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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기-보이지 않는 장벽을 마주하며
“시각장애 선생님께 ‘보다’ 의미 새로 배워… 교감·공감이 우선”허혁씨의 농담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음주운전을 생활화합시다. 우리 모두 장애인이 됩시다….” 자신이 당한 사고를 통해 교훈적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농담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골 빈 놈’이라는 자기비하 표현은 여러번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CT촬영했더니 아이 손바닥만큼 비어있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당황했으니까요.1회 ‘나 혼자+함께 산다’에선 장애인 허혁씨와 김점지씨가 장애인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허씨의 일상을 전하는 기사에 장애인의 이동권·노동권·주거권·교육권 등에 대한 연관 기사를 엮었습니다. 허씨의 세상은 그를 만나기 전 막연하게 생각한 것보다도 단조로웠습니다.기사가 조금은 심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허씨는 시설을 나온 뒤 인생이 180도 달... -
‘차별없는’ 공간이라는 불가능한 약속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내가 나라는 이유로 세상이 좁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 입구의 계단에 가로막힌 휠체어 장애인이, ‘노키즈존’ 카페에 들어갈 수 없는 어린이가 그렇다. 화장실을 맘 편히 쓸 수 없는 노동자도, 식당의 키오스크 앞에서 좌절하는 노인도 마찬가지다.경향신문은 지난 6일부터 창간기획 ‘투명장벽의 도시’에서 한국 사회의 약자들이 마주치는 물리적·심리적 장벽, 이로 인한 도시 공간의 불평등 실태를 들여다봤다. 누구나 자유로이 드나들고,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공간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이는 도시행정의 임무이겠지만, 민간에서도 이런 목표점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독립예술창작집단 다이애나랩은 2018년부터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다이애나랩을 기획한 시각예술가 백구(김지영)·신원정·유선 세 사람의 목표는 “장애 등 본인의 정체성을 이유로 쫓겨나거나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늘리는 것”이다. 본업도 아니고 수익이 발생하는 것... -
“키오스크는 고문기계”…세상은 변한다, 노인들이 못 쫓아오게
“자, 제 손가락을 잘 보세요. 이렇게 살짝 터치하는 거예요. ‘내가 누르기만 하면 이상한 게 뜬다’고 무서워하셨던 분도 계시죠? 버튼처럼 꾹꾹 누르면 안 됩니다. 그림만 정확하게 터치하세요. 키오스크는 터치 화면이라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지난 9월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시립노인종합복지관에서 키오스크 강좌의 3학기 첫 수업이 시작됐다. 실제와 똑같은 키오스크를 앞에 두고 강사가 사용법을 설명하자 희끗희끗한 머리에 돋보기를 낀 70~80대 학생들이 내용을 꼼꼼하게 노트에 적었다. 아직은 손글씨가 가장 편하다. 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당장 화면에 안 보인다고 ‘왜 이것밖에 없어’라고 하지 마시고, 화살표 버튼을 눌러 위아래에서 찾으세요. 글씨 읽는 게 힘들겠지만 설명은 잘 보셔야 해요.”2년여 만에 대면 활동이 재개된 도시 곳곳에는 ‘신문물’이 투명장벽처럼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 낙오자에게 걸림돌은 식음료 주문만이 아니다. 식당... -
모두를 위한 키오스크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를 ‘고문 기계’라고 부릅니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화면을 쓸어내려 잠금을 풀지만, 노인들에게는 터치 자체가 아직 어색한 동작입니다. 게다가 직원에게 말 몇 마디만 하면 끝날 주문인데, 이제는 커다란 화면을 보며 수십 가지 선택지를 하나하나 읽고 골라야 한다니…. 점원이 아예 없고 키오스크만 있는 가게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서울디지털재단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키오스크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물어봤습니다. 키오스크 안내를 전담으로 맡은 직원이 있거나, 물어보고 싶을 때 직원을 호출하는 벨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해요. 키오스크는 사람 대신 주문받으려고 설치한 기계인데, 다시 사람이 와서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의미네요.그럼 모두에게 친절한 키오스크는 만들 수 없는 것일까요? 디지털재단이 제시한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을 보면 누구나 사용이 편리한 키오스크는 이런 모습입니다.‘화면 안에 정보를 나... -
고령층에게 ‘디지털 장벽’이 두꺼운 이유
“친구 대화창 들어가기. 더하기(+) 버튼을 누르기. 주황색 ‘음성메시지’ 버튼. 빨간색 동그라미 누르기. 마이크에 말하고 노란색을 눌러서 완성.”종이에 암호처럼 빼곡하게 적은 메모는 신승희씨(76)가 지난 스마트폰 수업에서 메신저로 음성을 보내는 법을 배우며 필기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2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씨는 ‘스마트폰 선생님’ 박소현씨(62)와 복습 중이었다.“빨간 버튼 누르고, 얘기해 보세요, 어머니.” “예, 안녕하십니까.” 녹음을 틀어 잘 녹음됐는지 확인했다. “핸드폰으로 글씨가 쓰려면 자판이 너무 작죠? 철자도 틀리셔서 무슨 뜻인지 모르게 전송될 때도 있잖아요. 말로 보내면 더 편하고 정확하니까 다음에 친구한테 써보세요.”수업은 전화번호 저장법으로 이어졌다. 가족과 친구 10여명의 목록을 적은 쪽지를 꺼내 하나하나 번호를 누른다. 숫자와 이름, 저장 버튼을 번갈아 누르기를 반복하니 금세 30분이 지났다.선... -
건강한 성인이 표준인 도시엔 ‘노인을 위한 공간’은 없다
도시의 설계는 노인을 배제한다. 산업화 이후 자동차가 중심이 된 공간 구성은 사람이 걷는 길마저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탓이다. 실제로 행인의 걷는 속도가 1990년대 이후 20여년 만에 평균 10% 이상 빨라졌다는 연구도 있다.사회·경제 활동이 왕성한 사람을 ‘시민’으로 상정한 도시는 그래서 고령화에 취약하다. 인구의 3분의 1이 노인인 시대를 앞두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 ‘고령친화도시’ 설계를 시작했다. 이 도시는 노인이 독립적이고 주체인 삶을 사는 공간으로 정의된다.노인을 위한 공간이란 무엇이 다를까. 서울연구원이 지난 2019년 서울 광진구 자양4동과 강동구 천호3동에 사는 만 65세 이상 거주자의 동선을 분석해 <노인을 위한 동네>를 발간했다. 연구를 보면 고령자들은 보통 집에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경로당과 식당, 미용실, 슈퍼마켓, 이웃의 집 등을 가장 자주 방문했다. 재래시장, 복지관, 공원 등 가끔 들려... -
노년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동네가 있다면···노원의 ‘돌봄 공동체’ 실험
“어머, 영주 언니 어서 오세요.” “이런 이쁜 옷은 어디서 사?” “나는 그냥 입는디 옛날부터 어디 가면 코디를 잘하고 나온디야.(웃음)” “운동하는 날짜 안 까먹었네?” “딸이 아침에 전화해서 알려줬어.”지난 9월1일 초가을 볕이 화창하던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공터에 할머니 10여명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안부 확인이 끝나자 이 모임을 이끄는 조복님 상계10동 ‘어르신휴센터장’을 따라 몸을 풀었다.“어깨를 크게 돌려보셔요. 아이고, 잘한다. 배에 힘도 꽉 주고요. 오늘 ‘몸이 안 좋다’ 싶으면 하지 마세요. 자, 이제 출발합니다. 본인 자세가 어떤지 생각하면서 걷는 거예요. 하나, 둘.”무더웠던 여름철보다 햇볕은 한풀 꺾였어도 걷기 시작하니 금방 땀이 났지만 할머니들은 아파트 사잇길을 따라 40여분을 쉬었다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무리를 따라가지 못한 대여섯은 다른 한쪽에서 ‘건강 리더’의 도움으로 50m 남짓의 길을... -
화장실 찾아 전력질주…물 안나오고 칸막이 없는 일터 화장실 실태
지난달 오전 서울역 5번 플랫폼 앞. 부산행 무궁화호가 플랫폼으로 진입했다. 출발 시간 직전 부기관사 김서희씨가 기관차 운전실에서 나와 객차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객차에 딸린 화장실이다. 기관차 바로 뒤 객차에는 화장실이 없어 두 번째 객차까지 전력질주해야 한다. 이렇게 뛰어도 짧은 정차 시간 내에 볼일을 보긴 어렵다. 왕복 약 140m를 뛰고 난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열차 기관사들의 ‘일터’인 기관차에는 화장실이 설치돼 있지 않다. 기관차와 객차 화장실은 연결돼 있지 않아 화장실을 가려면 기관차에서 내려 가까운 객차나 역사 구내로 가야 한다. 하지만 짧은 정차 시간 동안 쉽지 않아 기관사들은 대부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이 급해도 참아야 한다.경향신문 취재팀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9개 직종의 노동자들을 만났다. 건설노동자와 학습지 교사, ... -
화장실 갈 땐 따릉이 타고 맥도날드로…만성 방광염에 고통
김윤숙씨와 허보기씨는 도시가스 점검원이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허씨는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일을 한다. 오래된 주택이 밀집된 응암동, 주택과 아파트가 섞여있는 홍제동에서 이들이 갈 만한 화장실을 찾긴 쉽지 않다. 응암동에 사는 김씨는 화장실이 정 급하면 일을 하다 말고 집으로 돌아가고, 허씨는 홍제역 바로 옆 맥도날드로 간다. 두 사람은 ‘화장실 안 가도 되는 몸’을 만들기 위해 물을 안 마시는 방법을 택했다.-화장실이 없어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김윤숙(이하 김) = 입사 초기 회사에서 하루에 50~60개 집씩 검침하라고 했거든요. 집에 항상 사람이 있는게 아니니 그러려면 200곳은 가야돼요. 그때 생리 중이었는데 생리대를 갈 화장실이 없는거예요. 생리혈 새는 게 느껴졌는데, 일은 해야 되잖아요. 다행히 통 넓은 까만 바지를 입고 있어 일을 계속 했어요. 고객한테도 ‘화장실 좀 쓰겠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집 화장실에 생리대를 놓고... -
“저도 인턴 때 방광염 있었는데…” 일터 화장실을 바꾸는 법
‘여성 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2021)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지난해 3월 펴낸 보고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여성국의 의뢰로 시작된 이 보고서는 학교 비정규직과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고객센터 상담직, 건설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화장실 이용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그동안 화장실은 주요 작업환경과 조건이자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문제화’ 되지 못했다”며 화장실이 건강권 문제이며, 중요한 노동조건이라는 사회적 인식 개선 변화와 함께 법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화장실 보고서’ 연구책임자인 김규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를 인터뷰했다.김규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화장실 보고서’ 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김규연(이하 김) =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