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맥주부터 벚꽃라거·장미에일까지···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가 이끄는 바네하임

글·사진 김형규 기자
양조장과 펍을 겸한 바네하임은 2004년 문 열어 지금까지 건재한 국내 수제맥주 업계의 ‘조상님’ 격이다.

양조장과 펍을 겸한 바네하임은 2004년 문 열어 지금까지 건재한 국내 수제맥주 업계의 ‘조상님’ 격이다.

탁주·약주·소주 할 것 없이 전통주의 주재료는 쌀이다. 주식으로 술을 빚는 건 어느 문화권이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럼 맥주를 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쌀 소비도 늘고 맥주 다양성에도 일조할 텐데.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세상은 늘 우리의 편견을 앞서간다. 서울 공릉동의 수제맥주 양조장 ‘바네하임’(Vaneheim)은 이미 작년부터 쌀맥주 ‘도담도담’을 만들어 팔고 있다.

도담도담은 농촌진흥청이 다이어트용 가공식품을 만들기 위해 2014년 개발한 도담쌀을 넣어 만든다. 도담쌀은 지방 연소를 촉진하는 저항전분과 식이섬유가 많이 들었다. 연질미라 가공도 용이하다. 바네하임은 전북 익산에서 계약 재배한 도담쌀을 연간 5t 받아서 맥주를 만든다. 원래 맥주 재료인 몰트 70%에 도담쌀 30%를 섞는 방식이다. 쌀을 액화 가공하는 과정이 추가된 것만 빼면 일반 맥주 제조법과 다르지 않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도담쌀로 만든 쌀맥주 도담도담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도담쌀로 만든 쌀맥주 도담도담

맛은 어떨까. 일단 보기부터 군침이 돈다. 색이 진하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은 흔적이다. 거품 질감은 촘촘하고 부드럽다. 쌀뜨물을 연상시킨다. 한 모금 들이켜면 쌉싸름한 맛이 목구멍을 묵직하게 타고 넘어간다. 알코올 도수도 5.4도로 높은 편이다. 삼킨 뒤엔 쌀을 넣은 맥주답게 조청 같은 달달한 뒷맛이 남는다.

소맥으로 만들어 마셔도 좋다. 양조장과 펍을 겸한 바네하임에선 도담도담에 문경 사과로 만든 증류주 ‘문경바람’을 섞은 뒤 말린 사과조각을 장식한 칵테일을 ‘스맥’(스피릿맥주)이라는 이름으로 판다.

탭에서 맥주를 따르는 김정하 바네하임 대표

탭에서 맥주를 따르는 김정하 바네하임 대표

바네하임은 쌀맥주 말고도 특별한 맥주를 여럿 만든다. 계절맥주인 벚꽃라거와 장미에일이 대표적이다. 봄에 만드는 벚꽃라거(5.5도)는 직접 딴 벚꽃잎을 말려 술을 빚는데 맥주를 삼키고 난 후 느껴지는 꽃꿀향이 일품이다. 라거는 에일에 비해 도수가 낮고 향이 약하다는 편견을 깨는 술이다. 여름 맥주인 장미에일은 프랑스산 유기농 재배 장미꽃을 넣어 은은한 꽃향을 살렸다.

겨울 맥주로 요즘 잘 팔리는 건 다복이다. 블루베리와 크랜베리로 맛을 잡고 카카오닙스를 더했다. 와인처럼 진한 자줏빛에 새콤달콤한 맥주는 추위로 움츠러든 몸을 기지개 펴듯 일으켜준다. 다복이는 유기동물을 돕기 위해 판매수익의 일부를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에 후원하는 기부형 맥주기도 하다.

펍 유리창으로 보이는 바네하임 양조시설

펍 유리창으로 보이는 바네하임 양조시설

바네하임은 2004년에 개업한 국내 수제맥주 업계의 ‘조상님’으로 불린다. 각종 규제와 불리한 주세법 등 악조건을 딛고 수제맥주 문화가 대중화되기까지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양조장은 극히 드물다.

바네하임 김정하 대표(40)는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맥주 제조·판매 전 과정을 책임지는 양조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수제맥주 붐이 일며 최근 소규모 양조장이 100개를 훌쩍 넘겼지만 10년 이상의 양조 경력이 필요한 브루마스터 중 여성은 아직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김정하 대표는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로 유명하다.

김정하 대표는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로 유명하다.

대학에서 한식조리를 전공한 김 대표는 2003년 우연히 들른 수제맥주 펍에서 평소 즐기지 않던 맥주를 맛있게 마신 뒤 창업 방향을 한식집에서 수제맥주 양조장으로 틀었다. 양조는 밑바닥부터 깨지며 배웠다. 창업 초기 구입한 엉성한 국산 양조설비를 청계천 부품상가를 돌며 직접 개조하고, 원하는 맥주맛을 내기 위해 맥아를 더 볶아줄 방앗간을 수소문하는 등 좌충우돌했다.

2015년 독일의 저명한 맥주양조 교육기관 ‘되멘스 아카데미’가 서울에 개설한 ‘되멘스 비어 소믈리에’ 과정을 1기로 수료했다. 2016년부턴 일본과 호주에서 열린 국제맥주대회에서 벚꽃라거와 도담도담 등 여러 맥주로 10여차례 수상하는 등 맥주맛도 인정받았다.

2016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맥주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

2016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맥주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

김 대표는 국산 원료로 만드는 맥주에 관심이 많다. 폴리페놀이 많이 함유된 흑미 품종 ‘흑진주’로 만드는 고제맥주(산미와 짠맛이 특징인 독일 맥주)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 기본적으론 ‘마시기 편한 맥주’를 지향한다. 바네하임에서 파는 10여종의 맥주 중 어떤 걸 골라도 튀는 느낌 없이 일정한 맛을 낸다.

떡갈비, 누룽지 해산물 스튜 등 안주는 중장년층 손님에게 인기가 많다. 매장에선 캔맥주·병맥주와 1~1.5ℓ 페트병 포장 판매도 한다. 병맥주(330㎖)는 3500~7500원, 캔맥주(500㎖)는 5300~8000원 선이다. 맥주를 사면 안주로 볶은 보리를 주는데 별미다.

바네하임은 서울 공릉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바네하임은 서울 공릉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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