 신고 가는 다른 세계…이승과 저승을 중개하는 아궁이는살해된 콩쥐의 부활이 시작된 장소성경에선 심판의 도구인 물과 불민담에선 쌍둥이 같은 재생의 상징두 소녀는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유다인의 <토라>(모세오경)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울 것이다. 다시는 어떤 살덩이도 홍수의 물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땅을 파괴하는 홍수도 없을 것이다.” 악한 세상을 물로 심판한 야훼가 노아와 맺은 계약이다. 계약의 징표는 ‘구름 사이에 걸린 활’ 곧 무지개였다. 토라 신화의 전통 속에서 하늘의 무지개는 신의 약속이다... -
(20) 대만 고산족 풍요 기원 의식 ‘머리사냥’ 반일 저항 무기 되다
1930년 10월27일 대만 난터우현 우서에서 반일봉기가 발생한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청으로부터 대만을 할양받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발이었다. 대만총독부는 한반도에서 했던 바와 다르지 않게 경찰과 군대를 파견하고, 토지조사·일본어교육·출초(出草) 금지와 같은 방법으로 대만 원주민들을 동화시키려고 했다. 통제와 탄압에 맞선 항일봉기의 한가운데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시디그족 족장 모나루다오(1882~1930)가 있었다. 2011년 대만의 웨이더성(魏德聖)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디그 발레(賽德克 巴萊·Seediq Bale)>는 바로 이 사건을 극화하고 있다. 영어로는 ‘무지개 전사들(Warriors of the Rainbow)’이라고 아름답게 번역되었지만 사실은 일제의 학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슬프고도 장엄한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두 가지 인상적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출초, 곧 머리사냥(獵頭·Head hunting)과 문신(Tatt... -
(19)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뼈, 동서양의 ‘신데렐라’들도 소원을 빌었다
엊그제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의 다비식이 있었다. 문인들과 스스럼없이 지냈고 스스로 시인이기도 했던 그의 시 제목처럼 ‘아득한 성자’가 되었다.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가 되었다. 불의 신 아그니와 만나는 다비 의례는 사리를 남긴다. 사리는 신골(身骨), 뼈의 변형이다. 영주(靈珠)라고도 하니 신골은 신령한 구슬이다. 오현 스님도 사리가 되어 부도탑에 봉안될 것이다. 문득 신화적 화두가 떠올랐다. 왜 사리를 모시는가?근래에는 범인들의 화장도 일반적이다. 화장 비율이 80%를 넘어섰다고 한다. 화장터에 가면 화장 후 뼈를 수습하는 습골, 가루로 만드는 분골 과정을 거친다. 분골된 뼈는 납골당으로 간다. 어떤 뼈들은 수목장 혹은 바다장의 이름으로 자연에 귀의한다. 장례의 형식이 어떠하든 우리는 뼈를 몹시 소중히 여긴다. 뼈에 대한 애착, 이것은 인류 보편의 감각이자 의식이다. 하루살이... -
(18) “하루 만에 땅 개간하라”…소년, 농경으로 바뀐 사회 시험대에 서다
지난 세기말 라싸에서 시가체에 이르는 티베트 고원을 답사한 적이 있다. 청두(成都)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라싸 공항에 착륙했을 때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에 별거 아니라고 나는 고산병을 괄시했다. 그러나 버스로 20여분을 달리다가 마애불을 만나려고 잠시 하차했을 때 문워킹을 하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날 밤 나는 감기몸살 비슷한 고산병을 호되게 앓았다. 호된 신고식 덕분인지 다음날부터 몸이 가벼웠다. 가이드는 술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날부터 쉬지 않고 술과 벗하여 답사를 이어갔다. 그때 ‘줄창’ 먹어댄 술이 칭커주(靑과酒)였다. 칭커, 곧 티베트 사람들의 주식인 청보리를 원료로 만든 바이주(白酒)였다. 우리는 웃고 떠들면서 아마 원숭이도 이 술을 먹고 사람이 되었을 거야, 농담을 하곤 했다. 칭커주는 티베트의 원숭이 신화를 호출하는 맑은 술이다. 그런데 티베트 원숭이를 호출하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티베트 곡물기원신화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