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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와 유치원
다음이 아고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한다. 다음 뉴스는 사이트에 “그동안 ‘대한민국 제1의 여론광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이제 15년간의 소임을 마치고 물러납니다”라는 안내글을 올렸다. 여론광장의 큰 축이던 게시판들은 ‘게시물 백업’이라는 최후의 서비스와 함께 사라진다. 아고라도,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네르바’도, 이젠 지나간 이름들로 남게 됐다. 싸이월드나 프리챌처럼 한 시절 사람들을 끌어모으다가 쇠락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적지 않지만 아고라의 소멸은 ‘빛이 바래기 마련인 추억’을 넘어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다.기자 초년병 때, PC통신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나우누리 아이디 @koje***는 무엇무엇이라고 지적했다”는 식으로 유저 반응이 기사에 인용되곤 했다. 신문들은 곳곳에서 이 새로운 여론 탐지기를 활용했다. 그 시절 그것이 어떻게 민심의 고른 잣대가 될 수 있었겠냐마는, 최소한 기자들이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두... -
맘들의 분노, 맘들을 향한 분노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아이들에게 써야 할 돈을 멋대로 빼내 물건을 사고, 월급도 수당도 마음대로 정해 보너스를 챙기고 아들딸에게까지 줬다. 엄마들이 충분히 분노할 일이다. 경기 김포에선 아이 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아동학대 보육교사로 지목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 아이만 귀한 줄 알고 헛소문에 휘둘려 ‘신상털기’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생각 없는 엄마들에 대한 분노가 쏟아졌다. ‘맘카페’는 온라인 적폐로 지목됐다. 엄마들의 분노, 엄마들을 향한 분노. 비난과 손가락질의 강도를 보면 후자가 훨씬 더 센 것 같다. 근래 여론의 바로미터처럼 돼버린 청와대 청원을 보면 사립유치원 비리를 뿌리 뽑고 처벌을 강화하라는 청원에는 8000여명, 아동학대로 오인받은 교사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달라는 청원에는 13만여명이 동의했다. 김포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한국의 엄마들은 패륜녀들, 일하지 않는 밥벌레, 애 낳은 게 벼슬인 줄 아는 사람들, 공존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 -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
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전까지 예멘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온 난민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예멘으로 간 사람이 28만명이니, 지금도 예멘에서 나온 난민보다 예멘이 받아들인 난민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예멘 난민 사태’는 사우디가 일으킨 일이다. 2011년 ‘예멘판 아랍의 봄’으로 장기집권 독재자를 몰아낸 뒤 집권한 압두라부 하디라는 인물이 당초 정치세력들 간 권력을 나눠갖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가 자기 정당에서까지 축출되고 결국 쫓겨날 판이 됐는데, 사우디가 하디를 편들어 전쟁을 시작했다. 건강이 나빠 정상적인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는 평가를 받던 사우디 새 국왕 살만이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
대통령이 할 일, 민주노총이 할 일
한낮의 기온은 40도 가까이 치솟고. 남쪽 바다는 아열대로 바뀌어가고. 추위도 더위도 불평등해서, 힘든 사람은 이 폭염을 더 힘들게 견뎌내야 하고. 여전히 거리엔 천막 하나 펼쳐 놓고 농성 중인 사람들이 남아 있고.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이 여름의 풍경들. 그래도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KTX 해고 승무원들 문제처럼 오래도록 끌어온 이슈들이 해결되는 걸 보면서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누군가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고,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미완의 승리이자 부족한 타협책일 터다. 그래도 그 고통에 사회가 공감했고, 지난한 세월의 마무리를 짓게 됐다는 건 말 못할 아픔 속에 거둬낸 성과다. 그 힘든 싸움을 해낸, 이겨낸 분들을 ‘피해자’라는 말로 표현하는 건 어쩐지 죄송스럽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쌍용차 문제도 있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이들은 5년만에 다시 분향소를 세우고 고통의 여름을 맞고 있다.노동 이슈는 1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반가운 소식들만 있는 ... -
밥값과 평화
대학시절의 어느 겨울, 한 달 동안 ‘알바’를 했던 회사가 있었다. 종일 서서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아 있기로는 좋은 회사였다. 4대보험에 가입시켜줬고,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야쿠르트와 초코파이를 줬다. 가끔씩 그 회사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것은 두 가지다. 눈이 많이 내린 날 출근하기 너무나 싫어 회사를 그만둘까 했던 기억, 그리고 국. 밥과 함께 나오는 그 국 말이다. 끼니 때마다 국물을 싹싹 퍼먹는 내게, 1cm 깊이로 퍼주는 국은 언제나 모자랐다. 낯선 분위기에서 쭈뼛거리느라고 밥 퍼주는 분에게 ‘국 더 달라’는 말도 못한 채 한 달 동안 점심을 먹었다.기숙사는 공짜였다. 앉은뱅이 탁자 하나에 텔레비전을 놓아둔 동료 방에 놀러가기도 했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대개들 지하철 요금을 아끼느라고 기숙사에 살았다. 당시의 최저임금이 얼마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았을 것은 확실하다. 다들 많이 일하고 적... -
남북의 시간은 같이 흐른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담담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서는 민족, 혈통, 핏줄이 훨씬 더 강조된 느낌이었다. 남북 정상의 산책과 회담과 만찬의 순간순간들을 담은 동영상들이 이렇게 인기를 끌다니. ‘정상회담 덕후’들이 곳곳에 생겨난 모양이다. “누군가 방명록에 사인하는 걸 실시간 생방으로 지켜볼게 될 줄이야”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정상회담은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다.민족의 운명, 공동번영, 자주통일. ‘민족’은 얼마나 무거운 말인가. 핏줄이나 혈통, 이런 것들이 강조하는 무언가를 생각하면 중압감이 든다. 나 개인을 넘어선,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무언가를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아진다. 민족은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무겁고 종종 짐스러우며 때론 극도로 폭력적이 되는 그런 것이다. 거기에 ‘주의’가 붙어 민족주의가 되고 의사, 열사의 이미... -
서울시장, 베이징 시장, 미세먼지
중국 베이징의 천지닝(陳吉寧) 시장은 지린성 태생으로 칭화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에서 1993년 생물화학과 환경시스템 분석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5세에 칭화대 환경공학부 교수가 됐다. 환경학자로 명성을 쌓았고, 2012년부터 칭화대 총장을 지냈다. 당시 49세, 명문으로 꼽히는 이 대학의 최연소 총장이었다. 그러다가 2015년 1월 환경보호부 부장(환경부 장관)이 됐다. 이때도 리커창 내각에서 가장 젊은 각료였다. 천지닝이 주력한 것은 중국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스모그와의 전쟁’이었다. 장관이 된 지 2년이 됐을 때 그는 이례적인 ‘자아비판’을 하면서 중국의 대기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했다. 베이징과 상하이와 항저우 등 대도시의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 숨을 못 쉬겠다는 아우성이 빗발치던 때였다. 그는 “죄의식을 느낀다, 나 자신을 비난하고 싶다”면서 20개 대도시 미세먼지 긴급대책과 지방정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대책을... -
내가 못 배운 페미니즘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가 소설처럼 쓴 글을 보면서 가슴에 와 박혔던 구절은 ‘아버지가 나빴다’ ‘어머니가 나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검찰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모든 게 아빠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착하고 예쁜 딸로 키워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불의도 참아내지 말라고, 그 어떠한 부당함에도 입 다물지 말라고,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가라고 가르쳐줬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다. 이 땅에서 여자를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불합리도 참아내지 말라고, 여성이라고 무시하거나 업수이 여기는 것은 더더욱 참아내서는 안된다고, 멱살을 휘어잡고 주먹을 휘둘러줘야 한다고 가르쳐줬어야 했다”고 썼다.그의 글을 읽고 비슷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동안 살면서 가족과 윗 세대와 학교에서 듣고 배운 것들과 못 배운 것들을 되... -
한상균만 잊는다면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민주노총이 새 지도부를 뽑은 그날 정부는 한상균을 그대로 가둬두는 길을 택했다. 새 출발을 하는 민주노총과 문재인 정부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였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세상의 흐름을 좇기를 거부하는 이익집단처럼 보일 때가 없지는 않았다.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노동친화적인’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고집하는 것처럼 행동하곤 했다. 모처럼 시동을 걸려고 하는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거부했고, 대통령이 초청해서 저녁을 먹자는데도 “이벤트성 만찬에 들러리 서기 싫다”며 거절했다. 그걸 놓고 말이 많았다. 청와대에선 섭섭했을 법도 하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두어 차례 개별 노조들과 노동자들을 불러서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유행하는 콩글리시 표현을 빌리면 ‘민주노총 패싱’이라 해도 될 듯한 상황이 벌어졌다.민주노총은 대통령의 밥상을 걷어찼다. 한상균 사면을 거부함으로써 대통령은 민주노총의... -
작년 이맘때
생각해 보면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어느 집 딸의 대학 불법입학으로부터 시작해 정권에 줄 댄 기업들, 청와대의 태반주사, 모두가 자기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태블릿PC, ‘사라진 7시간’의 실체가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섰던가. 모두가 공유했던 절박함과 동지애. 차마 탄핵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던 야당과 헌법재판소를 움직이고 결국 정권을 바꿀 때까지, 점점 더 많아지던 사람들. 페이스북을 쓰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과 매일 마주치게 된다. ‘추억 공유하기’라는 이름으로 몇 해 전 그날 올린 글들을 다시 보여주는 이 소셜미디어의 기능은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불편하다. 요즘엔 기분이 좀 이상하다. 지난해 12월의 사진이라며 띄워주는 거리 풍경, 스산한 겨울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도로를 메운 시민들 틈에서 아이들처럼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선 모습이 추억이 되어 돌아온다.극장 개봉 일정도 잡지 못한 독립영화,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