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이희경의 한뼘 양생
  • 전체 기사 51
  • [이희경의 한뼘 양생]‘누가’ 돌봄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누가’ 돌봄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지난 10월, 제주에서 작은 포럼이 열렸다. 20년 전 서간집 <경계에서 말한다>를 함께 펴낸 한·일 양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조한혜정과 우에노 지즈코가 희수를 맞아 다시 뭉친 자리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오늘날의 페미니즘’ ‘돌봄 사회’ ‘나이듦과 죽음’ 등을 주제로 진행된 이틀간의 대담 내내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서로를 ‘혜정’ ‘지즈코’라고 다정히 부르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덕분에 관전하던 사람들도 꽤 쫄깃한 시간을 보냈고, 다들 장외에서 이 차이를 해석하고 토론하느라 ‘불타올랐다’.우선 지금의 페미니즘 정세와 관련해 우에노는 백래시를 영향력 확대의 방증으로 보면서 젊은 세대의 자립과 주권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 리부트’에 희망을 걸었다. 반면 조한은 자기결정권 개념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전유되는 현실을 경계하면서 피해의식을 넘어선 연대와 협력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차이는 돌봄에서 드러났다. 우에노는 일본의 개호보험 ...

    2025.12.04 22:10

  • [이희경의 한뼘 양생]무덤의 미래
    무덤의 미래

    4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묘를 이장(移葬)했다. 당시 정신없이 구했던 묘지는 경기도 모 공원묘지에서도 거의 산꼭대기 자리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장례식 풍경. 사람들이 무거운 관을 낑낑대며 운반했고, 어린 동생들은 눈 쌓인 산에서 계속 미끄러지면서 울었다. 지금은 접근성이 좋아졌다지만, 노쇠한 어머니에게 그곳은 어느 날부터 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집 근처에 평장묘를 마련했고, 이번에 그곳으로 아버지를 이장한 것이다.그런데 부모 묘와 관련된 이 같은 고민이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선산에 부모를 모신 친구는 성묘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며, 언젠가 이장하고 싶어도 어디까지 모셔와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조부모 묘가 고향 뒷산에 있는데, 이제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아 다음 세대가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부모를 돌보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첫 세...

    2025.11.06 22:07

  • [이희경의 한뼘 양생]새벽에 만나는 붓다
    새벽에 만나는 붓다

    새벽 낭송을 한다. 상반기에는 <주역>을, 요즘은 <불경>을 읽고 있다. 발심한 친구들이 새벽 정해진 시간에 온라인으로 만나 40분 정도 한 단락씩 돌아가며 낭송한다. 설명도 토론도 없이 오로지 낭송뿐이다. 그런데도 이 시간은 소리의 리듬과 공명이 텍스트 이해를 넘어 타자에게 감응하는 수행, 몸과 마음이 함께 깨어나는 리추얼의 시간이 된다.그렇다고 텍스트가 주는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계엄·탄핵 정국에서 읽은 <주역>은 64괘가 담고 있는 흥망성쇠의 엄정한 순환과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변한다는 ‘궁즉변(窮則變)’의 메시지로 평정심을 되찾게 했다.요즘 읽는 <불경>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는 붓다가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수많은 제자백가 중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첫 제자는 불과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불교 사상은 서른다섯 살의 젊은 리더와 그의 비전...

    2025.10.09 20:55

  • [이희경의 한뼘 양생]다른 ‘소년의 시간’
    다른 ‘소년의 시간’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충격적이었다. 열세 살 소년이 또래 소녀를 칼로 살해한 뒤 자기 집에서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간다. 카메라는 점층적으로 학생과 교사의 불통이 일상화된 학교, 자녀 부양에 최선을 다하지만 닫힌 방문 안에서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는 부모, 그리고 오직 ‘칼’이라는 물리적 증거만 찾아 헤매는 경찰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소년의 시간’에 얼마나 무지한지가 드러난다.드라마 속 소년은 ‘메노스피어’라는 남초 커뮤니티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레드필’을 삼킨다. 세상은 80 대 20의 법칙으로 굴러가며, 20%의 남성이 80%의 여성을 차지한다는 것이 그가 믿는 진실이다. 그 속에서 소년은 자신을 못생긴 ‘인셀’(비자발적 독신)로 정체화한다. 유독한 남성성과 여성 혐오를 퍼뜨리며 개인의 취약성을 사냥하는 온라인 ...

    2025.09.11 20:20

  • [이희경의 한뼘 양생]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하며 성·건강·삶의 방식 전반에서 ‘자기결정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젊을 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마음이 간다.당연히 스콧 니어링에 매혹됐다. 그는 백 살 되는 날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결심하고, 6주간 단식 끝에 생을 마쳤다. 나도 니어링처럼 죽어야지. 그런데 어느 날 선배의 일갈이 날아왔다. “얘, 니어링처럼 평생 자급자족 육체노동을 하고, 자연식으로 간결하게 살아야 그렇게 죽는 거야. 과자도 못 끊으면서 어떻게 니어링처럼 죽니?” 아, 난 니어링처럼 죽기는 틀렸구나.그다음엔 조력사(assisted suicide)에 관심이 갔다. 라몬 삼페드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씨 인사이드>(2004, 스페인)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28년간 전신마비 상태로 살았던 주인공은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말하...

    2025.08.14 21:27

  • [이희경의 한뼘 양생]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여성할당제, 형식 아닌 비전으로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등입시반’ 같은 아동학대 수준의 경쟁교육이 사라지고, 가난한 노인이 고립된 채 살다가 6개월 만에 발견되는 일이 없으며, 외모나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노동자가 혼자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몸이 조각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정권이 성공했으면 좋겠다.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갸우뚱한 순간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었다. 정부는 그 이유를 “진영에 상관없이 탕평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결정이 ‘여성 할당을 형식적으로 채우되 비중 낮은 부처에 배치하는’ 오래된 관행의 반복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성이 동시에 홀대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개인적 감상일 수도 있다.의구심이 불쾌감으로 바뀐 계기는 강선우와 이진숙 두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었다...

    2025.07.17 20:57

  • [이희경의 한뼘 양생]곰과의 위험한 공존
    곰과의 위험한 공존

    매년 이맘때 즐거움은 환경영화제 출품작을 감상하는 일이다. 올해 나의 ‘원픽’은 안드레아스 피흘러 감독의 다큐멘터리 <곰과의 위험한 공존>이다. 곰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존재다.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브래드 피트가 침대가 아닌 숲에서 곰과 결투를 벌이며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영화의 대사처럼 그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여겼다. 장자크 아노의 <베어>를 통해서도 나는 곰의 힘, 용기, 지혜, 관용에 깊이 매료됐다.하지만 그런 곰, 특히 알래스카와 북유럽, 시베리아 등지에 서식하던 갈색곰은 인간의 개발과 사냥으로 점점 자취를 감췄다.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알프스 지역의 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트렌티노 자치주는 1999년, 슬로베니아에서 곰 10마리를 들여와 방사하는 ‘야생 곰 보존 프로젝트(Life Ursus)’를 시작했다. 곰들은 빠르게 적응했고 번식했다. 사람들은 “시간을 벗어난 존재”이자 “야생 그 자체”인 곰을 숲에서 마주하며 ...

    2025.06.19 20:57

  • [이희경의 한뼘 양생]‘의료화된 노년’에서 탈출하려면
    ‘의료화된 노년’에서 탈출하려면

    입에는 산소 공급을 위한 튜브, 코에는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관, 요도에는 소변을 배출하기 위한 폴리카테터, 손등에는 정맥주사 바늘, 가슴에는 심전도 모니터가 연결된 전극을 달고 병원 침상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도, 나도 그랬다. 그래서 몇년 전 우리는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가 큰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자 그 서류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의사는 산소포화도가 가장 먼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때 기도삽관을 할 건지 말 건지 가족들이 미리 결정해 두라고 했다. 나는 산소포화도, 기도삽관 같은 단어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기도삽관이 연명치료인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게다가 이것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두려웠다. 결국 자식들은 기도삽관에 동의했다. 하지만 몇시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혈압이 떨어진다며 승압제를 쓸 건지 말 건지를 또 결정하라고 했다. 우리는 울면서 더 이상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

    2025.05.22 20:49

  • [이희경의 한뼘 양생]불타 죽은 멧돼지를 애도하며
    불타 죽은 멧돼지를 애도하며

    지난 주말 경북 울진에 문상을 다녀오면서 나는 차창 밖으로 새까맣게 타버린 산을 근 한 시간이나 보게 됐다. 서 있는 채로 숯이 된 나무들, 하부 목질 수관이 타버려 꼭대기 잎들이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 나무들.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산불 지역의 모습은 처참했다. 피해는 광범위하다. 4500채 정도의 집이 불탔고, 생계 수단이었던 하우스도 사과밭도 양봉장도 양식장도 다 타버렸다. 가축은 20여만마리가 폐사했다. 사람도 많이 상해, 죽거나 다친 사람이 모두 75명이다.영덕 근처에서 혼자 사시던 지인 어머니는 담대한 성격이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피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오고, 하늘은 벌겋게 물들고, 검은 재가 마당으로 날아오자 어쩔 줄 몰라 하셨다. 후배 부모님은 안동 시내에 거주하시는데 “안동 시내 대피 바람”이라는 문자를 다섯 번이나 연속 받자, 밤에 울면서 딸에게 전화했다. 후배는 지역의 온라인 육아카페나 긴급 신설된 모바일 메신저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지역 시민들이 올린...

    2025.04.24 20:26

  • [이희경의 한뼘 양생]우리에게는 마을약사가 있다
    우리에게는 마을약사가 있다

    “진짜 약국을 만들자!”인문학공동체 공부가 마을경제에 꽂혔을 때 작업장을 만들었고, 청(소)년에 꽂혔을 때 마을학교를 만들었던 것처럼, 양생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을 때 마을약국을 떠올렸다. 때마침 회원 중에 약사도 있지 않은가. 무모함에 가까운 용기, 돈은 쌓아두는 게 아니라 순환시켜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윤리, 거기에 언제나 기꺼이 보태는 손들이 있으니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짜 약국을 만들자. 처방전 조제 대신 상담을 위주로 하고, 약보다 일상의 변화를 더 중시하며,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인 약국. 이른바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이 우리 포부였다. 약국엔 영양제만큼이나 책을 진열했고, 약사와 손님을 구분 짓는 매대 대신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4인용 테이블을 놓았다. 마침내 이름을 ‘일리치 약국’이라 짓고, 이반 일리치의 얼굴을 크게 만들어 간판을 달았다. 뿌듯했다.그러나 카센터 골목 귀퉁이에서, ...

    2025.03.27 20:54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