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모임 분위기 띄울 ‘대통대잎술’··· 고려시대 사찰 ‘곡차’ 복원한 전남 담양 추성고을

글·사진 김형규 기자
전남 담양의 양조장 ‘추성고을’에서는 인근 사찰 연동사에서 유래한 전통주를 복원해 술을 빚는다. 왼쪽부터 차례로 대통대잎술, 대잎술, 타미앙스, 추성주.

전남 담양의 양조장 ‘추성고을’에서는 인근 사찰 연동사에서 유래한 전통주를 복원해 술을 빚는다. 왼쪽부터 차례로 대통대잎술, 대잎술, 타미앙스, 추성주.

연말연시 모임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맛 좋은 술 한 병은 순식간에 좌중의 분위기를 바꾼다. 꼭 비싼 술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재밌는 얘깃거리를 품은 술이 있다면 여럿이 모인 술자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대통대잎술은 그런 목적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다.

등장부터 남다르다. 대통대잎술은 유리병이 아니라 커다란 대나무통에 담겼다. 당연히 병뚜껑도 없다. 술을 사면 주는 나무 꼬챙이로 대나무통 윗부분에 직접 구멍을 뚫어야 마실 수 있다. 두 손으로 술병을 조심스럽게 기울이면 졸졸졸 소리를 내며 맑은 약주가 흘러나온다. 술을 개봉해 잔에 따르는 과정 자체가 떠들썩한 놀이고 이벤트가 된다.

대나무 속에서 시간을 보낸 술은 옅은 꽃향을 풍긴다. 곡물로 빚은 술 특유의 녹진한 단맛도 느껴진다. 알코올 도수 15도로 시판 소주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부드러운 목넘김은 비할 수 없이 좋다.

대통대잎술은 만드는 법이 까다로운 편이다. 담양산 멥쌀과 찹쌀을 7 대 3 비율로 쓰는데 당화력을 높이기 위해 엿기름을 첨가하고 누룩, 물과 섞어 한 달 정도 섭씨 15도로 저온 발효시킨다. 발효를 마친 술에는 댓잎과 구기자, 오미자, 진피(물푸레나무 껍질), 육계, 갈근(칡뿌리), 솔잎, 죽력(대나무에 열을 가해 얻은 진액) 등 10여가지 약재를 침출해 섞은 뒤 열흘가량 숙성해 완성한다. 술을 담는 대통은 담양산을 주로 쓰고 모자란 건 맹종죽으로 유명한 거제산을 가져다 쓴다. 알코올 도수를 12도로 낮추고 대나무통 대신 유리병에 담은 ‘대잎술’은 시고 단 술맛이 더 도드라지는데 반주로 제격이다.

양대수 명인

양대수 명인

대통대잎술은 전남 담양 ‘추성고을’ 양조장에서 식품명인 양대수씨(57)가 만든다. 술의 연원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담양 금성산성 남쪽 기슭의 연동사 스님들이 여러 가지 약초를 넣어 빚은 곡차를 즐겨 마셨는데,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 혹은 ‘담양 신선주’라고 불렸다. 그 비법이 연동사에 오래 시주하던 양 명인의 증조부에게 전해졌다.

족자에 한자로 적은 300여자의 비법을 조부가 한글로 풀어 기록했고 양 명인까지 4대에 걸쳐 내려왔다. 농협을 다니던 양 명인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겼던 집안 술을 복원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를 계기로 쌀 소비 진작이 화두였고, 술 복원을 유지로 남기고 떠난 부친의 영향도 컸다.

‘조부가 솥뚜껑을 뒤집어 불을 때며 술을 내렸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동사에서 전해진 제세팔선주는 증류주였다. 양 명인은 6년 가까이 약재 사용법을 연구하며 실험을 거듭한 끝에 1992년 복원한 ‘추성주’를 출시했다. 원래 23가지였던 약재는 식약처 기준에 따라 13가지로 줄였고, 약초를 달이고 볶고 찌던 방식도 침출법으로 바꿨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만들자는 생각에 담양의 옛 지명 추성(秋成)에서 술 이름을 따고, 당시 소주 도수에 맞춰 25도로 알코올 도수도 낮췄다.

두 번 증류한 추성주 원주를 대나무숯에 거르고 10년 이상 숙성한 40도짜리 ‘타미앙스’(담양의 불어식 발음을 딴 이름)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설 선물로 납품됐고, 2014년 미국과 벨기에의 주류품평회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았다. 타미앙스는 매년 술병 디자인을 바꿔가며 연간 1000병만 한정 생산하는 고급 술로 자리 잡았다.

담양산 딸기로 만든 ‘클럽주’ 티나

담양산 딸기로 만든 ‘클럽주’ 티나

양 명인은 전통주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신제품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일명 클럽주로 불리는 ‘티나’는 담양산 딸기로 만든 리큐르인데, 지난해 2월 출시 후 강남 유명 클럽에 나가는 물량만 매달 억대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멜론과 블루베리 등 다른 담양산 과일을 활용한 술도 차례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추성고을이 만드는 술 중 추성주와 타미앙스, 티나 등은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추성주가 2만5000원(350㎖), 타미앙스가 4만원(500㎖)이다. 대잎술과 대통대잎술은 주로 담양 인근에서 유통된다. 대통대잎술(700㎖ 2만원)은 항상 물량이 달리지만 전화(061-383-3011)로 재고 확인 후 택배 주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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