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물닭갈비·실비집 한우·고갈두 유명세 너머 발굴한 태백 장터의 맛

김진영 식품 MD

강원 태백 통리 십일장

마을 앞산·뒷산이 보통 해발 1000미터. 바람의 언덕 위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그 아래 비탈엔 배추밭이 펼쳐져있다.

마을 앞산·뒷산이 보통 해발 1000미터. 바람의 언덕 위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그 아래 비탈엔 배추밭이 펼쳐져있다.

동네 뒷산, 앞산이 보통 해발 1000m다. 옆 동네 가는 길에 넘는 언덕의 높이가 900m다. 석탄산업의 영화와 함께해온 도시, 태백을 다녀왔다. 올해가 시 승격 40주년이라고 한다. 태백의 여러 고개 중에서 삼수령이 있다. 석 삼(三)에 물 수(水), 세 개의 물이 갈라지는 곳이라 삼수령이다. 서해로는 남한강, 남해는 낙동강,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이 태백에서 시작한다. 삼수령 근처 매봉산 위로 올라가면 사방이 탁 틔면서 넓은 배추밭이 펼쳐진다. 바람의 언덕과 풍력 단지가 있지만, 필자의 눈에는 배추만 들어왔다. 여름 배추의 고장이 또한 태백이다.

서해 남한강·남해 낙동강·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이 시작되는 ‘삼수령’
중심엔 황지 자유시장이 있지만 시골장은 고개 넘어 통리에서 열린다

배추는 기온이 20도가 넘어가면 성장 장애가 생긴다.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리거나 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배추뿐만 아니라 무, 양배추 모두 그렇다. 가는 날은 비가 왔다. 전국에 비가 내렸다. 장마 시작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날이 개었다. 아침 일찍 바람의 언덕에 올랐다. 반바지, 반팔 차림. 쌀쌀함에 온도계를 보니 기온이 17도. 평지처럼 보여도 고원 지대인 태백은 한여름에 배추 키우기에 적합하다. 태백을 가기 위해 제천, 영월, 정선을 관통하는 38번 도로를 타면 태백으로 갈수록 배추가 작아진다. 제천은 이제 막 출하를 하고 있고, 영월, 정선 순으로 출하를 준비 중이다. 태백은 이제야 배추 모종을 심고 있다. 배추는 보통 80~90일 정도 키운다. 7월 초에 모종을 심었으니 이 배추는 추석 대목을 보고 재배하는 듯싶었다. 배추는 이렇듯 계절에 따라 백두대간 따라 오르고 내린다. 한겨울에는 바다 건너 제주에서 배추가 난다.

삼척에서 넘어온 수산물도 풍성하다.

삼척에서 넘어온 수산물도 풍성하다.

태백시 중심에는 상설 시장인 황지 자유시장이 있다. 태백 오일장은 자유시장이 아닌 고개 너머 통리에서 열린다. 오일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십일장이다. 5, 15, 25일. 한 달에 세 번 열린다. 십일장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규모가 있다. 지금은 기차가 지나지 않는 통리역, 마을 길을 둘러싸듯 장이 들어선다. 강원도 태백이지만 말씨는 경상도와 강원도 사투리가 섞여 있다. 통리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삼척과 동해인지라 생각보다 수산물이 많았다. 문어며, 오랜만에 동해에 찾아든 오징어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이로 만든 오징어 수족관은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왠지 반가웠다. 2년 전 동해 북평장에서 봤던 것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오징어를 살려두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개량종보다 고소하고 맛있는 토종 ‘예팥’.

개량종보다 고소하고 맛있는 토종 ‘예팥’.

시장을 두어 바퀴 돌았을 때 예팥이 눈에 들어왔다. 예팥은 토종팥으로 아는 사람만 아는 팥이다. 팥을 삶아 죽을 끓이거나 빙수용으로 만들면 개량형 팥보다 고소하고 맛있다. 할머니 두 분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말을 붙였다. “할머니, 이 예팥 얼마예요?” “어찌 젊은 양반이 예팥을 아슈?” “어쩌다 알게 되었어요. 얼마인가요?” “큰 ‘대빡(됫박)’으로 2만5000원.” “입금될까요?” 할머니가 손가방에서 꺼내준 스티커에 계좌번호가 있다. 오일장 갈 때 현금을 가져가는데 요번에는 깜빡했다. 요새 그렇게 많던 소매치기가 사라졌다는 기사를 봤다. 지갑을 훔쳐도 현금 대신 카드만 있는 지갑이 대부분인지라 위험 대비 소득이 떨어진 탓이라 한다. 경찰보다는 계좌이체가 가능한 스마트폰이 큰 역할을 했다. 통리 오일장은 다른 장터와 다른 점이 있다. 선수만 있다는 것. 직접 키운 것을 팔러 나오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장터 중간에서 홀로 열무를 다듬고 있던 농부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측하건대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곳보다는 산지가 많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도 대부분 비탈이다. 어디든 쉽게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도 구경하기 어렵다. 고지대이다 보니 산꼭대기 외에는 일조량이 부족해서 키울 수 있는 작물이 제한적인 것도 이유일 듯싶다. 소소한 재미가 통리장에는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장터는 사람이 흘렀고, 그 사이에 흥정이 오갔다. 장터에 있는 상품을 보면 장터가 잘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통리장은 장사가 잘되는 장터였다.

장터에서 직접 키운 열무를 다듬고 있는 농부.

장터에서 직접 키운 열무를 다듬고 있는 농부.

집밥보다 나은 시골가정식 ‘올콩밥상’으로 장터백반의 매력 느끼고
대파향 품은 쫄면·된장으로 끓여낸 칼만둣국…확연히 다른 맛 경험

황지 자유시장 안 ‘영진집’의 된장 국물로 끓여낸 칼만둣국.

황지 자유시장 안 ‘영진집’의 된장 국물로 끓여낸 칼만둣국.

물닭갈비, 실비집의 한우, 고갈두(고등어, 갈치, 두부조림)가 유명하다. 태백에 와서 한 번쯤 먹고 가는 음식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세 가지를 제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명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혼자 먹기 힘든 것들이다. 게다가 그거 외에도 다양한 메뉴가 있기 때문에 굳이 찾지 않았다. 3년 동안 오일장 글을 쓰면서 의도적으로 장터 주변의 유명한 음식은 가능한 한 빼려고 했었다. 황지 자유시장 안에는 순댓국집이 몇 집 있다. 몇 년 전 출장길에 들른 적이 있다. 전날 달린 속을 달래러 갔다가 달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어느 집에 들어갈까 하다가 순댓국집 대신 만둣국을 선택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니 할머니 한 분이 만두를 빚고 있었다. 빠르지 않지만 세월이 녹아든 손놀림에 만두가 하나씩 쟁반 위에 쌓이는 모습을 보다가 문 열고 들어갔다. 만둣국과 칼만둣국 사이에서 잠시 고민, 칼만둣국을 선택했다. 잠시 후 작은 쟁반에 김치와 간장, 칼만둣국이 나왔다. 국물은 된장 베이스로 그냥 먹으면 심심하다. 같이 나온 간장을 입맛에 맞게 넣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간장만 맛을 보니 쿰쿰하지만, 끝에 당기는 맛이 있었다. 사서 쓰는 간장이 아닌 직접 담근 간장이라 혀만 맛있는 게 아니라 음식을 조율하는 맛이었다. 국물과 만두, 그리고 받쳐주는 열무김치까지 삼박자가 딱딱 맞아 돌아가는 맛이었다. 영진집(영진칼국수)(033)552-1462

통리 장터가 열리는 마을 도로 중간쯤 ‘올콩밥상’에서 맛 볼 수 있는 장터백반.

통리 장터가 열리는 마을 도로 중간쯤 ‘올콩밥상’에서 맛 볼 수 있는 장터백반.

통리 오일장은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 선다. 그 중간 즈음 밥집이 있다. 이름이 ‘올콩밥상.’ 이 집의 주 메뉴는 장터 백반. 장터 백반의 특징은 매일 메뉴가 바뀐다는 것이다. 백반이라는 게 밥과 국을 중심으로 반찬이 차려진다. 그리고 하나 정도 젓가락을 부르는 반찬이 있다. 이날의 주 메뉴는 자반 고등어구이. 한 끼 먹는데 다양한 반찬에 국과 생선구이까지, 진수성찬이다. 잘 구운 자반과 된장국 두 가지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거뜬이다. 보통은 이런 밥을 ‘집밥’ 같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집밥보다 낫다. 집에서 밥 먹을 때 생각해 보면 찬이 많지 않다. 다음날 장터 구경 나서다 호기심에 오늘의 메뉴를 봤다. 오늘은 소고기미역국이었다. 식당 이름이 올콩, 까닭이 있다. 올콩은 콩의 한 종류로 다른 콩보다 일찍 여무는 콩이다. 친정어머니 별명이 올콩, 빨리 배우고 깨우친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자식들이 ‘올콩 여사’라 부르다가 아예 상호가 돼버렸다고 한다. 통리장을 간다면, 삼척 도계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에 밥때라면 들려야 할 곳이다. 집밥보다 낫다. 올콩밥상 (033)554-3399

태백에서 오랜 세월 사랑 받아온 분식집 ‘맛나분식’의 대파향 가득한 쫄면.

태백에서 오랜 세월 사랑 받아온 분식집 ‘맛나분식’의 대파향 가득한 쫄면.

태백까지 가서 쫄면 먹는 일이 있을까 싶은데 그럴 일이 있다. 태백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분식점이 있다. 여러 메뉴가 있지만 그중에서 쫄면과 군만두가 인기 아이템이다. 쫄면의 면이야 거기서 거기지만 양념장이 다른 곳과 다르다. 쫄면의 탄생지 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에겐 쫄면 또한 짜장면만큼이나 추억의 음식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부평이며, 동인천을 다니며 쫄면을 먹곤 했었다. 그때 먹었던 쫄면과는 확연하게 다른 맛이 있었다. 새콤달콤한 양념 맛이 강한 게 일반적인 쫄면 양념. 여기 양념장은 새콤달콤하지 않고 독특했다. 대파를 충분히 활용해 양념장을 만들어서 그런지 대파 향이 솔솔 났다. 대파를 잘못 사용하면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십상이다. 양념장에서 나는 대파 향은 은은했다. 역하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태백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한 번쯤 먹어도 좋을 맛이다. 군만두를 주문하면 군만두를 위한 양념장이 따로 나온다. 둘의 조합도 꽤 좋다. 맛나분식(033)552-2806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59)물닭갈비·실비집 한우·고갈두 유명세 너머 발굴한 태백 장터의 맛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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