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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세력, 탄핵연대, 이중권력의 계곡
누가 반국가세력이고 내란세력인가. 민주공화국의 깨어있는 시민에겐 명백하다. 불행한 건 세계적으로 드물게 극빈 주변부에서 선진 민주국가군의 ‘좁은 회랑’으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위기에 몰린 현직 대통령이 망상에 빠져 친위 쿠데타를 자행했다는 사실이다.12·3 비상계엄 선포문에는 극우 유튜브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윤석열은 국회를 겨냥해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를 저질렀다고 적반하장 주장을 했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만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무장한 계엄군은 국회뿐만 아니라 부정선거 의혹의 실체를 밝힌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점거했다. 위험천만하게 대북 국지전을 유도하고 평양을 타격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있다.비상계엄은 기습적이었지만 그 음모는 수개월 전부터... -
트럼프 2.0과 민주당의 자살
트럼프의 기록은 화려하다. 미국 역사상 임기 중 두 번이나 탄핵당한 유일한 대통령. 91개 혐의로 기소돼 34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인물. 차별과 혐오의 일급 전도사. 이런 자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택했으니 미국은 어찌된 나라인가.극적으로 부활한 트럼프는 두 개의 정책 깃발을 올렸다. 하나는 국경에 장벽을 높이 세워(고관세, 이민통제와 추방) 세계화로 망가진 제조업과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미국우선주의다. 다른 하나는 감세·규제완화·정부지출 삭감이라는 올드한 냄새 짙은 정책 기조다. 트럼프·머스크 동맹이 주도한다. 반세계화 미국우선주의는 기왕의 리버럴 세계질서의 종말을 뜻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기조에서 우리는 한 발은 반세계화 포퓰리즘, 다른 한 발은 신자유주의에 담근 독특한 잡종을 본다.나름 노동자에게 손을 내밀지만 매우 친기업적이고 지대추구적이며 반생태적인 트럼프판 ‘상인적 우파’에 얼마나 전환의 파고를 넘는 미래가 있을까. 고삐 풀린 사기업에 너무 많은 것을 넘겨주고... -
노벨 경제학 바로 읽기 : 제도·권력·진보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를 설명했다. 중요한 한 가지 설명은 사회제도의 지속적 차이다. 이들은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도입한 다양한 정치경제 시스템을 조사해 제도와 번영 간의 관계를 증명했다.” 나는 이 설명이 불편하다. 수상자들의 연구에서 해당 부분은 중요하긴 하나 논란이 많고 더 주목해야 할 다른 연구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서를 통해 갈수록 제도뿐만 아니라 권력이 중요하다고 보고 권력관계를 바꿔야 진보의 새 길이 열린다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한림원 설명에는 이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다.한림원 설명과 관련, 수상자들의 대표적 논문으로 ‘비교 발전의 식민지적 기원’이 있다. 여기서 이주 식민자들이 어떤 제도를 수립하는지 주목하고 그 제도 차이가 독립 후 소득수준 차이를 낳는 근원이라 본다. 이주민 사망률을 사용해 이주민이 좋... -
뉴라이트 현상, 거대한 퇴행과 그 위험
바다 건너 트럼프가 두 차례 암살 위기에도 살아남았으니 명줄이 참 길다. 전환시대 복잡다기한 이중운동(폴라니)의 전개 속에서 선거의 여신이 그를 돕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윤석열은 누가 돕고 있나? 퇴진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국정 긍정 평가가 20%로 추락했으니 이미 심리적 탄핵 사태다.넓은 의미로는 트럼프도, 윤석열도 극우 뉴라이트에 속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둘 다 중도 기득권 정치의 실패가 낳은 위험한 반동적 역류다. 감세와 규제 완화, 민영화가 주된 경제정책 기조다. 약자를 혐오하며 ‘자유사회’주의 대 공산전체주의의 진영논리를 마구 구사한다. 호전적이고 철부지 아이처럼 전쟁을 불장난같이 여긴다. 세계 수위의 기후악당국가에 살면서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거대 양당을 견제할 유력한 제3 정당의 부재 속에서 극우 지도자가 큰소리치는 모양새도 비슷하다.하지만 트럼프가 떠오르는 포퓰리스트 뉴라이트라면 윤석열은 추락하는 수구적 뉴라이트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와 보... -
이재용, 삼성 위기 돌파할 수 있을까
더위도 식힐 겸 말이 통하는 친구들과 만나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벌이 화제가 되었는데 한 친구가 뜻밖에 현대의 정의선 회장을 칭찬하며 나더러 정의선이 양궁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연설을 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웃으며 대체로 이 칭찬을 수긍하는 눈치였다. 요즘 현대차의 실적이 질주하듯 잘 나가고 있는 탓도 있을 테다.정의선 회장의 연설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 보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1인자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드릴 수 있다.” 이게 정말 한국의 재벌총수가 한 말이 맞나. 좋은 연설이다. 하지만 양궁협회 회장으로서 보여준 스포츠 분야의 윤리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노동자나 다단계 협력업체 노동자들까지 포괄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나.이런 가운데 이재용 회장이 ... -
정태인, 먼 길 떠난 이가 보낸 선물
예쁜 보자기에 담긴 정태인 1주기 추모 기념 책자를 받았다. 보자기로 싼 책 자체가 기쁜 선물이지만 더 큰 선물은 책 속에 담긴 보석 같은 내용과 메시지였다. 누구보다 고인과 각별한 관계를 가졌던 정건화, 김병권, 이상헌이 각각 <정태인의 미래키워드>의 발간사, 들어가는 말, 나오는 말을 썼는데 내용이 절절하다. 이 안내글에서 벗들은 고인을 헌신적으로 현장을 지향한 실천적 연구자이자 제2의 박현채, 과거 아닌 미래와 씨름했던 선구적 지식인, 시대를 따라 공부하다 떠난 정책연구자로 부른다.정태인은 무엇을 남겼나. 고인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가장 깊이 고민했을 편집자들은 정태인의 미래키워드를 기후위기와 생태적 전환, 사회적 경제, 동북아와 한반도평화의 세 가지로 잡고 관련된 유고를 수록했다. 책에는 세 키워드에 맞춰 진행한 추모포럼 발표와 토론문도 함께 실려 있다. 사실 한 사람이 한 가지만 제대로 하기도 벅찬데 고인은 힘겹게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씨름해왔다. 혹시 ... -
불평등 이데올로기와 한국의 각축전
우리가 불평등 상황을 볼 때 우선 그 현실적 실태에 주목한다. 하지만 아무리 격차가 심하고 상향이동 가능성이 막혀 있고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는 부자들이 잔치판을 벌려도, 정부와 정당들이 터무니없는 부자 감세 정책을 밀고 간다 해도 대중은 이 상황에 묵종할 수도 있고, 분노하고 못살겠다고 저항할 수도 있다.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불평등 이데올로기와 이를 둘러싼 각축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불평등 이데올로기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로 세습자본주의를 비판한 피케티의 후속저서가 <자본과 이데올로기>였다. 여기서 불평등 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주어진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기 위한 일련의 담론과 제도적 배열”이다. 피케티는 모든 역사적 불평등 체제에는 이를 정당화, 자연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특히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좌파정당이 고학력자를... -
과연 ‘어떤 중산층’을 위한 정책인가
그간의 불평등 연구 흐름을 보노라면 한동안 ‘1% 대 99%’처럼 최상층으로의 초집중에 대한 연구가 크게 활기를 띠었다. 피케티의 연구가 이를 선도했다. 그러다가 상위 10% 또는 20%에 집중하는 연구가 나오고 중산층의 내부균열, 세습중산층 또는 특권중산층에 주목하는 연구, 불평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균열선은 1 대 99만이 아니라 중산층 내부에도 존재한다. 이는 학술적으로는 물론 정치적 함의도 크다. 강남좌파, 브라만좌파 논란에서 보듯 불로소득주의, 능력주의라는 것이 보수정치는 물론 중도정치에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피케티는 주로 1% 슈퍼리치로의 초집중 문제를 다루었지만, 우리가 이전의 고전적 초세습사회가 아니라 넓게 퍼진 프티불로소득자사회를 살고 있다면서 세습자본주의 위험을 경고했다. 크리스토퍼스의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로 오게 되면 이 문제는 훨씬 더 중요하다. 그는 집값 상승과 임대료 인상을 즐기는 부동산 프티불로소득자와 무... -
불로소득주의를 넘어, 공공이 미래
고단한 번역작업이 완성된 무렵에야 나는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의 한국어판 서문을 요청했다.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대단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메일을 보낸 다음날 바로 답신이 왔는데 저자서문까지 함께 보내왔다. 번역서 저자서문 때문에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도 끝내 서문을 받지 못한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너무 뜻밖이고 고마운 일이었다.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분량이 너무 짧고 간명했다. 하룻밤에 쓴 서문이니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이 서문으로 끝내야 하나 다시 요청해야 하나 생각이 복잡했다. 출간된 책에 수록된 저자서문은 결국 내가 욕심을 이기지 못해 재요청을 한 결과 ‘얻어낸’ 서문이다.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는 사실 여러모로 읽기 쉽지는 않은 책인데, 최종 저자서문은 안내 글로 손색이 없다. 서문에서 저자는 불로소득주의로의 타락, 즉 자본의 생산적 기능마저 저버린 지대추출자본(rentier capital)의 논리가 역사적 자본주... -
윤석열 리스크와 ‘미완의 부활’ 조국
대파 한 단 값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한 민생쇼는 한바탕 큰 웃음거리였다. 민생을 탐방하고 민생토론회를 24회나 진행했다는 최고권력자가 얼마나 민생경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무지·무능·불통을 여실히 보여줬다.보수도 보수 나름이다. 수구(守舊)에만 집착 말고 시대과제와 마주해 합리적 방향으로 보충하고 고쳐지음으로써 제 소임을 할 수 있고 중도층을 품는 포괄적 정당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정치사에서 전향적 보수의 사례는 적잖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원래 수구적 성향이 강한데 특히 현 정권은 너무 퇴행적, 반동적이다. 이 정부 출범 때 나는 윤석열 리스크를 경고하면서 그 ‘최대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대체 이 정부가 할 줄 아는 게 뭔가? 윤석열 리스크 넘버1은 내로남불이다. 권력의 사유화와 무도한 오남용으로 제 식구를 감싸고 스스로 내건 공정과 법치를 짓밟아 자기 발등을 확실히 찍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에 이어, 채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