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제주의 봄이 만개하기 전, 먼저 활짝 피는 맛…빙·방·무

김진영 식품 MD

제주 서귀포 5일장

[지극히 味적인 시장](3)제주의 봄이 만개하기 전, 먼저 활짝 피는 맛…빙·방·무

2월, 제주도로의 여행은 여유롭다. 물론 여행 가는 사람이 많지만, 성수기에 비하면 한가하다. 성수기 편도요금으로 왕복 항공권을 끊을 수 있거니와 렌터카, 숙박료 할인도 커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새벽 출발 비행기는 2만~3만원대도 많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비용 부담은 더 가벼워진다. 게다가 제주의 2월은 1년 중 맛있는 것들이 가장 많이 날 때다.

보통은 연중 4~6회 정도 제주도에 간다. 올해는 1월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하우스 감귤이 가장 맛있는 6월, 타이벡(햇빛을 반사하도록 귤나무 아래 까는 토양피복제 상품명) 감귤이 나오는 9월, 노지 감귤이 출하되는 12월, 만감류인 황금향·레드향·한라봉·천혜향 그리고 4월과 5월 사이에 나오는 카라향을 마지막으로 한 해의 감귤 농사가 끝나면 출장도 끝난다. 감귤 농부들은 5월이 농한기다. 하우스 감귤이 나오기 전 잠시 쉬어 가는 달이다. 제주 출장을 갈 때 가끔 끝자리가 4, 9로 끝나는 날이 들어가도록 일정을 짠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장터 구경은 잠시나마 출장지에서 여행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장터가 열리는 날에만 나오는 먹거리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선, 채소, 과일, 건어물 등 다양한 상품을 가지고 오일장에 모이는 상인은 대략 600명. 오롯이 제주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에 따라 상품이 바뀐다. 대형 할인점은 출입구가 한두 개지만 오일장은 사방이 출입구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넓은 출입구가 메인 스트리트다. 한라산을 등지고 장터를 잡은 서귀포 오일장. 날 좋은 날은 백록담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과일전 위쪽으로는 식당가가 있는데 장이 서지 않더라도 식당 문을 연다. 대부분 고기국수와 순댓국밥 위주인데 제주시나 서귀포시의 이름난 식당 못지않게 맛도 괜찮고 양도 푸짐하다. 줄 설 필요도 없어 더 좋다. 하나 있는 중국집에서는 고기국수 대신 고기짬뽕을 낸다. 고기국수를 중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이다. 맑은 육수 대신 얼큰한 짬뽕 국물로 나와 매력적인 맛이다.

■ 제주 시장에만 있는 향

빙떡 - 제주산 메밀로 빙빙 말아 만든 전병, 수확 한창인 ‘월동 무’ 넣어 별미

빙떡 - 제주산 메밀로 빙빙 말아 만든 전병, 수확 한창인 ‘월동 무’ 넣어 별미

빙빙 만다고 해서 빙떡. 강원도에서 총떡, 병떡이라 부르는 메밀전병의 제주도 버전이다. 제주는 국내 제1의 메밀 생산지다. 메밀은 강원도가 유명하지만, 생산량은 제주가 1위, 그다음이 경북이다. 강원도는 세 번째다. <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그 무렵에 지금처럼 제주도를 오갈 수 있었다면 아마도 제주가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제주에선 메밀을 많이 생산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메밀꽃 장면도 제주에서 찍었을 정도로 한여름 제주는 메밀꽃 구경하기가 쉽다. 메밀 생산량은 많아도 메밀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이다. 접짝뼈국(돼지 뼈와 살코기를 푹 고아 낸 국)이나 몸국에 넣는 정도이고, 다른 재료에 묻혀 메밀 맛을 즐기기는 어렵다.

그나마 빙떡이 제주 메밀 맛을 즐길 수 음식이다. 깎은 무로 기름을 찍어 살짝 두른 철판에 반죽을 부쳐내고는 참기름으로 무친 무채를 넣고 말기만 하면 끝난다. 만드는 법은 단순하지만 2월 제주의 맛을 품고 있다. 2월은 달디단 월동 무 수확이 한창일 때다. 단맛이 잔뜩 든 무채에, 참기름 그리고 구수한 메밀 향이 더해져 맛있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과 달리 제주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빙떡 하나에 1000원, 세 개에 2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동트기 전부터 시작한 장사 준비가 얼추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한다. 매일 영업하는 식당으로 가 막걸리 한 잔에 아침을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인은 장터 식당에 아침을 주문해 그 자리에서 먹는다. 채소전과 그릇가게 사이에 있는 몇몇 식당이 장사 준비에 바쁘다. 오일장에만 문 여는 식당들이다. 하루 장사할 음식을 준비하고 틈틈이 배달도 다니는 모습이 분주하다. 몇 집 중에서 아들까지 나와 배달하는 ‘분이네’에 자리를 잡고 순댓국을 주문했다. 잘 삶은 머리고기와 내장, 순대가 가득 든 국과 갓 지은 밥이 나왔다. 얼큰한 국물에 실한 건더기, 7000원이란 가격이 미안해지는 맛과 양이다. 장이 서는 날, 해장하기 딱 좋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멀리 소줏고리가 보였다. 소주를 내리나 싶어 다가가니 소주는 아니었다. 1993년부터 한경읍 소수리에서 허브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가 즉석에서 에센스를 추출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 추출하고 오일과 에센스를 분리하는 깔때기에 넣어 분리한다. 오일은 모아서 비누를 만들고, 에센스는 스프레이통에 희석하지 않고 원액 그대로 담는다. 한 병에 3000원으로 선물용으로도 부담 없다. 다른 시장에는 없는 향기다.

■ 방어 파티는 2~3월이 적기

방어 - 낚시로 잡아 타지보다 더 깔끔한 맛, 3월이 지나면 다시 겨울 기다려야

방어 - 낚시로 잡아 타지보다 더 깔끔한 맛, 3월이 지나면 다시 겨울 기다려야

모슬포 방어 낚시는 야행성인 오징어를 잡는 한밤중부터 시작한다. 밤에 잡은 오징어가 방어를 유혹하는 향기로운 미끼다. 초겨울까지는 자리돔을 잡아 미끼로 쓰지만 한겨울엔 오징어가 대신한다. 오징어를 잡아 항구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동틀 무렵 방어잡이에 나선다. 낚싯바늘에 오징어를 통으로 꿰어 방어를 잡는다. 그물로 잡는 동해와는 다른 모슬포 방식이다. 한 마리, 한 마리씩 잡는 방식이라 회를 떠도 다른 곳보다 깔끔하다.

입춘이 지나면 방어 인기는 12월과 달리 시나브로 잦아든다. 입춘이라는 글자가 주는 봄에 대한 기대감이 방어철이 끝났다는 암시라도 되는 것처럼 찾는 이가 적어진다. 입춘은 육지에 봄이 온다는 의미지만 바다는 비로소 겨울에 접어든다. 바다의 한겨울은 음력으로 2월, 양력으로 치면 3월이다. 3월의 바다는 영등철(음력 2월)로 육지로 치자면 대한의 추위라 할 수 있다. 수온이 가장 낮게 내려가는 시기다. 3월이 지나면서 비로소 방어철이 끝나고 보리 순이 크기 시작한다. 더불어 부시리의 맛이 좋아진다. 2월 중순, 여전히 맛있는 방어가 많이 잡힌다. 모슬포 축양장을 찾은 바로 전날도 1000여마리가 잡혔다고 한다.

찾는 이가 적어지고 잡히는 양은 비슷하니 가격이 한창 때보다 저렴하다. 모임이 많아 가장 비싼 12월 경매가가 ㎏당 3만원 전후였다면 지금은 1만5000원 내외다. 저렴하게 그리고 푸짐하게 방어회를 즐길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부터 3월 중순까지다.

‘청년올레식당’은 제주에 26개의 길을 낸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청년들의 창업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만든 식당이다. 석 달에 한 번 멤버가 바뀌고, 매달 메뉴가 바뀌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2월 현재 3기 4명의 젊은 셰프가 창업의 올레길을 걷고 있다. 개성 있는 메뉴 중에서 한 가지를 골랐다. 제주에서 많이 나는 갈치 한 마리를 통으로 내면서도 젊은 감각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름하여 ‘갈치덮밥’. 밥에 갈치 한 마리 맛을 잘 녹여내고도 한 마리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양새다. 발라낸 살을 생선가스처럼 튀겨 내고, 남은 뼈는 똬리를 틀어 튀겼다. 간장을 기본으로 매콤한(순한 맛도 선택 가능) 소스로 양념해 밥 위에 얹고 튀김이 올라간다. 타르타르소스와 소금이 곁들여 나온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튀김 요리의 재료가 갈치이니 맛을 설명하자면 입만 아프다. 튀긴 갈치 뼈의 고소함은 덤이다.

■ 오징어계 절대 ‘갑’ 무늬오징어

무늬오징어 - 제주서도 이맘때 겨우 맛보는 귀한 몸, 이름대로 ‘무늬만 오징어’ 사실은 꼴뚜기과

무늬오징어 - 제주서도 이맘때 겨우 맛보는 귀한 몸, 이름대로 ‘무늬만 오징어’ 사실은 꼴뚜기과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포구는 식당 두 개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경매장도 마을 규모에 맞게 아담하지만 제주도에서도 이름난 옥돔 산지인지라 포구 앞에 있는 옥돔 표석이 오가는 이를 반긴다. 경매에 나오는 생선 중 백조기나 붕장어도 있지만 주인공은 옥돔. 아직은 많은 양이 나오지 않아 한 마리 경매가가 2만~3만원이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당일 잡은 것을 구이로 내는데 경매가가 높다 보니 식당에서 파는 가격도 높다. 여럿이 갔으면 한 마리 맛볼 요량으로 주문하겠지만 혼자 다니는 처지라 대신 회덮밥을 주문했다. 사실 옥돔보다는 회덮밥이 더 끌려 찾아간 곳이다.

회덮밥의 재료는 매일 바뀐다. 어촌계에서 잡은 것만 올린다고 하는데, 식당을 찾은 날은 운 좋게 9㎏짜리 부시리가 덮밥의 재료였다. 철은 아직 이르지만 대부시리의 차진 식감과 비빔 재료인 양배추의 제철 단맛이 어우러져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올레 4코스 길 중간이라 올레꾼들도 자주 찾는 집이다. 회덮밥 재료로 무엇이 올라가도 회덮밥 한 그릇에 1만2000원이다. 태흥리 어촌계식당(064-764-4487). 수요일 휴무.

무늬오징어는 오징어계의 절대 ‘갑’이다. 크기로도 맛으로도 비교를 불허한다. 갑오징어가 맛있다지만 뼈대만 튼실할 뿐 무늬오징어와 비교하면 ‘을’이 된다. 무늬오징어는 가을부터 초봄까지 난다. 동해안과 남해안, 일부 서해안에서도 나지만 잡히는 양이 적어 현지에서 소비된다. 즉 현지에서 나는 철에 잘 찾아야 겨우 맛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 제주 출장을 가면 간혹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들러 무늬오징어를 산다. 시장에서 회를 떠주는 곳 중 한 곳에서만 판다. 회를 떠서 숙소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오징어 신경만 끓어 달라고 해서 포장을 한다. 회보다는 데침이 무늬오징어 맛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데치면 회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묘한 단맛이 난다. 시세는 날마다 다르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1㎏에 2만~3만원 사이다. 작은 것은 두 마리 정도, 큰 것은 한 마리가 1㎏을 훌쩍 넘는다.

무늬오징어는 오징어라 부르지만 한치와 같은 꼴뚜기과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은 이제 그만 써야 한다. 현대의 어종 분류체계에서는 맞지 않는 속담이다. 24년차 식품MD가 제주에 가면 다른 것은 안 사도 무늬오징어만은 있으면 꼭 사는 이유는 별거 없다. 맛있기 때문이다. 매일올레시장 내 바다수산(064-762-5577). 항상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전화 문의는 필수다.

■ 사계절 내내 제철…7000원 내기 미안해지는 ‘순댓국밥’
매일 가장 신선한 회로 만든 ‘회덮밥’
튀긴 갈치 한 마리가 통째 올라간 ‘갈치덮밥’


잘 삶은 머리 고기와 내장, 순대가 가득 든 분이네의 순댓국.

잘 삶은 머리 고기와 내장, 순대가 가득 든 분이네의 순댓국.


어촌계에서 잡은 생선으로 매일 재료가 바뀌는 태흥리 어촌계식당의 회덮밥.

어촌계에서 잡은 생선으로 매일 재료가 바뀌는 태흥리 어촌계식당의 회덮밥.


밥에 갈치 한 마리 맛을 제대로 녹여낸 청년올레식당의 갈치덮밥.

밥에 갈치 한 마리 맛을 제대로 녹여낸 청년올레식당의 갈치덮밥.




■ 필자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3)제주의 봄이 만개하기 전, 먼저 활짝 피는 맛…빙·방·무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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