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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의 인질극
“빙하냐 인간이냐” “곰이냐 인간이냐”는 반문은 휴머니즘을 벗어나 생각하려는 이들마저 ‘시험’에 들게 한다이런 선택지에서 인간은 일종의 인질이다. 맞은편의 인질 또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불모로 한 휴머니스트 인질극을 보게 된다인간 세상서 ‘인간의 죽음’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담이 사과를 딴 세계와 따지 않은 세계처럼, 아주 다른 세계의 분기점이 거기 있다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프랑스에는 철학책이 ‘모닝빵처럼 팔렸다’고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런 책 가운데 하나인 푸코의 <말과 사물>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에 허덕대며 ‘꼭 이렇게 써야 하나?’ 투덜대게 하기도 했지만, <돈키호테>를 비롯한 다양한 저작들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나 근대 서구의 지식 전반을 꿰는 탁견으로 인해 감탄하게 하는 멋진 책이었다. 그 책은 어쩌면 지금 여러 영역에서 현행화되었다 해야 할 어떤 새로운 사고방식의 도래를 예언하며, 아직도 지속되고 ... -
우리 체르노빌의 늑대들은 원전을 지지하오
인간에게만 있는 게자연권이라면그게 어디 자연권이겠소인공권이라고 해야지자연권이 자연에 속하면문제는 만물의 영장이라며다른 생명체 자연권을부정할 때 생길 게요원전에 대한 우리 지지는우리를 지키려는차악의 선택이라 할게요어차피 지금은 모두가최악을 면하는 방법을고심할 극단적 상황이니그렇소, 미안하지만 우리 늑대들은 원전을 지지하오. 우리뿐 아니라 체르노빌에 사는 스라소니나 족제비도 그렇고, 소나무와 자작나무도 그럴 거요. 아니, 꼭 체르노빌에 사는 동식물만 그런 건 아닐 거요. 짐작하건대, 인간 아닌 동물이라면, 그리고 바닷속에 사는 참치와 고등어, 게들 또한 그럴 거요. 체르노빌이 중요한 건, 그걸 통해 우리가 비로소 그런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오. 그날, 체르노빌의 발전소에서 화염으로 터져 나온 그 사고가 우리에게 하나의 ‘사건’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소.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텅 빈 도시와 불과 ... -
세 개의 특이점 사이에서
“특이점이 온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이자 과학기술자이며 미래학자이기도 한 레이 커즈와일이 책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던 유명한 예언이다. ‘특이점’이란 급작스레 상태가 변하거나 불연속적 변화가 나타나는 점이다. ‘특이점이 온다’는 말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가 그처럼 급변하는 때가 온다는 말이니, 이때 특이점이란 ‘기술 특이점’이라 하겠다. 정말 이런 특이점이 올까? 모를 일이다. 예언을 떠받쳐주던 ‘무어의 법칙’이 2016년경 작동을 정지했지만, 새로운 기술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는 예상을 덧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와는 아주 다른 특이점이 이미 왔으며 다시 또 올 것이다. 기술 특이점이 아니라 기후 특이점이. 기후학자 윌 스테판과 요한 록스트롬은 1950년 이후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의 양이 꺾은선을 그리며 급상승했으며, 더불어 지표면의 온도와 해양산성화 정도, 열대우림의 파괴, 생물권 훼손에 따른 멸종의 속도 등이 모두... -
“모든 판사는 야해요”
법은 우리를 속박함에도 우리는 어디서나 규칙이나 법을 만든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법은 본질적으로 ‘나쁜 짓’에 대해 ‘하지 말라!’라는 명령문의 형식을 취한다. 이런 이중부정을 논리학에선 긍정이라고 가르치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것과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같지 않다. 그렇기에 법은 가능하면 없거나 적은 편이 좋다. 법이 많고 법이 전면에 드러나는 사회는 힘든 사회다. 가장 힘들고 안 좋은 사회는 준법이 강조되는 사회다. 법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란 말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법이 지키기 힘들거나,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을 납득하기 힘든 경우임을 뜻한다. 흔히 법이란 선하다고 믿는 덕목을 권장하려고 만들어진다고 믿지만, 칸트는 반대로 법을 지키는 게 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도덕이란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처럼 법에 무조건 준수해야 할 초월적 지위를 부여했지만, 사실 법을 지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첫째,... -
상식 이하의 실언과 상식 이상의 실언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지만, 철학을 하는 사람은 사실 그런 바람을 깨며 살고자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들 믿지만, 사실 우리는 많은 경우 생각 없이 산다. 상식 덕분이다. 상식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식이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동물이다. 가령 ‘숙련’이란 생각 없이 어떤 일을 잘할 수 있게 된 상태를 뜻한다. 영어를 잘한다 함은 하려는 말이 아무 생각 없이 영어로 튀어나옴을 뜻한다. 하나하나 집중하여 생각하며 못을 박는 사람은 숙련된 목수가 아니라 초보자다. 축구나 탁구도 그렇다. 상식이 있다 함은 이런저런 것을 보았을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앎이다. 준비된 답들의 집합이 상식이다. 준비된 답이 있으니 생각할 것도 없다. 이처럼 패턴화된 판단은 패턴화된 행동으로 이어진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정상적’ 행동을 하게 된다.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될 때, ... -
공감의 폭력
우리는 ‘공감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감이란 어떤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는 심리적 작용이다. 감정을 이입하는 작용인 만큼 공감은 대개 나와 유사한 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나와 유사한 대상들과 집단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한 필수적인 감각이고 능력이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공감은 대개 ‘약자’들, 피해자나 핍박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을 뜻한다. 개를 학대하는 인간을 보면, 같은 종인 인간에겐 분노하고, 종을 달리하는 개에게 공감한다. 공감의 요구는 대개 고통을 향한다. 남들의 기쁨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지는 않는다. 감정의 작용 자체가 실은 그러하다. 신경과학자 이나스에 따르면, 감정이란 적으로 보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식별하기 이전에 재빨리 몸을 움직이도록 반응하는 ‘증폭장치’다. 그래서 감정은 신속성을 위해 정확성을 포기한다. ‘저게 어제 내 동료를 잡아먹은 놈 맞나?’를 정확하게 판단하려 하던 것들은 대개 잡아먹혀 죽고, 오... -
그늘 속의 기념비
기념비,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잊지 말자며 세우는 조형물을 뜻한다. 어떤 것은 소중하기에, 드물고 고귀하기에 ‘잊지 말자’며 세워지고, 어떤 것은 끔찍하기에,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잊지 말자’며 세워진다. 그러나 기념비는 단지 비석이나 조각 같은 조형물만을 뜻하진 않는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조형물이 없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념비라 하기에 충분하다. ‘6·25’도, ‘4·3’도, ‘10·26’도, ‘5·17’도 그저 숫자만으로 충분히 기념비가 된다. 때로 사람들은 전두환이나 박정희의 기념물에 달려들어 부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기념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모두 이름 석 자면 기념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방정식’ ‘괴델의 정리’ 같은 말에 새겨진 이름은 강철로 세운 독재자의 기념물이 닳아 없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사실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최소한 두 번째 사건이다. ‘그날’ 발생한 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