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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숙’ 권하는 사회
일본에서 도쿄 등 7개 지역에 ‘긴급사태’가 선언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새 일본 사회는 자숙(自肅)의 ‘공기’(분위기)가 자리 잡은 모습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7일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사람 간 접촉을 70~80% 줄이면 2주 후 감염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서구 언론들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했다. 외출 자제나 휴업 요청이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다. 한 전문가는 ‘80% 접촉 감소’는 도시 봉쇄를 하지 않는 한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그런 비관론을 대놓고 얘기하는 이들은 소수다. 오히려 “일본인은 ‘우에사마(上樣·높은 분)’의 말을 잘 따르니까”라면서 달성 가능성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결국 ‘1억 총자숙’으로 극복하자는 건데, 위화감을 지울 수 없다.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맞이한 긴급사태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소극적인 검사와 격리 정... -
"경기장은? 티켓은?" 도쿄 올림픽 연기, '문제는 이제부터'
앞으로가 더 문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7월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을 ‘1년 연기’ 하기로 한 것을 두고, ‘취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1년 연기에 따른 경제적 손실, 경기장 시설과 인력의 재확보 등 실무적 문제 등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당장 올림픽 특수를 기대했던 일본 경제에 타격이 예상된다. 25일 NHK에 따르면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경제연구소는 올림픽 개최로 올해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1조7000억엔(약 18조7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1년 연기 결정으로 올해 그 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간사이(關西)대학의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명예교수는 올림픽 연기에 따른 경제손실을 6408억엔(약 7조2000억원)으로 추정했다.대회 경비가 불어나는 것도 불가피하다. 시설 재확보와 ... -
‘공기’를 읽는 법
지난 20일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인사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야마구치 가오리(山口香) JOC 이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영향으로) 선수들이 만족스럽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선 도쿄 올림픽을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상 개최’를 고수하는 가운데 선수단을 파견하는 JOC 인사가 대회 연기를 처음으로 공개 요구한 것이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실현한다는 올림픽은 세계인이 즐길 수 없는 상황에서 열어선 안된다. 개최를 강행해 올림픽 그 자체에 의문의 시선이 향하는 게 가장 두렵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JOC 회장의 반응은 예상대로라고 할지. “모두가 힘을 쏟고 있는 때에 JOC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한마디로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것이다.일본어 표현에 ‘구키(空氣) 요메나이’라는 게 ... -
일본의 ‘언더 컨트롤’ 신화
“도쿄 올림픽은 어떻게 될까요?” 지난주 만난 일본인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 얘기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에서 선수나 관객들이 오겠냐고 했다. 요즘 일본 정부나 언론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5개월 남은 도쿄 올림픽 개최 문제다. 지난달 30일 한 인터넷 사이트가 ‘도쿄 올림픽 중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자 ‘가짜 뉴스’ 취급하던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지난 주말 ‘소동’을 봐도 그렇다. 영국 집권 보수당 소속 런던시장 후보가 트위터에 도쿄 대신 런던에서 올림픽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 게 ‘불씨’가 됐다. 일본 언론들은 발언 내용을 보도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인터넷 여론도 들끓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이 영국 선적임을 들어 “너희 배나 가져가라”고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분위기가 달라진 건 코로나19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 대응에 불신이 커진 때문이다. 24일 현재 크루즈선 감염... -
전염병만큼 위험한 것
#1. “폭넓게 모으고 있다는 인식으로, 모집하고 있다는 인식은 없었다.”지난달 28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정부 주최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유화’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일본공산당 미야모토 도루(宮本徹) 의원이 “(총리 지역사무소의) 참가자 모집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원래 ‘공적·공로’가 있는 이들을 초대하는 모임 참가자를 사무소가 대거 모집해도 괜찮냐는 지적에 이런 기상천외한 답변을 한 것이다. 미야모토 의원은 “48년 일본어를 사용해왔지만, ‘모으다’와 ‘모집하다’는 같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0일 시작된 정기국회에서 벚꽃 모임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자료가 없다”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2. “중대 또는 복잡·곤란한 사건의 수사와 공판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모리 마사코(森雅子) 법무상은 지난달 31일 각의(국무회의)에서 ... -
‘갑A’로 불리는 피해자들
갑(甲) A, 을(乙) B….2016년 7월 일본 사가미하라(相模原)시의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입소자 19명이 살해되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가미하라 장애인 살상 사건’. 요코하마지방법원에서 지난 8일부터 시작된 공판에서 피해 장애인들의 ‘존재’는 ‘기호’로 표시됐다. 사망자는 ‘갑’, 부상자는 ‘을’로 분류돼 알파벳이 붙었다. 법원 측은 “유족들이 익명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은 또 다른 방청객과 피고에게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로 차단된 방청석에 앉았다. 아무 죄 없는 피해자 측이 편견과 차별을 우려해 이런 조치를 요구한 것이 일본 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사가미하라 사건은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피고 우에마쓰 사토시(植松聖·30)는 2016년 7월26일 새벽 자신이 일하다 해고됐던 복지시설에 침입해 잠들어 있던 장애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범행 후 “중증장애인은 살아 있어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 -
‘원팀’의 조건
유행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한 해가 저물 때쯤 ‘올해의 유행어’나 ‘올해의 신조어’ 등을 선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일본엔 ‘신어(신조어)·유행어 대상’이 있다. 1984년부터 출판사인 자유국민사가 한 해 동안 벌어진 사건이나 유행 등을 포착한 표현 10개를 골라 이 가운데 대상을 정해왔다. 지난 2일 발표된 올해의 대상은 ‘원팀’(ONE TEAM)이다. 지난 9월20일~11월2일 일본에서 처음 개최된 럭비월드컵에서 사상 첫 8강에 진출한 일본 대표팀의 구호다.일본 럭비대표팀 31명은 외국 출신 선수가 7개국 15명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제이미 조셉 감독은 필요한 선수들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대표로 선발했다. 자칫 오합지졸로 끝날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낸 정신이 ‘원팀’이었다. 대표팀은 뉴질랜드 출신 리치 마이클 주장을 중심으로 결속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강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사모아를 차례로... -
총리와 ‘야유 장군’
‘#공산당은 나다’, ‘#공산당은 동료다’.지난주 일본 트위터에서 이런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확산됐다.일본공산당 지지자들이 올린 글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은 공산당 지지자가 아니지만 “공산당과 주권자를 우롱하는 움직임에 반대한다” “이론(異論)을 말했다고 딱지를 붙이는 데 반발한다” 등의 글들이 잇따랐다. 계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유’ 때문이다. 지난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입헌민주당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 의원이 2016년 방송국에 전파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고 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의 발언에 대해 질문할 때였다. 각료 좌석에 앉아 있던 아베 총리가 실실 웃는 얼굴로 스기오 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공산당”이라고 한 것이다.이를 두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행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靑木 理)는 “총리가 ‘공산당’을 비판의 단어로 삼는 것은 넷우... -
후쿠시마 현실 보여준 '피란민 마을'의 읍장선거
‘이례적인 선거’. 지난 10일 실시된 후쿠시마(福島)현 오쿠마(大熊)정 정장(町長·한국의 읍장에 해당) 선거를 11일 일본 언론은 이렇게 전했다. 오쿠마정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폭발 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제 1원전이 자리한 곳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마을 바깥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실제 거주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거 운동이 펼쳐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8년 만에 치러진 정장 선거에선 요시다 준(吉田淳) 전 부(副)정장 (63)이 3549표를 획득, 863표에 그친 스즈키 고이치(鈴木光一) 전 의회 의장을 따돌리고 당선됐다. 투표율은 53.00%로 선거가 있었던 8년전보다 15% 정도 밑돌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는 원전 사고 전인 2007년부터 3기에 걸쳐 정장을 맡아왔던 와타나베 도시쓰나(渡邊利綱) 정장이 고령을 이유로 은퇴하면서 실시됐다. 아사히... -
‘레이와 시대’의 일본 왕실
지난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를 대내외에 선포한 ‘즉위례 정전의식’은 ‘레이와(令和·현 일왕 연호)’ 왕실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의식이었지만, 일본 왕실이 껴안은 문제를 새삼 부각시켰다. 이른바 ‘안정적인 왕위 계승’ 문제다. 의식이 치러진 왕궁 내 풍경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일왕의 옥좌인 ‘다카미쿠라(高御座)’ 왼쪽에 동생 후미히토(文仁·53)를 비롯한 아키시노미야(秋篠宮) 일가 4명이, 오른쪽엔 휠체어를 탄 작은아버지 마사히토(正仁·83) 등 히타치노미야(常陸宮), 미카사노미야(三笠宮),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일가 7명이 섰다. 1990년 아키히토(明仁) 일왕 때 남성 왕족 6명, 여성 왕족 7명이 좌우로 선 것과 대비된다. 의식에 참가할 수 있는 성인 남성 왕족이 2명밖에 없는 데 따른 궁여지책이다. 일본 왕실전범은 부계 혈통인 남성만 왕위 계승 자격을 인정한다. 현재 계승 자격자는 후미히토와 그 아들 히사히토(悠仁), 마사히토 등 3명뿐이다. 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