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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양준혁과 이만수의 다른 선택
양준혁이 훈련용 유니폼을 갈아입고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2010년 9월19일 오후 1시45분이었다. 파란색 유니폼이었다. 양준혁이 자신의 몸 속에 흐른다는 피 색깔과 같은 색이었다.3루쪽 더그아웃 앞에 앉았다. 스트레칭이 시작됐다.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는 첫 걸음이었다. 몸을 풀기 시작한 양준혁 앞에 삼성 김평호 코치가 다가왔다. 양준혁이 트위터를 통해 ‘야구에 대해서 많이 알려 준 최고의 코치 중 한 명’이라고 ‘트친소’를 했던 김 코치였다. 김 코치는 농부터 걸었다. “SK 후배들한테 가서 라이트(우익수쪽)로 치면 다 죽었다고 전해줘라”라며 웃었다. 양준혁이 웃으며 답했다. “코치님, 제 실력을 못믿능교”. 김 코치가 답한다. “못 믿지”. 옆에서 몸을 풀던 진갑용이 한 수 또 거든다. “오늘 (선발) (차)우찬이쟤. 그럼 그쪽으로 마이 날라가겠네.” 양준혁이 “내가 다 잡을기다”라며 또 웃었다.또 낚시 얘기가 나왔다. 김 코치는 양준혁에게 “니가 낚... -
(2) 2인자 양준혁
팀을 위해 모든 걸 버린 2인자 양준혁19일 대구구장의 주인공은 삼성도 SK도 아니었다. 양준혁이었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단 한 명이 주인공이었던 적은 7년 전 이었던 2003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도 삼성의 한 선수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은 일본으로 떠난 이승엽이었다. 그때 경기의 모든 관심은 승패가 아니라 이승엽의 홈런 여부에만 쏠려 있었다. 2010년 9월19일. 이날 경기는 승패가 무척 중요했음에도 - 정규시즌 1위 향방을 가릴 수 있는 - 관심은 양준혁에게 몰려 있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하던 삼성의 한 관계자는 “위에서는 ‘공정사회’, ‘공정사회’ 하지만, 밑에서는 온통 불공정 사회다”라고 푸념했다. 야구 경기에서 웬 공정, 불공정. 이해할만 했다. 삼성 관계자는 양준혁 은퇴경기의 표 청탁 때문에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 관계자는 “대구에서 자기가 권력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은 모조리 표를 요구했다”... -
(1) 파란 피의 전설, 양준혁의 2318안타 + 1
2010년 9월 19일. 낮 12시. 대구구장은 언제나처럼, 뜨거웠다. 추석이 코앞이었지만 대구의 날씨는 여전했다. 아니, 어쩌면 날씨 때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대구구장 앞은 인파로 가득했다.별명으로 성 뒤에 ‘신(神)’이 붙었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양신 양준혁의 마지막을 보기 위한 인파였다. 몇몇은 아예 출입구에 텐트를 쳐 놓고 있었다. 하루가 아니라 이틀을 샜다고 했다.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이틀을 기다려주는 팬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양준혁은 행복한 사나이였다.구장은 아직 한적했다. 양준혁은 아직 야구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야구장을 고르던 구장 직원은 “밖에 보셨심니꺼”라고 물어왔다. “이틀 전부터 저랬심더. 자리 두고 싸움도 했다 아입니꺼”라고 했다. 직원의 한숨이 이어졌다. “행님이라 이 정도인거 아니겠심꺼”.삼성 양준혁. 1969년 5월26일 생. 대한민국 프로야구 모든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였다. 2135경기 출전, 23... -
굿바이 양신! ‘만세 홈런’ 잊지 않을게요
양준혁의 마지막 타석은 그가 항상 그리던 꿈이었다. 9회 선두타자 양준혁은 송은범을 상대로 2루 땅볼을 때린 뒤 선수 시절 언제나 그랬듯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양준혁의 프로야구는 끝났지만 양준혁의 전력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행복했다.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쳤다. 프로야구 사상 가장 행복한 은퇴식이었다. 일본에서 은퇴식을 치러야 했던 삼성 선동열 감독도, 삼성에서 결국 은퇴 경기를 하지 못했던 SK 이만수 코치도 양준혁의 은퇴 경기를 부러워했다.양준혁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던 팬들은 19일 삼성-SK전이 열리기 이틀 전부터 대구구장 출입구 앞에 텐트를 치고 기다렸다. 암표가 등장했고, 6000원짜리 표가 6만원이라는 설이 돌았다.오후 1시20분. 양준혁이 구장에 나타났다. “오늘 경기에 집중하려고 어젯밤에는 트위터도 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이날 양준혁의 모든 발걸음은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
양준혁 은퇴 고별사 전문
양준혁이 2010년 9월 19일 삼성-SK전을 끝으로 은퇴했다. 양준혁은 경기가 끝난 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화려한 은퇴식을 치렀다.양준혁은 은퇴식 도중 아버지 양철식씨와 포옹을 하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더니 결국 은퇴 고별사를 읽으며 눈물을 쏟았다. 때마침 경기 끝난 뒤 내린 비와 함께 양준혁의 얼굴은 눈물과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됐다.다음은 양준혁이 목이 멘 채 낭독한 고별사 전문여러분! 야구를 사랑하시는 모든 야구팬 여러분! 저는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 입니다. 감사합니다.2010년 9월19일 바로 오늘까지 저 야구선수 양준혁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저는 야구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구선수로서 참 행복했습니다. 물론 모든 스포츠에서 그렇듯이 선수로서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힘들었던 순간들도 제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습니다.많은 분들이 더 뛰어야 하지 않냐고, 또 더 뛰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셨습니다.저 역시 현역... -
굿바이 10번, 행복한 양준혁
양준혁의 마지막 타석은 그가 항상 그리던 꿈이었다. 9회 선두타자 양준혁은 송은범을 상대로 2루 땅볼을 때린 뒤, 선수 시절 언제나 그랬듯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양준혁의 프로야구는 끝났지만 양준혁의 전력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행복했다.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쳤다. 프로야구 사상 가장 행복한 은퇴식이었다. 일본에서 은퇴식을 치러야 했던 삼성 선동열 감독도, 삼성에서 결국 은퇴경기를 하지 못했던 SK 이만수 코치도 양준혁의 은퇴 경기를 부러워했다.양준혁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던 팬들은 삼성-SK전이 열리기 이틀 전부터 대구구장 출입구 앞에 텐트를 치고 기다렸다. 암표가 등장했고, 6000원짜리 표가 6만원이라는 설이 돌았다.오후 1시20분. 양준혁이 구장에 나타났다. “오늘 경기에 집중하려고 어제 밤에는 트위터도 하지 않았다”며 웃었다.이날 양준혁의 모든 발걸음은 마지막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양준혁은 “지난 광주 경기도 마... -
양준혁에게 최고 피칭 선물한 SK 김광현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중 하나인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은퇴식을 마친 뒤 상대 투수를 향해 감사의 말을 남겼다. “모든 공을 최고의 직구로 승부해 줘서 고맙다”라고.SK 김광현도 야구장을 떠나는 대선배 양준혁(41·삼성)에게 최고의 선물을 했다. 전심전력의 투구. 자신이 가진 최고의 투구로 양준혁을 상대함으로써 양준혁이 정말 최고의 타자였음을 인정했다.양준혁의 은퇴경기가 열린 19일 대구구장. 삼성-SK전을 앞두고 양준혁에게 경기 출전 소감을 물었다. 양준혁은 “솔직히 김광현에게 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양준혁은 이날 경기 전까지 2007년 김광현이 데뷔한 이후 14타수 2안타에 그쳤다. 2안타 중 1개는 홈런이었다. 양준혁은 “그게 광현이가 데뷔하던 날 때린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광현은 프로야구 데뷔전인 2007년 4월10일 양준혁에게 홈런을 얻어맞았다. 김광현의 프로데뷔 첫 피홈런이었다.하지만 양준혁은 “내 야구 철학은 쉽게 아웃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 -
‘양신’, ‘헐크’를 만나다…대구 두 전설의 만남
19일 대구구장. 은퇴경기를 앞둔 삼성 양준혁(41)은 마지막 타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전성기 타격 폼 그대로였다. 스윙을 한 두 팔은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팬들은 양준혁의 타구가 담장을 넘을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이날 양준혁은 타격훈련에서 7개의 타구를 담장 너머로 날렸다. 배팅볼을 던진 김정수 매니저는 “요 근래 어떤 때 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양준혁도 “오늘 잘 맞는다”며 어깨를 으쓱였다.그때였다. 대구구장 오른쪽 외야 출입구가 열렸다. SK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루쪽 내야 일부를 차지한 SK 팬들이 소리 높여 “SK”를 외쳤다.그리고 잠시 후 1루쪽 삼성 팬들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삼성 팬의 영원한 ‘행님’, 이만수 SK 수석코치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만수”를 외치는 팬들의 성원에 이 코치는 손을 들어 답했다. 이 코치도 알고 있었다. 이날은 자신의 뒤를 이은 후배 양준혁의 은퇴 경기였다. 정작 자신은 해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