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7개의 해가 뜬 ‘재난’…용기와 희생이 자연의 질서 되돌린다

폭염과 해 쏘기 신화

일곱 개의 해를 쏘는 몽골 신화의 명사수 에르히 메르겡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메르겡은 ‘일곱 개의 화살로 일곱 개의 태양을 쏴 떨어뜨리지 못하면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물도 풀도 먹지 않는 작은 동물이 돼 굴속에서 살 것’이라고 맹세했지만 마지막 해를 떨어뜨리는 데 실패한다. 만약 메르겡의 맹세대로 됐다면 지상은 암흑의 세상이 됐을 터. 메르겡 이야기 뒤에는 어떤 사회든 영웅을 원하지만 영웅이 자신의 힘을 과용하면 탈이 난다는 신화적 패러독스가 숨어 있다.

일곱 개의 해를 쏘는 몽골 신화의 명사수 에르히 메르겡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메르겡은 ‘일곱 개의 화살로 일곱 개의 태양을 쏴 떨어뜨리지 못하면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물도 풀도 먹지 않는 작은 동물이 돼 굴속에서 살 것’이라고 맹세했지만 마지막 해를 떨어뜨리는 데 실패한다. 만약 메르겡의 맹세대로 됐다면 지상은 암흑의 세상이 됐을 터. 메르겡 이야기 뒤에는 어떤 사회든 영웅을 원하지만 영웅이 자신의 힘을 과용하면 탈이 난다는 신화적 패러독스가 숨어 있다.

몽골 신화 속 영웅 에르히 메르겡
‘7개 화살로 7개 해 쏘지 못하면
작은 동물 되어 굴속에 살겠다’

6개의 화살 적중, 1개는 빗나가
절반의 성공담에 숨은 패러독스
해 전부 맞혔다면 ‘암흑 세상’으로

대만 타이얄족 신화 ‘고난’ 강조
태양 쏘러 떠난 세 명의 용사들
자신들은 태양 앞에 도달 못하고
후손이 과업 이루는 데 밑거름 돼

현대인의 폭염 진단 ‘지구온난화’
과학, 화살 아닌 어떤 해법 찾을까

이번 여름 유난히 부고를 많이 받았다. 폭염에 지친 어른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태양과 지구의 조화로운 관계에 금이 갔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인류가 관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비관론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의 종언을 기정사실화하고 지구를 떠나라는 유언도 남겼다. 물론 ‘현재의 상태가 지속되면’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그럼 빙하기도 건넌 신화는 이 폭염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신화의 상상력에 따르면 폭염의 원인은 둘이다. 하나는 여러 개의 해가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은 해가 지상에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둘 가운데 전자가 일반적이다. 후자의 경우도 전자의 신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쪽이든 근대과학의 시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경험과학으로 보자면 그럴 듯한 상상이다. 태양은 이글거리는 불이다. 한꺼번에 여러 군데 피우면 더 뜨겁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이 불이니까.

몽골 신화에 에르히 메르겡이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메르겡은 명사수, 에르히는 엄지라는 뜻이니 ‘최고의 명사수’라는 이름을 가졌다. 고구려의 ‘주몽’도 그런 뜻이다.

이 명사수한테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온다. 하늘에 일곱 개의 해가 떠올라 강이 마르고 초목이 시들어 사람과 가축이 살 수가 없으니 제발 해를 없애 달라고! 신화는, 왜 일곱 개의 해가 동시에 떠올랐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폭염의 원인을 묻지 않고 폭염의 퇴치만을 이야기한다.

에르히 메르겡은 맹세한다. ‘일곱 개의 화살로 일곱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지 못하면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리고 물도 풀도 먹지 않는 작은 동물이 되어 굴속에서 살 것이다.’ 존재를 건 맹세로 무장한 메르겡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려 여섯 개의 태양을 여섯 개의 화살로 떨어뜨린다. 여기까지는 이른바 사일(射日)신화의 일반적인 사건 전개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 한 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裔)의 사일신화에서는 명령자 요(堯)임금이 예의 마지막 화살을 감추지만 몽골의 메르겡 신화는 동물을 등장시킨다.

메르겡이 일곱 번째 태양을 겨누고 있을 때 마침 제비 한 마리가 앞을 날아간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가 제비의 꽁지에 맞아 떨어지고 만다. 그사이 태양은 서쪽 산 뒤에 숨어 버린다. 맹세하는 순간 예견되었듯이 메르겡은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화살에 맞은 제비의 꽁지는 가위 모양이 되었고, 실패한 메르겡은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물도 풀도 먹지 않고 어두운 굴속에서 사는 타르바간(Marmota bobak)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장수 나면 용마 난다’는 속담처럼 영웅의 필수적 동반자는 말이다. 메르겡 신화에도 얼룩무늬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은 자신의 주인 메르겡을 따라 맹세를 반복한다. “제가 새벽까지 제비를 못 따라잡으면 네 다리를 잘라 들판에 버려주세요. 차라리 날쥐가 되어 흙 언덕에 살겠어요.” 용마도 자신의 존재를 건다. 결과는 어땠을까? 주인처럼, 잡을 듯 말 듯 밤새 따라다니다가 결국은 따라잡지 못한다. 용마도 실패한다. 메르겡은 화가 나서 말의 앞다리 둘을 잘라버린다. 날쥐의 앞다리가 짧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화 같지만 이야기의 그늘을 들여다보면 ‘동화처럼’ 숨은 그림이 있다. 얼룩무늬 말의 맹세대로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비는 메르겡에게 살해되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제비 멸종보다 심각한 사태는 메르겡의 맹세다. 그의 맹세대로 되었다면 일곱 번째 해도 화살에 떨어져 지상은 흑암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폭염을 해결하려다 폭한(暴寒)에 빠지지 않았을까. 이는 폭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사태였으리라. 덥다고 해를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메르겡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신화적 패러독스다. 영웅은 원래 용맹이 과한 존재다. 어떤 사회든 영웅을 원하지만 영웅이 자신의 힘을 과용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사회가 영웅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메르겡의 해 쏘기 신화에 작동하고 있다.

메르겡이 성공하면 세상은 암흑으로 변한다. 메르겡이 실패해야, 달리 말하면 적절한 수준에서 성공해야 하나의 태양이 빛나는 자연스러운 질서가 조성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성공=암(暗) : 실패=명(明)’이라는 역설적 대응 구조는 이런 신화적 사유가 빚은 틀이다.

대만의 소수 종족인 (아)타이얄족 신화에는 동물이 없는 대신 태양을 쏘러 가는 원정길의 고난이 강조되어 있다. 이들의 신화에도 2개의 태양이 번갈아 떠올라 주야의 구분이 없는 상태, 폭염으로 초목이 마르고 짐승들도 자취를 감춘 고통스러운 상황이 제시된다. 이 절체절명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마을의 원로들이 협의한 끝에 세 명의 용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세 용사는 활과 화살, 무기를 갖추고 길을 떠난다.

그러나 가도 가도 태양은 멀리 있었고 용사들은 늙어갔다. 문제 상황을 자각한 용사들은 작전을 변경한다. 둘은 전진하고, 하나는 돌아가 원로들에게 상황을 보고하기로 한 것. 원로들은 토론 끝에 새로운 결정을 한다. ‘용사들은 각각 사내아이를 하나씩 업고, 밀감과 좁쌀 종자를 지참하고 태양을 추적하라! 귀로의 식량으로 삼기 위해 행로에 좁쌀과 밀감 씨를 뿌리고, 젊은 용사가 늙어 죽으면 아이들이 뒤를 이어받아 계속 전진하는 전략이었다. 첫 세대, 둘째 세대가 죽고, 마침내 셋째 세대의 용사들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몽골 신화가 하늘을 나는 영웅의 과도한 용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타이얄족의 신화는 종족의 운명을 짊어진 세 용사의 영웅되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세 용사가 쏜 화살은 태양에 전혀 해를 입히지 못한다. 여러 차례 실패한 뒤에야 그들은 어린 자신들을 업고 걷던 선배들이 가르쳐준 ‘비법’을 기억해 낸다. ‘다람쥐의 양물(陽物)을 화살촉에 걸어 쏴라!’ 세 대의 양물 화살이 모두 태양의 한가운데를 꿰뚫자 천지가 진동하면서 피가 줄줄 흐르는 태양의 파편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때 공교롭게도 파편 하나가 한 용사의 머리를 때렸다. 바로 그때 태양은 빛을 잃고 창백한 해골처럼 변한다. 화살에 맞은 태양은 점점 어두워져 달이 된다. 이렇게 하여 일월주야의 질서가 생성되고 만물이 살 만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타이얄족 신화는 폭염의 원인인 태양을 제거하는 데 헌신한 용사들의 희생을 강조한다. 몽골의 메르겡도 희생되었지만 그 희생은 자신의 용력에 대한 과신에서 초래된 것이다. 반면에 타이얄족 용사들의 희생은 용력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사일의 행로에서 앞 세대의 주검을 밟고 전진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해를 살해할 방법을 찾아냈다. 혼자가 아니라 셋의 협력으로 결여를 넘어섰다. 용력의 과잉이든 과소든 두 신화 모두 천지일월의 질서가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잠언을 이야기의 갈피에 묻어 두고 있다.

한데 왜 타이얄족은 다람쥐 양물이 태양을 이길 수 있다고 상상했을까? 역사적으로 화살촉은 여러 재질이 쓰였지만 철기문명 이후에는 철이 가장 강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일신화에서는, 그래서 무쇠 화살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제주 신화의 대별왕·소별왕 형제는 천근이나 되는 무쇠 활과 화살로 해와 달을 쏜다. 무겁고 강한 활과 화살은 신화적 영웅의 용력을 상징한다. 그런데 타이얄족 용사들은 실패한다. 얼마나 강한 화살이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없지만 일반적인 화살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람쥐의 양물을 쓸 수밖에 없었다면 거기에는 문화적 맥락이 없을 수 없다.

우데게족 신화에서는 해 둘이 함께 뜨고 하늘이 너무 가까워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폭염으로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여름이면 죽을 정도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영웅들은 특이하게도 세 노인이다. 아마도 이 노인들은 마을의 장로 혹은 현자의 표상일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얼음으로, 다음에는 쇠로 화살을 만들어 쏘았지만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사용한 화살은 뼈화살이다. 타이얄족의 양물 화살에 대응하는 것이 우데게족의 뼈화살이다. 뼈 역시 문화적 맥락이 있을 터이다.

다람쥐의 양물은 강한 양기(陽氣)의 표상이다. 태양(太陽)은 말 그대로 양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양기와 양기의 대결이었을까? 표층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심층은 다르다. 양물 화살을 맞은 태양은 달이 된다.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던 해가 본래는 달이었다는 뜻이다. 자연의 질서가 일그러져 해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활쏘기로 음양의 조화가 회복되어 일그러졌던 자연이 질서를 되찾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데게 신화에는 또 다른 신화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뼈는 생명 또는 재생의 상징이다. 뼈는 바위와 동일시되는 불변의 상징이기도 하다. 뼈는 쇠보다 강하다. 그러니 뼈로 화살을 만들어야 이글거리는 태양을 상대할 수 있겠다고 상상했을 법하다.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2015)에서 인류가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 거시사적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첫 단계에 해당하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을 관측하여 행동했다고 한다. 신화적 사유, 은유적 사유가 행동을 결정하는 시대였다. 폭염을, 여러 태양이 동시에 출현하는 천체의 이상으로 진단하고 활쏘기라는 위협적 주술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구지가(龜旨歌)’의 위협도 같은 사유에서 나온 집단행동이었다.

두 번째는 보편종교의 시대. “별은 거짓말을 한다. 별을 창조한 신이 우주의 모든 진리를 계시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러니 별 관측은 그만두고 성경을 읽어라!”처럼 실용적 권고를 한 시대라는 것이다. 이 권고에 따르자면 폭염을 초래하는 해의 운행은 신의 뜻이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엑소더스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아모리족에 대한 복수를 마칠 때까지 해와 달의 운행을 정지시켰다. 야훼를 향한 기도의 ‘말’로. 교회마다 폭염을 해결해 달라고 여전히 기도하는 이유다. 피리를 불어 달의 운행을 멈추게 한 월명사는 ‘도솔가’를 지어 신라 경덕왕 때의 이일병현(二日竝現) 사태를 해결했다. 그는 노래로 미륵불을 호출했다. 두 번째 시대는 화살의 주술이 안 먹히는 시대다. 위협 대신 간절한 기원의 말과 노래로 해의 이상을 치료했다.

다음은 인본주의의 시대, ‘인간이 신을 발명했다’고 여기는 시대다. 모든 진리의 원천은 인간이라고 자부했다. 과학혁명은 여기서 비롯된다. 인본주의와 손잡은 근대 과학은 폭염의 원인을 신의 분노가 아니라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1972년 6월 유엔인간환경회의가 열렸고, 온실가스(CO2) 감축을 위한 제네바(1994)·교토(1997)·파리(2015) 기후협약은 세 번째 시대가 주조한 화살이고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 화살은 얼음 화살이나 마찬가지고, 노래는 어떤 신도 호출할 힘이 없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멈출 생각이 없다면 폭염도 멈출 생각이 없다. 혼자 부채로 폭염과 맞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쓴다. “그리스도교가 인간은 신과 그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듯이, 데이터교는 인간의 뇌로는 새로운 마스터 알고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글로 대표되는 데이터 집적 시스템을 ‘데이터교’라고 비유한 것이다. 이것이 폭염과 더불어 살아야 할 현재고 미래다. 그렇다면 데이터교의 유일신 마스터 알고리즘은 폭염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리스도교가 최후의 심판을 예언했듯이 온난화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에게 데이터교도 부고장을 발부할까?

2018년 여름, 우리가 겪은 전 지구적 폭염은 신화적 상상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다. 메르겡의 전통(箭筒)은 비었고, 여호수아의 기도도 월명사의 노래도 말랐다. 인본주의 과학은 지구를 떠나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굴속의 타르바간이 되어야 하나?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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