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아르헨티나, 아웃사이더 극우 대통령 택했다

최서은 기자

밀레이, 대선 결선투표서 55% 득표율로 당선

<b>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아르헨 트럼프’</b>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가 19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 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정된 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기 전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아르헨 트럼프’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가 19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 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정된 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기 전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살인적 인플레에 국민 고통, 페론주의 집권여당 심판
“오늘 아르헨 재건 시작…필요한 건 급진적 변화” 일성
트럼프 “승리 축하”…중남미 ‘핑크타이드’에도 제동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53)가 아르헨티나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세 자릿수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의 좌절감이 밀레이의 당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지 매체 라나시온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밀레이 후보가 55.69%의 득표율을 얻어 진보 성향인 여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44.3%)를 꺾고 당선됐다.

극단적인 주장을 펼쳐온 밀레이 당선인은 그간 ‘아웃사이더’ 비주류 정치인에 머물렀지만, 지난 8월 대선 예비선거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10월 치러진 대선 땐 마사 후보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당선 요건을 충족한 후보가 없어 다시 치러진 결선투표에서는 마사 후보를 크게 앞서며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또 한 번 극우 대통령이 탄생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오늘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면서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번영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급진적 변화”라며 “점진적이고 미지근한 조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사 후보는 공식 결과가 발표되기 전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며 “내일부터 정치·사회·경제적 기능을 보장하는 것은 새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 결과로 남미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진 아르헨티나에서 정치·외교·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급진적 변화와 충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경제학자 출신인 밀레이 당선인이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화 공식 화폐 사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경제정책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는 “페소화는 거름으로도 쓸 수 없는 쓰레기”라면서 “중앙은행을 폭파시키겠다”고 거칠게 주장해왔다. 앞서 지난 예비선거에서 그가 1위를 차지하자 아르헨티나 화폐 가치는 곤두박질친 바 있다.

외교정책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중국·브라질 등과 거리를 두고, 미국·이스라엘 등과의 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아르헨티나가 참여해온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고, “공산주의자들과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승인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경제국) 가입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당선 소감에서는 “모든 국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발언해 다소 논조가 완화된 모습을 보였다.

극단적 시장주의자인 밀레이 당선인은 “세금 부과는 절도”라면서 농산물 수출세 폐지, 정부 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등 과격한 정책을 내세워왔다. 심지어 그는 총기·마약·신생아 매매를 합법화하겠다는 주장까지 펼쳐왔다. 지구온난화를 ‘사회주의적 거짓말’로 일축하면서 환경부를 폐쇄하고, 광범위한 자원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한 바 있다. 또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벌인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과 자국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욕하는 발언도 일삼았다.

이처럼 극단적인 주장과 막말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린 밀레이 당선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방송 출연을 통해 얼굴을 알린 후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지난 10월 선거에서 자신이 2위를 차지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이번 결선투표에서 패배한다면 선거가 조작됐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나는 당신이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당신은 당신의 나라를 바꾸고 정말로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밀레이의 당선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거대한 변화를 바라며 집권 여당을 심판한 결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수십년간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어왔지만, 특히 최근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142.7% 폭등하고, 국민 10명 중 4명이 빈곤층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20여년 만에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JP모건은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이 19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엘파이스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에 지친 유권자들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밀레이의 약속을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라나시온의 칼럼니스트이자 역사학 교수인 카를로스 파그니도 뉴욕타임스(NYT)에 “유권자들에게 밀레이의 정치적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그들은 경제적, 정치적 현실로 인한 좌절감을 표현할 방법을 밀레이를 통해 발견했기 때문에 그에게 투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못해 밀레이에게 투표했다는 시민 실바나 카발레라는 “부패에 계속 투표할 순 없었다”면서 “그가 최소한 덜 부패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밀레이의 승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한동안 ‘돌풍’을 일으켰다가 최근 잇단 패배로 다시 주춤해진 전 세계 극우 세력의 승리라고 NYT는 평가했다. 미국의 극우 인사인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진행자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아르헨티나까지 방문한 바 있으며, 그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스페인의 극우 정당 복스와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잇달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아르헨티나의 번영이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밀레이의 당선으로 중남미의 ‘핑크타이드’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 멕시코, 칠레, 페루 등 중남미 주요 국가들에서 잇따라 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되며 제2의 핑크타이드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번 선거로 일단 멈추게 됐다.

다만 정치 입문 후 초고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밀레이의 앞길에는 경제위기 극복 등 해결해야 할 험난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소야대 국면인 만큼 그가 “인간쓰레기” “재앙”이라고 부른 페론주의 정당과도 협력해야 한다. 신생 정당인 그의 정당이 가진 의석수는 아르헨티나 상원 72석 중 7석, 하원 257석 중 38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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