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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투약센터’는 필요악?
10만306명. 지난 4월부터 1년간 미국의 약물과다 사망자 수다. 10만명이 넘은 것은 처음이다. 뉴욕시에서만도 2000명 넘게 사망했다. 4시간마다 1명꼴이다. 합성약물 증가에 팬데믹까지 겹쳐 1년 새 30%가량 크게 증가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결국 2선 임기 한 달을 남겨두고 ‘감독보호하의 약물투약센터(Supervized Drug-Injection Site)’ 허가 사인을 했다. 맨해튼의 이스트할렘과 워싱턴하이츠 두 군데에 세워지며, 미국 도시 중 최초다. 훈련된 스태프의 감독하에 사용자들이 자신의 마약을 가져와 제공되는 새 주사기로 투약하는 식이다. 대기실을 지나면 독서실 분위기의 투약실에 과다복용 해독제 등이 준비되어 있고, 원하면 마약중독 치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화장실에 들어간 지 15분이 지나면 스태프가 체크하고 답이 없으면 강제로 문을 연다. 경찰에 잡힐 염려도 없다. 2018년부터 추진된 이 센터는 마약이 어차피 불법인 데다 연방정부의... -
‘착한’ 스테이크가 그립다
뉴욕이라면 스테이크이다. 베이글이나 피자, 치즈케이크 등도 유명하지만 오래 숙성시켜 감칠맛을 극대화한 드라이 에이지드(dry-aged) 스테이크야말로 뉴욕의 대표 음식이다. 좋은 고기 공급처나 숙성 기술, 굽는 법이 도제식으로 전수되기에 유명 스테이크집들은 다 아는 사이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착석해 메뉴판을 받아들고서야 가격을 알 수 있고 스테이크만 서빙하는 사람을 따로 두며 가격도 담합이라도 한 듯 같다. 인기 있는 립아이 스테이크는 팬데믹 전 오랫동안 59달러였는데, 작년 말 69달러가 되었다가 올해 다시 75달러로 올랐다. 27% 오른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모든 게 올랐다. 음식점은 양은 줄었는데 가격은 올랐고, 일손 부족으로 서비스도 안 좋아졌건만 전엔 팁을 15, 18, 20% 중에서 골랐다면 이젠 20, 22, 25%에서 선택하란다. 외식하기가 무섭다. 같은 비용으로 장바구니는 훌쩍 가벼워졌다. 2달러 정도였던 갤런당 기름값도 4달러가 넘었다.... -
퇴직 물결과 인력난에 ‘시름’
역시 오늘도 없다. 작년 팬데믹 시작 직후 품귀대란을 겪은 화장지가 올 10월 들어 다시 일인당 한 묶음으로 제한되더니 끝내 다시 동이 났다. 그러고 보면 비어 있는 매대가 여럿이다. 쇼핑 대목인 연말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국의 시름이 깊다. 의류사업을 하는 친구도 한숨이다. 재택근무로 수요가 줄어든 남성정장 대신 재빨리 마스크를 출시하며 위기를 모면했지만 또다시 위기란다. 석탄이 모자라 중국 공장이 돌아가지 않고, 이미 만들어 캘리포니아로 들여온 제품들은 하역할 인부가 없어 항만을 떠돌고 있다. 겨우 내려도 뉴욕으로 나를 트럭운전사가 없어 결국 가격을 올려준다는 상점들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최근 G20 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물류대란 해결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 회복회의’를 연 이유다. 미국 물류의 71%를 담당하는 트럭운송회사들은 인력 부족으로 난리다. 한 회사는 최소연봉 10만달러(약 1억1200만원) 보장에 1만5000달러(약 17... -
좁아진 세상, 넓어진 내 세계
일요일 오후, 뉴저지에 사는 친구 캐시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맨해튼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영화 페스티벌 표를 샀는데 심한 교통체증으로 가기 힘드니 대신 가줄 수 없겠냐는 전화였다. 가을을 맞아 맨해튼에는 메트갈라, 뉴욕패션위크 등 각종 행사가 2년 만에 재개되었는데, 아직 대중교통을 불안해하는 많은 사람이 차를 몰고 맨해튼에 오는 바람에 주말이면 코로나19 팬데믹 전보다도 교통체증이 더 심해지고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결국 표는 날리게 됐지만 일 년 반 동안 만나지 못한 캐시와 영상통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팬데믹 시대가 2년이 되어가며, 이젠 차로 다리만 건너면 되는 뉴저지 친구와의 거리와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의 거리 차가 모호해져 간다. 미국 퓨(Pew) 리서치센터의 최근 연구 ‘인터넷과 팬데믹’에 따르면 90%의 미국인들이 인터넷이 중요하거나 필수적이라고 답했고, 53%가 팬데믹 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아닌 지인들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답했다. 또 자신의 삶이 크... -
재개장 앞둔 부동산 풍경
팬데믹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뉴요커들의 얼굴을 만났다. 관광객이 사라지고 재택근무가 시작되며 근교에서 출근하는 160만명의 직장인들이 더 이상 맨해튼에 오지 않으면서 뉴요커들만 남았다. 물론 유명 휴양지인 햄프턴이나 어퍼 뉴욕에 따로 저택이 있는 부유층들은 이미 피난을 떠났다. 또 식당에서 서빙을 부업으로 하던 브로드웨이의 무용수나 뮤지션들도 식당과 재즈바 등이 동시에 문을 닫자 대부분 뉴욕을 떠났다. 재택근무가 늘고 거리 두기가 필요해지며 아이를 가진 많은 가족들이 도시의 좁은 주거공간을 벗어나 교외의 넓은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이는 낮은 모기지 이자율에 건축자재 부족으로 인한 주택공급난과 맞물리며 미국 전역의 주택가격 폭등을 일으켰다. 남부 텍사스 오스틴의 경우 집값이 40% 가까이 올랐다. 집이 나오면 수십개의 입찰이 붙고 순식간에 제시된 가격보다 훨씬 높게 팔려나갔다. 심지어 고칠 곳이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없이 사겠다는 조건도 비일비재했다. 정확히는 뉴욕시와... -
사람이 먼저다
팬데믹 후 처음으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갔다. 미리 온라인으로 시간 예약 후, 마스크를 쓰고 입장할 수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전시는 진보적 화가 앨리스 닐의 ‘사람이 먼저다(People Come First)’였다. 복도 맨 끝까지 긴 줄이 이어진 가운데 안내원들은 “기다려도 입장을 보장 못한다”고 계속 경고했다. 인물화에 신체뿐 아니라 영혼과 역사까지 관통해 담아온 뉴요커인 그녀는 주류 예술계에 끼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로 살다 74세가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나에게는 사람이 먼저”는 인권운동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둔 공산당원이었던 그녀가 한 말로, 질곡의 삶을 살며 그린 어려운 이의 초상화들은 팬데믹과 대선, 흑인인권운동 등 지금 미국 사회의 흐름과 맞닿아 울림을 준다. 진자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움직이면 반작용이 일어나듯,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등장으로 좌로 움직이던 미국 사회의 진자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최우단으로 치달으며 그간 억눌렸던 각종 ... -
신난 한국인으로 미국살기
2000년대 초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면 으레 처음 하는 질문은 정해져 있었다. 약간 경계하는 얼굴로 “노스 오어 사우스(North or South)?” 그리고 남한이라고 답하면 좀 안심한다. 한국전 배경의 최고 시청률 드라마 <매시>는 11년의 방영 뒤에도 끝없이 재방영되며 미국인들에게 나쁜 한국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한국전과 북한, 보신탕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이미지는 잘 변하지도, 남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미국인 특성상 꽤나 오래갔다. 교포 2세, 3세들은 한국과 거리를 두려 했다. 지금은 다르다. 작년 초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이라는 도발적인 말과 함께 4개 부문상을 휩쓸었다. 수상소감도 멋졌다. 다음날 독서클럽에 가니 온갖 나라 사람들이 나를 축하해줬고 결국 초콜릿을 한 상자 가져가 나눴다. BTS는 또 어떤가. 빌보드 5주 연속 1위에 오른 이 그룹은 재미한인들의 은인이자 대한민국 문화대사다. 나이 차이가 꽤 ... -
다시 ‘총잡이 무법자 시대’?
서부개척시대가 다시 오는 걸까. 지난주 미국 텍사스는 21세 이상은 누구나 면허나 훈련 없이도 권총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미 허가증 없이 소총을 공공장소에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 지 오래이고, 2015년부터는 주립대학 내에서도 총기 소지가 가능해진 상태에서 골수 지지자들조차 설마 되랴 싶던 데까지 실현된 셈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총기난사에 자주 쓰이는 반자동 소총 등 공격용 무기 소지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심지어 판사는 판결문에서 반자동 소총을 스위스 군용칼에 비교하며 ‘가정과 전투를 위한 다목적 총기’라고 묘사했다. 미 대법원은 10년 넘게 계류 중이던 ‘헌법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허가하는가’의 뉴욕주 분쟁을 전격 심의하기로 했다. 현재 9명 중 6명이 공화당 지명자로 구성된 대법원이 지난 4월 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총기폭력은 국제 망신”이라며 총기규제 대책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이 이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
첫 아시안 뉴욕시장 나올까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도시가 안 그렇겠느냐만, 특히 뉴욕은 현재 회복과 몰락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 팬데믹 동안 미국 전역의 집값이 끝모르고 오르는 가운데 유일하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은 떨어졌고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도심은 비어갔다. 그러던 뉴욕이 이제 겨우 백신 보급으로 소생의 숨을 쉬고 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7월1일부터 뉴욕을 완전히 정상화한다고 선언했다. 절반까지 허용하던 식당과 심야 바도 다 채우고 브로드웨이와 경기장도 모두 재개장한다. 재택근무자들은 다시 오피스로 출근하고, 심지어 무료백신을 맞혀준다며 관광객까지 유혹한다. 그런 가운데 시장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진짜 시장 선거는 11월이지만 6월22일 민주당 경선 당선자가 시장이 될 것이 거의 확정적이기에 사실상 6월이 결정의 달이다. 현재 후보는 13명으로 아시안인 앤드루 양, 흑인인 에릭 애덤스와 마야 와일리, 백인인 캐서린 가르시아, 스콧 스트링거, 숀 도너번 등이다. 최근까지 앤드루 양... -
호신용 페퍼스프레이
호신용 페퍼스프레이를 샀다. 아시안 혐오범죄의 홍수 속에 맨몸으로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져 고민 끝에 결국 뉴욕법에 따라 신분증을 보여주고 구입했다. 연습으로 뿌려봤다가 분사액이 내 얼굴에 덮여 눈물 콧물 흘리며 자괴감만 들었다. 뉴욕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주에 사는 아시안 친구들은 테이저건이나 권총에 보디캠까지 장착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안심이라며 정보교류 중이다. 작년 미국의 혐오범죄는 전체적으로 7% 줄었지만 아시안에 대해서만 150% 증가했다. 한 아시안 단체(SAH)에서 여러 언어로 제공하는 아시안 혐오범죄 대처훈련은 4월까지 모든 예약이 순식간에 완료됐다. 영어밖에 못하는 중국계 미국인 친구 에이미가 교수와의 첫 만남에서 “너 영어 잘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울었단 이야기나 서울대 출신으로 하버드 박사 후 유명회사에서 일하며 시민권도 받았지만 만년 ‘이등시민’ 느낌에 은퇴 후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지인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유미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