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챔피언’ 전주연 바리스타와 함께 떠나는 부산 커피여행

부산|글·사진 김형규 기자
올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대회에서 우승한 부산 모모스커피 전주연 바리스타. 여성 바리스타가 WBC에서 우승한 것은 전주연이 두 번째다. 그는 바리스타를 ‘커피를 매개로 손님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올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대회에서 우승한 부산 모모스커피 전주연 바리스타. 여성 바리스타가 WBC에서 우승한 것은 전주연이 두 번째다. 그는 바리스타를 ‘커피를 매개로 손님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지난 4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대회에서 한국인이 처음으로 우승했다. 주인공은 부산 모모스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32). 커피인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WBC 우승은 곧 성공의 지름길로 통한다. 2003년 우승자인 호주 출신 바리스타 폴 바셋은 매일유업과 계약을 맺고 한국에 그의 이름을 딴 커피체인점을 100곳 넘게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12년 전 부산 온천장의 4평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시작한 모모스커피. 이젠 ‘세계 챔피언’을 배출한 카페가 됐다.

12년 전 부산 온천장의 4평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시작한 모모스커피. 이젠 ‘세계 챔피언’을 배출한 카페가 됐다.

전주연은 WBC 우승으로 획득한 명성을 사업 기회로 활용하는 대신 “부산을 ‘커피의 도시’로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산 커피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까지 몰리기 시작한 모모스커피를 찾아 그가 내려주는 커피를 맛봤다. 그가 추천한 부산의 카페를 돌며 여행하는 동안 “커피는 에너지”라던 그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세계 챔피언이 된 ‘콩스’

WBC 우승자는 한 해 동안 ‘세계 1위 바리스타’ 자격으로 많은 행사에 참여한다. 전주연도 대회 직후부터 유럽·중남미·아시아 등 각국을 돌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틈틈이 국내에 들어올 땐 서울카페쇼·강릉커피축제 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한 달 평균 3주는 외국에서 보낸다. 나머지 일주일은 모모스커피에 출근해 평소처럼 일한다. 그중 하루 정도는 바에서 직접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한다. 세계 챔피언의 커피를 맛보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기자 역시 두세 번 약속을 미룬 끝에 어렵사리 일정을 잡아 그를 만났다.

모모스커피 매장에 전시된 WBC 우승컵

모모스커피 매장에 전시된 WBC 우승컵

모모스커피에서 판매하는 WBC 우승 기념 굿즈

모모스커피에서 판매하는 WBC 우승 기념 굿즈

전주연이 나타나자 매장 안에 작은 술렁임이 퍼졌다. 반갑게 이것저것 묻고 사진을 찍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모스커피는 원래 동네 주민부터 여행객까지 손님층과 연령대가 다양한 카페다. 하루 1000명 수준이던 손님이 WBC 우승 후 10~20% 늘었다고 한다. 카페 출입문 옆 게시판에는 모모스커피 직원들의 사진과 별명이 붙어있는데, 전주연의 별명은 ‘콩스’다. 키가 작아 붙은 별명이다. 아직도 단골들은 그를 ‘콩스’나 ‘콩스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른다고 한다.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는 전주연 바리스타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는 전주연 바리스타

세계 챔피언이 직접 내려준 코스타리카 커피

세계 챔피언이 직접 내려준 코스타리카 커피

서울에서 4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기자에게 전주연이 내민 첫 잔은 ‘코스타리카 돈 카이토 빌라 로보스’.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복잡한 암호처럼 들릴 법한 긴 이름이다. 코스타리카는 생산국, 돈 카이토는 농장 이름, 빌라 로보스는 커피 품종을 각각 뜻한다. “어제 로스팅한 커피인데 오늘 아침 출근해서 마셔보니 맛이 너무 좋더라고요.” 코스타리카 커피 특유의 화사한 산미 대신 부드러운 신맛이 났다. 초코우유 같은 단맛과 고소함도 느껴졌다. 그는 아침에 들고나온 200g짜리 커피를 벌써 단골들에게 다 내려줬다고 했다. 두 번째로 마신 ‘엘살바도르 산 안드레스 파카마라’ 커피는 오렌지 같은 상큼한 향미가 돋보였다.

■부산을 커피의 도시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커피도 모든 정보와 자본, 인맥이 서울로 집중된다. ‘변방’인 부산의 카페에서 그것도 여성 바리스타가 세계 대회를 석권한 것은 이변으로 여겨진다.

모모스커피는 2007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앞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파는 4평짜리 매장으로 시작했다. 이현기 대표(42)는 2009년부터 스페셜티커피(전 세계 커피전문가 단체인 스페셜티커피협회 평가 기준으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획득한 고품질 커피)를 취급하며 도약을 꿈꿨다. 유치원 교사 지망생이었던 전주연은 창업 멤버로 합류해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12년 동안 WBC에 도전한 끝에 결국 꿈을 이뤘다.

전주연은 전 세계 커피인들에게 부산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일하는 카페 대신 광안리 바닷가에서 <바리스타 매거진> 표지 사진을 찍었다.

전주연은 전 세계 커피인들에게 부산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일하는 카페 대신 광안리 바닷가에서 <바리스타 매거진> 표지 사진을 찍었다.

전주연과 모모스의 꿈은 부산 커피인 모두의 꿈이기도 했다. 경쟁관계이기도 한 부산의 여러 카페들이 전주연의 세계 무대 도전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사비를 들여 보스턴 대회장까지 응원을 갔고, 현지에서 어렵게 구한 태극기를 흔들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전주연은 “부산 대표 바리스타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해마다 WBC 우승자는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미국 커피잡지 ‘바리스타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다. 대부분 챔피언들이 본인의 매장에서 사진을 찍은 것과 달리 전주연은 광안리 바닷가에서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우승컵을 들고 선 모습이다. 그만큼 부산이라는 도시를 세계 커피업계에 알리고 싶었다는 얘기다. 부산이 세계 커피업계에서 유명해질수록 한국 커피도 함께 인정받을 것이고, 한국이 속한 아시아 커피시장도 성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중한 표정으로 에스프레소응 추출하는 전주연 바리스타. 그는 12잔의 커피를 15분 안에 심사위원들에게 완벽히 선보여야 하는 WBC 경연을 위해 뮤지컬 연기를 하듯 대사와 동작을 몸에 익혔다.

신중한 표정으로 에스프레소응 추출하는 전주연 바리스타. 그는 12잔의 커피를 15분 안에 심사위원들에게 완벽히 선보여야 하는 WBC 경연을 위해 뮤지컬 연기를 하듯 대사와 동작을 몸에 익혔다.

전주연은 세계적인 바리스타들을 부산으로 초청해 여러 행사를 여는 한편 5~6년 후에는 WBC 대회를 부산에 유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17년 서울 코엑스에서 WBC 대회를 치른 개최국이라, 2개 도시에서 대회를 열었던 호주의 선례 등을 참고해 주최 측을 설득 중이다.

■“이름이 긴 커피를 선택하세요”

모모스커피는 현재 직원 45명이 온천장 본점과 센텀시티점 2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에는 본점 옆 커피연구실에서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와요 커핑’ 행사를 4년째 열고 있다. 모모스가 거래하는 외국 농장에서 가져온 신선한 원두나 해외 유명 커피숍의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맛보고 평가하는 시간이다. 평일 오전 행사인데도 매번 30~40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커피 전문가부터 동네 주민, 커피투어를 온 관광객까지 참석자도 다양하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부어 라떼 아트를 완성하는 전주연 바리스타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부어 라떼 아트를 완성하는 전주연 바리스타

전주연은 ‘커피는 에너지’라고 정의한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매개로 손님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늘 생글생글 웃는 표정인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기자 역시 좋은 기운이 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소한 대화로도 상대의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WBC 대회 결선에서 테이블에 걸터앉아 심사위원들과 눈을 맞추며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발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계 1위 바리스타가 좋아하는 커피는 “단맛과 보디감이 좋은 커피”다.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바리스타에게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세계 1위 바리스타가 좋아하는 커피는 “단맛과 보디감이 좋은 커피”다.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바리스타에게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맛있는 커피다. 그래도 우문을 던졌다. 세계 챔피언이 생각하는 ‘맛있는 커피’의 기준은 뭘까. 전주연은 “단맛과 보디감이 좋은 커피”라고 했다. 스페셜티커피의 특징처럼 여겨지는, 산미가 화려한 커피는 “우리 어머니도 못 드신다”고 했다. 초심자도 좋은 커피를 고를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이름이 긴 걸 고르라”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답이 돌아왔다. “생산지 정보를 자세하게 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커피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잖아요. 바리스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중요해요. 취향이나 컨디션 등을 알면 알맞은 커피를 추천해드릴 수 있거든요.”

■전포동 카페거리 가볼까

모모스커피에서 나와 전주연이 추천한 부산 카페를 차례로 돌았다. 세 곳 모두 전포동 카페거리 인근에 몰려 있었다. 철물점과 공구상가가 밀집해 있던 전포동 뒷골목은 10여년 전부터 허름한 빈 점포에 소자본으로 창업한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나며 ‘카페거리’라는 이름을 얻었고, 젊은층이 몰리는 명소로 거듭났다.

블랙업커피

블랙업커피

‘블랙업커피’는 모모스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 스페셜티커피업체로 꼽힌다. 외국 농장과 직거래하는 규모도 크다. 부전동에 있는 블랙업커피 서면점은 4층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 1층 바에서 주문하고 2~4층 카페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야외 루프톱에도 좌석이 있다.

두 가지 원두를 골라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로 각각 맛볼 수 있는 블랙업커피의 테이스팅 코스

두 가지 원두를 골라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로 각각 맛볼 수 있는 블랙업커피의 테이스팅 코스

두 가지 원두를 골라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로 각각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코스(8500원)를 주문하니 바리스타가 커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더치커피 위에 직접 만든 연유 크림을 얹고 그 위에 천일염을 뿌린 시그니처 메뉴 ‘해 수염’도 인기가 많다.

FM커피

FM커피

2010년 개업한 ‘FM커피’도 매년 파나마, 코스타리카, 브라질 등 해외 산지를 찾아다니며 직접 고른 커피를 제공하는 가게로 유명하다. 대표 메뉴는 ‘투모로우’와 ‘전포숲’.

투모로우는 콜드브루 커피 위에 생크림을 얹은 것으로 하얀 크림이 커피 사이로 녹아내리는 모습이 재난영화 <투모로우>에서 본 빙하를 떠올린다. 전포숲은 국산 말차 라테에 생크림을 올린 시원한 음료로 눈요기가 되긴 마찬가지다.

FM커피의 대표 메뉴인 투모로우와 전포숲

FM커피의 대표 메뉴인 투모로우와 전포숲

FM커피는 지역 고객 환원의 의미로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 오후 5~6시 방문하는 손님에게 무료로 커피 한 잔을 제공하는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연다.

카페보다는 클럽이나 바를 연상시키는 베르크 로스터스

카페보다는 클럽이나 바를 연상시키는 베르크 로스터스

‘베르크 로스터스’는 커피 전문가와 디자이너 등 4명이 공동 운영하는 업체로 지난해 5월 문을 열자마자 독특한 인테리어로 입소문을 탄 부산의 ‘핫플레이스’다.

전면 유리로 된 1층은 로스팅 전용 공간으로 손님은 들어갈 수가 없다. 지하로 내려가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수도원처럼 격자형 창문을 설치한 카페가 나온다.

베르크 로스터스의 카페라떼와 핸드드립 커피

베르크 로스터스의 카페라떼와 핸드드립 커피

기다란 성당 의자는 마주보는 대신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저마다의 이야기에 빠지기 좋다.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다양한 산지의 커피를 구비하고 있고, 3종의 커피를 직접 블렌딩한 ‘베이비’ 커피도 균형감 있는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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