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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반짝이다 너무 일찍 스러진 한국 최초의 ‘여성 올림피언’ 박봉식
“영국 런던에서 열릴 세계 올림픽을 목표로 조선의 운동계는 일즉이 없던 맹렬한 활기를 띠어 출중한 선수가 수없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로 서울 이화여자중학교 5년 박봉식양(19)은 원반던지기에 37m8이라는 신기록을 내었다 한다.” 1948년 4월28일자 경향신문은 이화여중 5학년(현재의 고2) 박봉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넘는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다고 전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처녀의사 유관순양을 길러낸 이화여자중학의 또 하나의 보배이며 조선 체육의 자랑인 동교 5학년생 박봉식양”으로 소개하고 “박양의 올림픽 파견 문제는 조선 여성 체육 발전의 앞날을 위하여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2년여 짧은 경력에도 그는 출중한 성적으로 ‘조선 체육의 자랑’이 되어 있었다. 박봉식은 그해 7월29일 개막한 제14회 런던 올림픽에 한국 대표 52명 중 유일한 여자선수로 출전했다. 59개 참가국 중 33개국 여자선수 390명 가운데 가장 ... -
온 국민이 함께한 대장정…찬란했던 ‘런던의 꿈’
1948년 6월21일 아침 7시반,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 민재호 아나운서는 긴 밤을 그냥 밝히다시피 잠 못 이루고 흥분과 긴장된 마음으로 서울역에 나갔다.제14회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68명(임원 11, 지도자 5, 선수 52)의 대표단은 이날 오전 8시 특별열차 ‘해방자’호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서울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선수단과 별도로 올림픽 현장으로 떠나기로 돼 있었다가 극적으로 대표단에 포함돼 한국 최초의 올림픽 취재진으로 이름을 남긴 민재호는 훗날 ‘런든 올림픽 기행’(1949)에서 “올림픽 대표단이 만리붕정에 소리치고 오르다니 이것은 너무나 찬란한 꿈 아닌 꿈이었다”고 적었다. 일제에 억눌렸던 우리 민족이 태극기를 들고 당당히 올림픽에 나간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새 역사였다.정부 수립 이전인 1947년 6월,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 속에 극적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한 조선은 국내 최초의 스포츠 복권인 올림픽 후원권 발... -
1948년 런던 올림픽을 향한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
‘福神(복신)이 오는 날, 올림픽후원권 상금 추첨은 4월15일.’1948년 3월14일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짧은 기사는 런던 올림픽 후원권 추첨일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금년 여름 영국 런던에서 개최하는 올림픽 대회에 우리 선수를 파견하고자 그 경비를 얻기 위하여 (중략) 행운의 1등 상금 100만원의 추첨은 4월15일에 시행하리라 하며 (중략) 일반의 많은 협력을 바라고 있다 한다.”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7월29일~8월14일)은 대한민국이 광복 이후 태극기를 들고 참가한 최초의 하계 올림픽이다. 194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 승인을 받아 런던 올림픽에 나가게 된 것을 국가적 경사로 여기며 기뻐한 국민들은 복권 구매로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한국 최초의 스포츠복권인 런던 올림픽 후원권은 1장 100원으로 140만장 발행됐다. 임시 결성된 올림픽후원회는 발매액 1억2600만원 가운데 상금, 경비 등을 제외하고 ... -
“경기로 투쟁심 고취” 여운형은 타고난 ‘스포츠맨’
조선체육회 등 각 종목 임원 활동정부 수립 전, IOC 가입에 공헌도조선중앙일보에 첫 스포츠난 개설손기정 가슴 일장기 말살 보도 주도“경기는 남보다 이기려는, 즉 투쟁심을 양성하여 냅니다. ‘남에게 져라. 때리거든 맞어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하는 이런 놈에 철학이 어대 다시 있겠소. 오직 망칠 조선만 있는 철학입니다.”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로서, 광복 후에는 조국의 건국에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1886~1947)은 조선축구협회(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던 1935년 2월 중국 상하이로 원정을 떠나는 평양축구단 환송 기념 강연회에서 “운동으로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만들고, 경기를 통해 투쟁심을 길러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광복 직전 건국동맹을 결성해 군사조직을 준비하면서 둘째 아들의 친구 손기정을 통해 경기 주안의 조병창 무기 책임자를 설득해 무기를 획득하려던 시도와도 상통하는 ‘투쟁심’이다.민족지도자 여운형은 타고난 스포츠맨이요,... -
‘일장기 말살 의거’ 일으킨 독립운동가 이 땅에 스포츠 저널리즘의 문을 열다
“조선에서 다디단 듯하고도 쓰디쓴 직업이 있다면 이는 곧 신문기자일 것이며, 남보기에 쉬운 듯하고도 그 실은 어렵고, 또 싱거운 듯하면서 맵디매운 것은 그중에도 운동기자일 것이다.”일제강점기인 1933년 봄, 당시 최고의 체육기자로 명성이 높았던 ‘파하(波荷)’ 이길용(1899~?·사진)은 월간지에 기고한 ‘운동기자열전’ 앞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식민 치하에서 체육을 통해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던 저널리스트의 책임감, 사명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싱거운 듯 맵디매운 직업’이란 말은 3년 뒤 닥치게 되는 그의 운명을 예견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길용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4살 조선 청년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고도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을 통탄히 여기고, 신문 보도에 그의 가슴에 달렸던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장기 말살 의거 기자’다. 손기정이 우승한 지 보름여 지난 8월25일자 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시상... -
‘보물’ 청동 투구…진짜 보물은 손기정의 ‘정신’
일제강점기인 1936년 8월9일, 식민지 조선 청년 손기정(1912~2002)은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신기록으로 우승하고도 시상식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본국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손기정은 가슴의 일장기를 월계수 화분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 기념공원에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월계관을 쓴 채 당당히 고개를 든 ‘대한민국 청년’ 손기정을 만날 수 있다. 두 손에 마라톤 우승 부상품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든 그의 동상은 국가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다.세계를 상대로 한민족 최초의 승리기록을 쓴 손기정은 단순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다. 일본인이 못한 세계 제패를 조선인이 이루었다는 자긍심으로 민족혼이 꿈틀댔고,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슬픈 현실을 올림픽의 꽃 마라톤 우승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 이후 지도자와 ... -
‘보스턴 마라톤에 태극기 휘날리며’ 서윤복의 레이스 정신은 계속된다
1947년 4월22일자 경향신문 2면에 실린 칼럼 ‘여적’은 서윤복(1923~2017)이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쾌거를 칭찬하고 있다.“그 정신력, 체력이 배급미와 밀밥으로 길러낸 것을 육식을 하는 구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세게 먹고 잘 삭여라, 풀밥이나마’라는 비장한 창가가 한때 있었더니라. 세게 먹고 잘 삭일 밀밥, 보리밥도 많지는 않다마는 우리는 마라손 왕을 둘이나 가진 그런 민족이다!”사흘 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25분3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대회 첫 아시아인 챔피언이 된 서윤복의 쾌거는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경향신문은 이날 이승만 박사의 귀국 소식보다 앞서 사설을 1면 톱으로 올리고 “일제의 질곡하에서 억압을 받은 스포츠계의 피눈물 어린 노력”을 강조한 뒤 “고국 삼천만 동포는 지금 최대의 찬사를 그들에게 보내어 아까울 바를 모른다”고 찬사했다.1947년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1년 전이다.... -
스포츠 문화재로 첫 등재 ‘엄복동의 자전거’…부르는 게 값
일제강점기에 일본 선수들을 압도하는 탁월한 경기력으로 민족의 울분을 달래준 ‘자전차왕’ 엄복동(1892~1951)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스타다. “엄복동군의 장쾌한 경주, 미증유의 성황” “맹렬한 용기를 내며 꿩을 쫓는 매의 형세로 달려서, 선두에 이르러는 맹호같이 소리를 지르고…” 등 1920년대 일간지에 실린 표현은 현재 스포츠 영웅을 미화하는 수준을 능가한다.경주 입장료 30전(현재 약 5000원)을 지불하며 수만명씩 몰려들고 그의 사진 카드를 사 모았던 팬들의 열성, 선수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자전거 산업 관련 단체들에서 요즘의 팬덤 현상, 스포츠 산업 및 마케팅의 시초를 엿보게 된다.엄복동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1913년 이후 15년 이상 동안 변함없는 경기력을 발휘하며 일본 선수들을 꺾어 대중에게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주는 대리만족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자전차왕 엄복동>은 고증과 팩트 중심의 스토리를 소홀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