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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 보수, 이대남 결집, 오미크론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 보수 유권자가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이다. 어떻게든 정권교체를 해야만 한다는 결기가 데이터의 흐름에서 여러 차례 읽힌다. 둘째, 이대남의 결집이 강력한 변수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이 두 가지로 거의 다 설명이 된다. 남은 한 달 동안 판을 뒤집을 수도 있는 새 변수는 오미크론이다. 단일화를 비롯해 막판 변수들이 작동하겠지만 게임 체인저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사적 보수와 결집한 이대남이라는 최대 변수 두 개를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정치인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다. 그의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준석이 옳으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옳으냐 그르냐는 도의적 기준이다. 이준석이 맞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맞냐 틀리냐는 전략적 기준이다.정권교체를 위해 필사적인 유권자는 윤석열 지지자의 3분의 1 정도로 보인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뭐든 하겠다는 사... -
세금을 대하는 대선 후보들의 자세
세금은 앞으로 한국사회 최고의 갈등 요인이 될 것이고, 세금을 둘러싼 정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다. 유럽에서 이미 수십 년간 경험한 바 있는데, 우리의 갈등 양상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이라 쓰고 세금이라 읽어버렸으니, 가뜩이나 예정된 갈등이었던 세금 전쟁의 판은 더 커졌다. 전선은 둘이다. 단기적으로는 계층, 중장기적으로는 세대.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북유럽 같은 고부담·고복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중부담·중복지 사회가 우리의 목표라고 가정해보자. ‘얼마’가 필요할까.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은 12.2%로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에서 네 번째에 머물고 있다. OECD 평균이 20%이고 가장 많이 쓰는 나라들은 30%까지도 쓰고 있는데, 중부담·중복지를 하려면 평균 수준인 20%는 되어야 할 테고, 지금보다 8%포... -
대선 구도 중간 점검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이후 대선판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윤석열 후보는 단숨에 10%포인트 정도의 격차로 그때까지 아슬아슬한 1위를 유지하던 이재명 후보를 단숨에 따돌렸다. 하지만 선대위 구성의 난항이 길어지고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다시 이재명 후보와 동률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전격적인 울산 회동과 김종인 박사 영입까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게 한 달 안에 벌어진 일이다. 무슨 일인가. 지지율 변동의 내막을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윤 후보의 10%포인트 상승부터 보자. 이 시기에 지역별로 윤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상승했다. 집값 상승과 종부세 납부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격차가 커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이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이 후보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지면 대선 승리가 멀어진다는 점, 그리고 경기도가 본인의 정치적 텃밭임을 감안할 때 이 두 지역이 특히 뼈아프다.... -
약탈 정치라는 서사
지난 5일 선출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수락 연설에서 가장 눈길을 끈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약탈’이었다. 원문을 보자.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폭등은 ‘재산 약탈’입니다. 악성 포퓰리즘은 ‘세금 약탈’입니다. 1000조가 넘는 국가채무는 ‘미래 약탈’입니다.” 연설의 결론은 “ ‘약탈의 대한민국’에서 ‘공정의 대한민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연설에서 약탈이라는 단어는 여덟 번이나 등장했다. 약탈은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인 것으로 보인다. 6월29일 출마선언에서도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고, 최근에는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패밀리의 국민 약탈”을 막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약탈이라는 단어는 우연히 쓰인 것이 아닐 터이다. ‘약탈’이라고 하면 한밤중에 화적 떼가 말을 타고 나타나 마을에 불을 지르고 식량을 빼앗아가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현대 정치에서도 ‘약탈 정치(politi... -
역사 단계, 갈림길, 그리고 퇴마정치
19세기 사회사상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역사 인식을 꼽으라면 사회진화론을 들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고, 이 길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으며, 서로 다른 사회들은 그 정해진 길을 빨리 가느냐 늦게 가느냐의 속도 차이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이다. 모든 사회는 정해진 단계들을 거쳐 봉건제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자본론>의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독일의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조만간 독일도 정해진 길을 따라 영국과 똑같아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단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정해진 단계를 통해 정해진 길을 간다는 사고방식은 마르크스 말고도 폭넓게 공유되어 있었다. 오귀스트 콩트는 1822년에 ‘인류 진화의 3단계 법칙’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 -
아프간 철수와 첨예해진 질문들
카불 공항을 이륙하는 미군기에 사람이 매달렸다 추락하는 참혹한 장면은 2001년 9·11 테러 때 쌍둥이 빌딩에서 사람이 추락하던 장면과 겹쳐지면서 소위 ‘9·11 시대’의 시작과 끝이 이리도 잔인한 수미일관을 이루는지 몸서리를 치게 했다. 하지만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결정한 것이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협상을 거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실행에 옮긴 것이어서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비록 철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오점을 남기기는 했으나 미국의 오랜 전략적 고민의 결과이다. 20년 만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 정권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착잡하다. 일단은 탈레반이 과연 약속대로 종교적 극단주의를 강요하지 않고 여성을 비롯해 인권을 보장할 것인지 여부를 지켜보겠다 했지만, 이미 자행되고 있는 인권 유린에서 보듯이 이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국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앞장서서 탈레반 정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나라는... -
밀턴 프리드먼 ‘상경기’
“이론적으로는 이론과 현실은 같은 거야. 아, 물론 현실적으로는 다르지.” 이론과 현실의 차이에 대한 유명한 농담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이미 15년 전에 94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2021년 한국에서 뜬금없는 고생을 하고 있다. 그것도 양쪽에서. 일단 한쪽부터 보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부친이 선물한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읽고 감명을 받았고,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신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의 1장은 ‘시장의 힘’이고 2장은 ‘규제의 폭압’이다. 편의점 최저임금이나 부동산, 대기업 구내식당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규제의 폭압’으로 읽혔을 것이고, 그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승화되었을 법도 하다. ‘120시간 노동’이나 ‘부정식품’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그는 국민들을 주당 ... -
MZ세대 권력의 본질
미국 밀레니얼의 42%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말하지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밀레니얼은 16%밖에 없다. 기성세대에게는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에 있는 케이토 연구소의 여론조사 책임자인 에밀리 에킨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풍요의 화수분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150개의 케이블 채널과 성적 정체성을 분류하는 50가지 방법, 그리고 31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에 익숙하다. 그들이 어떻게 두 개의 정당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기성세대의 눈에 앞뒤가 맞지 않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태도를 분류하는 축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이대남은 정치적으로 보수화했다고들 한다. 가로축에 연령, 세로축에 보수성향을 놓고 그림을 그리면 U자 형태가 나타난다. 20대는 60대와 생각이 같은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고령층의 보수는 “ ‘니들’이 공산주의를 겪어봤어? 니들이 가난을 알아?”라는 삶의 경험에 그 뿌리가 있다. 이대남... -
공정의 정치학
공정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다고들 한다. 이재명의 ‘성장과 공정’,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 유승민의 ‘공정 소득’에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정한 경쟁’에 이르기까지 공정 담론이 넘쳐난다. 이제 공정의 뜻을 한번 되새겨볼 때가 되었다.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이지만 행동경제학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 공로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특히 그는 공정이라는 관념이 시장에서의 경쟁을 어떻게 촉진하거나 왜곡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는 ‘이준석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 말이 될 수도 있다. 첫째, 준거의 정치학이다. 공정한지 아닌지는 비교의 기준, 즉 준거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86세대는 사회를 지배자와 피지배자, 독재자와 민중, 제국과 식민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인식했다. 당연히 그들의 준거는 지배자, 독재자, 제국, 자본가가 부당하게 취한 것을 빼앗아 피지배자, 민중, 식민지,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 -
기본소득은 의제인가, 복병인가
지난 몇 년간 기본소득은 정치권에서 조금씩 그 자리를 넓혀왔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두에 서있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한때 기본소득을 띄웠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복지’ 정책이나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돌봄사회’ 정책도 모두 기본소득이라는 유혹으로부터 파생되었거나 이 지사가 선점한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 서있다. 이 모든 제안들의 공통점은 현금성 복지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은 물론 코로나19라는 배경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은 다른 현금성 복지라고 해서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그러면 기본소득은 다가오는 대선의 핵심 의제가 될 수 있을까. 각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양강 후보 간의 맞대결이 본격화되면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변수들이 등장할 것이다. 첫째, 주류 경제학의 반격이다. 경제학은 사회과학 내부에서 가장 많은 학자 집단이 속해있고, 그 많은 수의 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핵심 원칙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