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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교사의 ‘은밀한’ 성평등 수업 이야기
초등 6학년 국어교과서에는 한 여성을 사랑한 도깨비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예쁜” 버들이가 아픈 어머니를 위해 쉽게 샘물을 뜰 수 있도록 몽당깨비는 샘물을 그의 집 근처로 옮기고, 그 죄로 1000년 동안 구덩이에 갇히는 벌을 받았다. 몽당깨비는 버들이가 자신을 속여 샘물을 독차지 했고, 집 근처에 말 피를 뿌려 도깨비가 접근할 수 없게 했다고 했다. ‘인물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게 이 단원의 교육 목표인데, 많은 교재는 몽당깨비가 ‘믿음과 사랑’을 추구하고 버들이는 ‘현실적 이익’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몽당깨비는 순수하며 버들이는 계산적이다. 이 추론의 근거는 모두 몽당깨비의 말에서 비롯됐다.“그런데 말야… 버들이는 왜 집 앞에 말 피를 뿌렸을까? 몽당깨비가 한 말을 들으면 버들이는 뭐라고 답할까?”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이신애 교사(31)는 다른 가능성들을 아이들에게 묻는다. ‘버들이는 정말 욕심쟁이... -
언론이 부추긴 ‘여혐’, 교실에 스미다
20년째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교육 강사로 일선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김현회(52)는 “요즘만큼 수업 진행이 어려운 적도 없었다”고 했다. 무엇이 성차별인지, 왜 여성혐오인지 툭 물으면 콕 짚는 베테랑 강사지만 요즘 자주 말문이 막힌다. 바로 ‘골칫거리 질문’ 때문이다. 이 질문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다. “선생님 페미니스트에요?”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고등학생 민서연(16)과 레빗(별명·17)의 사정은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하다. 언론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지만 학교에서는 답을 구하기도, 의문을 품기도 어렵다. 여성으로 갖는 의문인데도 청소년이라 무시된 적도 있다. 어떤 어른들은 “예전엔 더했어”라 훈계하고, 어떤 이들은 외면하거나 답을 피한다. 방조와 외면이 익숙해진 학교 현장에서 질문은 대상이 바뀔 뿐, 보다 날선 형태로 되풀이 된다. “너 페미야?”“진짜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게 아니잖아요... -
한국 언론이 여성 연예인을 쓰는 법 ①♥ ②kg ③○○맘
‘사업가♥’ ㅇㅇㅇ, 애둘맘의 54kg 인증 “아침 공복 몸무게”최근 한 온라인 연예매체가 여성 연예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근황을 보도한 기사 제목은 한국 언론이 여성, 특히 여성 연예인을 대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22년 언론에 등장하는 여성 연예인의 모습은 여전히 전형적이고 차별적이다. 여성 연예인을 다룬 기사들은 ①외모는 있지만 사람은 없고 ②하트는 있지만 사랑은 없고 ③관계는 있지만 개인은 없다. 여성 연예인들의 비극적 사건 이후 자성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악플’의 온상지였던 포털 연예뉴스 댓글란이 없어지고, 선정적 키워드가 붙었던 연관 검색어가 사라졌다. 그러나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선정적 기사의 문제점은 여전하다.“저를 사람으로 생각해주시고 배려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옷을 반만 입은 적이 없습니다.” 지난 5월 배우 A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기사를 쓴 ... -
노처녀가 사라졌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58)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다. 그는 ‘디올 70년 역사의 첫 여성 디렉터’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이며, 2017년 데뷔 무대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는 메시지를 던진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를 한국의 언론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디올’ 패션쇼에 등장한 이화여대 ‘과잠’…금발女는 왜 이대 과잠을 입었나디올 패션쇼 등장한 ‘이대 과잠’…금발의 그녀 정체는?디올 패션쇼에 시선강탈 ‘이대 과잠’…금발 여성의 놀랄 정체누리꾼들은 반발했다. 트위터에는 ‘한국 언론의 클래스’를 비웃는 이도, ‘디올 수석 디자이너가 이대 과잠을 입은 이유가 더 낫다’는 이도 있었다. ‘아무리 유능해도 OO녀로 치부되는 사회’를 향한 날선 불만도 제기됐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여과없이 쓰였던 ‘OO녀’는 이젠 분명 눈총 받는 표현이 됐다.... -
[헤드라인 속의 ‘OO녀’]뉴스에도 세상에도 노처녀는 없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58)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다. 그는 ‘디올 70년 역사의 첫 여성 디렉터’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이며, 2017년 데뷔 무대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는 메시지를 던진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를 한국의 언론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디올’ 패션쇼에 등장한 이화여대 ‘과잠’…금발女는 왜 이대 과잠을 입었나디올 패션쇼 등장한 ‘이대 과잠’…금발의 그녀 정체는?디올 패션쇼에 시선강탈 ‘이대 과잠’…금발 여성의 놀랄 정체누리꾼들은 반발했다. ‘한국 언론의 클래스’를 비웃는 이나 ‘디올 수석 디자이너가 이대 과잠을 입은 이유가 더 낫다’는 이들이 있었다. ‘아무리 유능해도 ○○녀로 치부되는 사회’를 향한 날선 불만도 제기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과 없이 쓰였던 ‘○○녀’는 이젠 분명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