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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8
싸울 것인가, 대화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첫 영수회담을 마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제 결심해야 한다. 두 사람은 계속 싸울 수도 있고, 대화할 수도 있다. 싸우고 싶으면 싸울 이유를, 대화하고 싶으면 대화할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내 싸우거나 대화할 수 있다. 가령, 이견이 없는 의대 증원, 국민연금개혁 문제에서도 차이를 찾아내 대립할 수 있다. 이견이 있는 채 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25만원 지원금 문제를 두고도 합의 가능한 점을 찾아 타협할 수 있다. 정치란 구조적 제약을 넘는, 인간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결과 대화 가운데 어느 한쪽을 강제하는 필연성, 불가피성 같은 것은 없다. 선택에 달린 문제다. 두 사람은 개인적 성향, 사회적 경험, 직업적 경력상 대화보다 대결에 더 친화적이다. 자신의 성취를 이끈 것이 사적 욕망이든 신념이든 자기 열정 하나만을 믿고 오늘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도 성... -
나쁜 소식
좋은 소식이 있다. 첫째, 22대 총선이 양당 경쟁에서 벗어나 다당 경쟁으로 치러지고 있다. 제3지대 정당의 폭발 덕이다. 둘째, 선거 정보가 풍부하다. 온·오프라인 미디어는 누가 문제행동을 하고 이상한 말을 했는지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전국·지역 상황, 정당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 공유된다. 셋째, 대립 구도가 분명하고 단순하다. 다당 경쟁에 정보홍수라고 해도 누구를 선택할지 걱정할 게 없다. 정권심판, 이·조(이재명·조국)심판 가운데 고르면 된다. 그게 싫다면, 양당 동시 심판도 있다. 넷째, 진보정치가 확산됐다. 진보세력이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고, 진보를 자처한 조국혁신당이 부상했다. 다당 경쟁, 풍부한 정보, 분명한 대립 구도, 진보 확산은 시민 선택지를 넓혀주면서도 선택을 수월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성숙한 민주주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나쁜 소식은 한국적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다당 경쟁은 양당질서의 한 현상이다... -
조국은 왜?
우리는 또 조국 앞에 서 있다. 그는 이제 막 정국을 뒤엎을 듯한 기세를 몰고 돌아왔다.시인 장석주는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고 했다. 대추 안에 태풍 몇개, 천둥 몇개, 벼락 몇개가 있다고 했다. 조국의 귀환도 마찬가지다. 그가 흙먼지를 날리며 돌아오기까지 두 개의 정부, 두 명의 인물, 두 개의 정당이 필요했다.조국 사태를 일으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무능했을지언정 무도하지는 않았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무능할 뿐 아니라, 무도하기까지 하다. 집권 이유였던 공정을 흉내도 내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조국을 불공정의 감옥에서 해방했다. 윤석열 정부의 불공정 때문에 불려 나온 한동훈은 이재명 공격에 최적화되었을 뿐, 국정을 변화시킬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 자신이 자녀 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불공정 문제를 갖고 있다. 조국이 한동훈에 비해 부족할 게 없다... -
이재명 사퇴를 권함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당 지도자로서 부적격이다.그는 경기도지사에서 당내 대선 경선 참여자로, 대선 후보자로, 대선 패배자로, 당대표로 자신의 지위가 변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자기 정체성이었던 기본소득을 포기한 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선거제를 약속하고, 그걸 뒤집고, 뒤집은 걸 다시 뒤집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하고는 포기를 포기했다가 이런 변심을 지지하지 않은 동료 의원을 공천 과정에서 보복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당대표 경쟁 후보가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공천 때 복수하는 당’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 앞에 있는지, 정세와 자기 입지의 유불리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 어제의 이재명은 오늘의 이재명이 아니고, 오늘의 이재명은 내일의 이재명이 아니다. 매일 변하는 남자를 사랑하기는 어렵다.그의 말과 행동은 다음 말과 행동으로 뒤집힐 때까지만 유효한, ... -
명품백, 선거제, 그리고 리더십
두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실책을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지도자가 먼저 준연동형 선거제 발표로 악몽 탈출을 시도했다. 다른 지도자도 곧 현안에 관한 입장 표명을 계기로 수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들은 과연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멋진 무언가를 덜컥 받은 일로 궁지에 몰린 두 지도자,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왜 자꾸 사오세요” 하고 빈말로 끝냈다 해도 나중에 돌려주라고 했으면 하고 후회할 것이다. 대선 때 참모들이 제안한 ‘비례 확대(연동형) 선거제’ 공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받아도 “평생 꿈”이라거나 “내가 대통령 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따위의, 마음에도 없고 물리기도 어려운 말을 함부로 해서 여지를 없애버리지만 않았더라면 하고 자책할 것이다. 명품백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철석같던 연동형 선거제 약속을 뒤집어 여론이 악화됐을 때 뭔가를 해야 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
나쁜 정치
한동훈은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대통령의 젊은 측근이 어느 날 갑자기 집권당 대표이자 전권을 쥔 총선 사령탑이 되더니, 금세 유망한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벌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 경쟁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말에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목한다. 집권당 의원, 당원, 지지자들은 이 정치 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꺼이 그의 지도를 받아들인다. 정치 경험 없는 인물의 대선 직행은 실패한다는 불문율을 깬 윤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후배 검사를 통해 대선에 이은 또 다른 승리를 손에 쥐려는 꿈이다. ‘윤석열 성공 모델’, 재현될지 모른다.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하나는 보수층이 강조하는, ‘똑똑하다’ ‘젊다’라는 긍정적 특성이다. 보수층은 그런 장점이 윤 대통령 단점을 보완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러... -
세상에 속지 않는 법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세상이 불의하고, 알 수 없는 음모로 가득 찬 곳으로 보였다. 그런 세상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 속지 않는데 도움이 되리란 판단으로 전공도 정치학으로 선택했다. 기자를 한 이유의 하나도 속지 않을 직업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세상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속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기대는 정당을 처음 취재하기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닥쳤다. 세상 전부에 대한 의심과 부정의 정신으로 충만했던 그 시절 정당의 주장은 모두 당리당략에 따른 거짓말 같았다. 거짓말을 모아서 어떻게 기사를 쓰지? 진실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찾을 방법도 몰랐다.그래도 그때는 준거가 될 만한 이념이 있었고, 모두가 동의하는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거대한 사상이 떠난 자리에는 당면 현안과 쟁점, 고만고만한 사건의 조각만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진... -
사랑하기엔 멀고, 미워하기엔 가까운
장외집회, 농성, 삭발로 이어진 투쟁의 끝이 단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국회 마비. 하기야 일년 내내 굶주린 말이 이제 와서 힘차게 달리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조국의 법무장관 사퇴도 끝은 아니었다. 유재수 의혹, 하명 수사의혹이 꼬리를 문다. 한국은 2020년이라는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까? 2019년이 출구를 잃고 제자리를 맴돌 것만 같다. 한국 정치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느 새 사람에 대한 투자는 SOC 투자 증가로, 재벌개혁은 재벌 중심 성장으로, 양극화 해소는 경제활력 제고로 대체됐다. 평화에 정성을 쏟는데 국방비는 보수집권기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제는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했는지, 보통 사람의 삶이 나아졌는지 따지는 일도 별로 없다. 2019년 경제성장률 2% 달성이 모든 정책의 최종 목표치가 된 마당에 삶의 개선 운운하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국회를 마비시킨 보수야당의 행태가 말해주는 것처럼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북한이 모르는 북한의 힘
연말, 북한은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미국이 연말까지 북핵 문제 계산법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북한의 압박에 미국이 굴복하는 것 말이다. 미국은 결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은 연말이 다가올수록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단순히 협상 방법의 문제를 넘어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지난달 6일 북·미 실무협상 결렬 뒤 “역스러운 협상” 운운하며 공격적인 언사를 마다 않던 북한은 체제 안전, 대북 제재 해제를 비핵화하기도 전에 다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그게 뜻대로 될 리 없다. “기회의 창이 매일 조금씩 닫혀가고 있다”는 지난 8일 외무성 미국국장의 자못 여유로워 보이는 경고에는 조급성이 잔뜩 묻어난다.북한은 협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북한의 관점에서 실무협상은 포괄적 합의 압박을 받는 자리다. 포괄적 합의를 위해서는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북한은 이걸 싫어한다. 하지만 거부할 논리가 약하... -
너무 놀라지 마라
황교안과 유승민이 합칠 수도 있다. 그러나 태극기 부대, 자유한국당, 중도 보수층이 반문 연합의 깃발 아래 통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보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탄핵 이전의 시간에 머문 구보수와 탄핵의 강을 건넌 신보수는, 진보와 보수처럼 서로 다른 존재다. 강을 건넌 건지 아닌 건지, 도강 중인지 알 수 없는 한국당의 황교안, 바른미래당의 유승민·안철수·손학규는 다 다르다. 보수 통합을 한다 해도 통합에 참여하지 않는 보수세력이 반드시 나온다. 세상이 변했다. 보수의 다원성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연대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시민들도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끼는 광화문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분노를 터뜨렸다. 대규모 광화문 집회는 더 이상 없지만, 중도층은 그 집회를 통해 이미 살짝 선을 넘었다. 이들은 총선 앞두고 돌아올까?여권은 기존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성찰하지도 않고, 민심에 역행한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