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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대신 머리 맞댄 선수들 ‘집단지성의 힘’
24일(현지시간) 점심 식사를 마친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숙소인 루스텐버그 헌터스레스트 호텔 세미나실에 속속 모여들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 대비한 비디오 분석 미팅. 자율적인 소통을 위해 코칭스태프는 빠졌다.우루과이의 조별리그 3경기 영상 자료를 틀어놓고 대화가 시작됐다.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비디오를 보면서 주변 동료들과 우루과이를 어떻게 상대하고 공략하면 될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우루과이의 위협적 공격 장면이 나오면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우루과이 수비진의 약점이 보이면 어떻게 공략할지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미드필더는 박지성이, 수비는 맏형 이영표(알 힐랄)가 토론을 이끌었다. 박주영(AS모나코)처럼 소속팀 동료가 우루과이 대표팀에 있거나 유럽에서 뛰면서 맞붙어본 경험이 있는 경우 그 선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른바 ‘집단 지성’의 힘이다. 서로 정보... -
‘가상의 적’으로 구슬땀… 백업들에게 박수를
축구대표팀 정해성 코치가 훈련 도중 센터서클에 선수들을 불러세운다. 주전을 의미하는 조끼를 나눠준다. 가끔 의외의 선수가 테스트를 위해 조끼를 입기도 하지만 보통 주전은 바뀌지 않는다. 조끼를 받지 못한 선수들은 이어지는 실전훈련에서 가상 상대 역할을 맡는다.월드컵이란 무대에서 주연이 되지 못하는 비주전 선수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봤다. 소속팀에서는 다들 핵심 선수로 활약하는 그들이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주전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다. 그런데 대표팀 23명 중 6~7명은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도우미 역할만 하다 돌아가는 그들의 속마음은 결코 편치 않을 것이다.그러나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 본 선수들은 꿋꿋이 그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정성룡(성남)에게 주전을 내준 이운재(수원)는 “내겐 마지막 월드컵이다. 주전이 아니면 아닌 대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청... -
홍수환 챔프 등극 → 16강 달성 → 평창 유치… ‘더반의 행운’ 이어가길
‘운명의 땅’ 더반을 ‘약속의 땅’으로 만들자.1974년 홍수환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등극,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가지 스포츠 이슈를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아공 더반을 운명의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3일 오전 3시30분 더반 스타디움에서 나이지리아와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갈린다.20일 결전지 더반에 입성한 대표팀에 36년 전 홍수환의 투혼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홍수환은 74년 7월 더반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아널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3년 뒤 카라스키야를 꺾고 4전5기 신화로 WBA 주니어페더급 초대챔피언에 오르기 전의 일. 김기수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세계챔피언이 된 홍수환은 당시 생중계 화면을 통해 “엄마, 나 챔피언... -
‘영하 3도’ 이상한파 남아공 동계 월드컵?
남아공 동계 월드컵인가.월드컵이 한창인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이상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반구는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인데다 설악산 대청봉 높이인 해발 1753m의 고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6일 요하네스버그의 기온은 영하 3도까지 떨어졌다. 현지 자원봉사자는 “아무리 겨울이라도 이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진 않는다. 오늘이 최악의 날”이라고 말했다. 남아공에서 근 수십년 동안 측정된 최저 기온이 영하 6도라고 하니 보기 드문 한파인 것은 맞다. 남아공에는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다보니 집에 난방 시설을 갖추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꽤 된다. 그들에겐 이번 추위가 큰 위기다. 2007년 5월엔 영하로 떨어진 기온 때문에 집 안에 불을 피우고 자다가 화재로 17명이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기자단 숙소인 돈 스위트 호텔에도 불을 피우고 싶을 정도로 외풍이 강해 실내에서 점퍼를 입고 생활하고 있다. 다행인 점은 한국 선수단이 이런 추위에 대비해 비행기 오버차지를 감수하고... -
“4년 뒤가 더 기대되는 유쾌한 도전”
겁없는 세대의 유쾌한 도전이 시작됐다.남아공월드컵 첫 경기 그리스전을 2-0으로 승리한 후 대한축구협회 이원재 홍보부장은 “우리 선수들이 월드컵인데도 떨지 않는다. 예전과 정말 많이 달라졌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2006년 월드컵 때만 해도 첫 경기 직전에는 건드리면 폭발할 것처럼 몸이 굳어 있었다”고 말했다. 허정무 감독은 “유쾌한 도전을 하겠다”고 이번 월드컵 모토를 밝히면서 과거 선수로 월드컵에 나섰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강팀과 붙는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해서 스스로 무너진 경기가 많았다”고 했다. ‘유쾌한 도전’엔 그런 과오를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대표 선수들은 허 감독의 뜻을 잘 이해한 듯하다.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동료들에게 월드컵도 많은 축구 게임 중 하나라고 편하게 생각하자고 독려했다. 그리스전을 앞둔 선수들은 동료와 농담을 나누고, 어떻게 상대와 싸울지 대화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그라운드로 나섰다.이런 분... -
검은 인류의 붉은 열정
절간 같은 루스텐버그 베이스캠프를 떠나 그리스전이 열리는 포트엘리자베스에 오니 곳곳에서 뜨거운 월드컵 열기를 느낄 수 있다.11일 대표팀 훈련장인 겔반데일 경기장에서는 한국 기자들이 1000여명의 환영인파에 둘러싸여 리오넬 메시 못지않은 대환영을 받았다. 남아공에선 안전을 이유로 기자들이 대형버스를 빌려 함께 타고 다니는데 경기장에 들어선 취재진을 한국 대표팀으로 오해한 것이다. 길거리마다 기자들을 선수로 여긴 주민들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부부젤라를 불며 환영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월드컵에 취해 있는 이들은 모두 흑인들이다. 현지 가이드 말에 따르면 백인들은 럭비나 크리켓에 미친듯 열광하지만 축구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백인은 럭비, 흑인은 축구로 뿌리깊게 자리잡은 고정관념 때문이다. 거리에서 만난 백인들은 “월드컵이 잘 되길 바란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자국 대표팀 선수 이름은 한 명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반면 축구를 사랑하는 흑인들은 경제적... -
아르헨 마음은 이미 16강 너머에
대표팀 훈련이 없던 10일 오전(한국시간)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프리토리아 대학교를 찾았다. 프리토리아는 한국 대표팀의 베이스캠프인 루스텐버그와 인접해 있어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아르헨티나 대표팀 취재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날은 비공개 훈련이라 안에서 출입을 허락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다.훈련장 앞에는 우승후보답게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일본, 태국 등 각국에서 온 취재진 200여명이 몰려 붐비고 있었다. 외신기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한국 훈련장과는 사뭇 달랐다. 하늘색 줄무늬의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은 극성팬들도 찾아와 응원가를 열창하며 분위기를 띄웠다.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훈련의 마지막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과 동료들이 일렬횡대로 서 있는 골문을 향해 주전들이 중거리슛을 쏘며 시시덕거리는 등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막바지 훈련을 막 끝낸 뒤였고, 리오넬 메시나 카를로스 테베스 등 주전들은 이미 훈련장을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